서울 강남 소재 중학교에서는 한 여학생이 집단 괴롭힘을 당했는데, 수십 명이 그를 둘러싼 후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많은 학생이 ‘핫플’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핫플은 사람이 많이 찾는 음식점 등을 뜻하는 핫플레이스(hot place)의 줄임말로, 학생들 사이에서는 ‘피해학생을 둘러싸고 욕하는 장소’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대전에서는 중학교 3학년 남학생 5명이 또래 학생 2명을 양손과 발을 묶은 채 주먹, 쇠 파이프로 때렸다. 피해학생 가운데 한 명은 실명 위기에 놓였고, 다른 한 명도 전치 3주 진단을 받고는 극심한 불안 증세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해학생들은 폭행 당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고, 사건 직후에도 피해학생들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협박성 글을 올렸다. 한마디로 개탄할 지경이다. 어떻게 하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이토록 잔혹해지고 악(惡)해졌는지 안타깝고 화도 난다.
피해학생 보호는 사회 책임
2016년 12월 15일 광주 운림중 운동장에서 학생 350여 명이 우산으로 ‘학교폭력 OUT(아웃)’ 글자를 만드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동아DB]
이러한 불안감은 만성적인 두통, 복통, 근육통 등을 유발한다. 외부와 경계를 그어 더욱 고립된 생활을 하거나 인터넷 게임 혹은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비(非)사회화 방향으로 나아간다. 심하면 피해망상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폭력 피해학생이 올바르고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날 수 없다면 이는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그동안 학교 폭력 피해학생을 많이 상담하고 진료해왔다. 상당수 학생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증상이 이른바 ‘침습(intrusion)’이다. 자신이 당한 사건이 반복적으로, 의지와 무관하게 불쑥 기억나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자신을 때리거나 욕한 가해학생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갑작스레 떠오르고, 그 당시 느꼈던 불안과 공포가 재현된다. 괴롭힘을 당했던 장소나 정황이 떠오르기도 한다. 이럴 때 피해학생은 몹시 힘들어하고, 현재 주어진 과제나 업무에 집중하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한다. 과거에는 이러한 증상을 ‘재(再)경험(reexperience)’이라 했는데, 실은 피해자가 의도적으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뇌리에 스며들듯 떠오르는 증상이라 ‘침습’이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회피(avoidance)’ 증상도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사건을 연상케 하는 대화는 하려 들지 않고, 그 장소에 가지 않으려 하며, 가해학생들을 다시 보지 않으려 하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한다. 스트레스에 따른 부정적 충격을 완화할 때 성인은 개인 성격의 영향을 많이 받는 데 비해, 소아·청소년은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지지가 더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공감과 인정,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전문적인 치료자의 지지적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학교 폭력 가해학생의 처벌과 선도, 그들 부모에 대한 ‘책임 지우기’ 및 교육, 관련 교사들이나 학교를 대상으로 한 계도와 교육도 중요하다. 학교 폭력 또는 집단 따돌림이 발생했을 때 학교는 쉬쉬하면서 문제를 축소하고, 가해학생과 부모는 빠져나갈 궁리만 하며, 동료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남의 일’이라는 태도로 무관심하게 대응한다면 앞으로도 이와 같은 사건은 계속될 것이 자명하다. 반면, 사회적 관심과 책임이 끝까지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공감한다면 그나마 학교 폭력은 줄어들 것이다.
가해학생은 대부분 집단으로 폭력이나 괴롭힘을 행사한다. 집단 폭력은 ‘나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혹은 ‘다른 친구가 그러니까 나도’라는 식의 합리화를 유발해 가해학생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학교나 가정에서 학교 폭력의 위험성 및 부당성을 충분히 교육시키는 것은 물론, 학생들이 방관자에 머무르지 않고 학교 폭력을 막을 수 있도록 용기와 정의감을 심어줘야 한다.
‘거울세포’의 위력
올해 9월 19일 부산 장산중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 ‘등굣길 콘서트’. 학생들의 정서를 함양해 학교 폭력을 예방하겠다는 뜻을 담아 연주회를 열었다. [동아DB]
이탈리아 신경생리학자 자코모 리촐라티(Giacomo Rizzolatti)와 그의 동료 연구팀은 원숭이 뇌의 전운동영역이라 부르는 부위에 전극을 연결한 뒤 원숭이가 음식에 손을 뻗는 행동을 할 때 세포 반응을 측정했다. 그다음 원숭이가 직접 음식을 집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실험자가 음식을 집어 올릴 때 반응을 살펴봤다. 놀랍게도 동일한 신경세포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세포들을 ‘거울세포’ 또는 ‘거울뉴런(mirror neuron)’이라고 명명했다. 이 세포는 인간에게도 존재한다.
‘거울세포’란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기능을 하는 세포다. 따라서 거울세포 시스템은 사회성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자신에 대한 인식에 반응하고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도 반응한다는 점으로 미뤄 사회성 및 공감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거울세포 덕분에 다른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고 공감해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지 모른다. 아니면 우리 인간을 가장 위대한 생명체로 만들고자 거울세포가 점차 정교하게 발달했을 수도 있다.
사춘기 청소년의 거울세포는 좋지 않은 쪽의 언행에 더 잘 반응한다. 중학생들의 대화를 옆에서 들어본 적 있는가. 욕이 대화의 절반을 넘는다. 나머지 반의 과반도 은어(隱語)다. 한마디로 어른이 잘 이해할 수 없고 듣기에 거북한 표현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한 어른은 바로 부모다. 눈을 돌려 다른 어른들을 생각해보라. 술집에서 들려오는 각종 욕설과 식당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여러 은어 및 저속한 표현이 생각날 것이다. 결국 우리 어른이 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