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폐회식에서 시진핑(앞줄 가운데) 국가주석 등이 손을 들어 업무보고 내용을 승인하고 있다. [뉴시스]
12월 10일 중국 정부는 압록강대교(중국명 중조우의교·中朝友誼橋)의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했다. 표면적 이유는 북한 측의 보수공사다. 중국 당국은 통지문에서 ‘북한 측 계획에 따라 12월 11일부터 20일까지 북한이 중조우의교 보수공사를 진행한다. 이 때문에 이 기간 차량 통행을 전면 금지한다는 통지를 신의주 국경통행검사소로부터 받았다. 차량 통행은 21일부터 재개된다’고 밝혔다.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는 북·중 교역의 상징이다. 양국 무역 물동량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통로이기 때문이다. 940m 길이에 차량용 도로 1개 차선과 철로를 갖추고 있다. 철로는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할 때 자주 이용하던 베이징~평양 노선이다. 보수공사 기간 국제열차는 정상 운행한다.
압록강대교의 정치학
압록강대교 통제 조치에 대해 단둥 현지에서는 ‘대북 압박 차원’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압록강대교는 오래된 다리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보수공사가 불가피했다. 그런데 이렇게 장기간 차량 운행을 전면 금지하면서까지 보수공사를 하는 일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지난해 대교에서 차량이 뒤집히는 대형사고가 났을 때도 당일 오후만 차량 운행을 금지했다. 통상 보수공사는 다리 양쪽 끝에서 서로 무전을 하면서 오전과 오후 한 차례씩 각각 상대 세관에서 나오는 차량을 통제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대교를 이용하는 차량과 물동량이 워낙 많기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압록강대교는 당초 11월 24일 통제될 예정이었으나 시점을 늦췄다. 바로 직전인 11월 중순 쑹타오(宋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일행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찾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을 면담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귀국한 일이 있었다. 자국 최고지도자의 특사를 홀대한 데 분노해 중국이 북한에 본때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압록강대교를 통제한 12월 10일은 또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날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9월 11일 채택한 9차 대북제재 결의 2375호에는 북한의 주요 외화 수입원인 섬유·의류제품의 수출 전면 금지가 포함됐다. 본격 시행에 앞서 유예기간을 90일 뒀는데 종료 시점이 바로 12월 10일인 것.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에 대해 나선특구의 대북 사업가들은 한편으로는 사업 철수를 고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이 결국 보호해줄 것이라 낙관했다. 나선특구에는 중국이 30년 임차한 나진항을 비롯해 중국 기업이 상당히 많이 진출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강수를 뒀다. 12월 10일이 되자 훈춘(琿春)시 취안허(圈河) 통상구(세관)를 통한 나선특구와 무역거래를 전면 중단한 것이다. 중국 당국은 이미 시행 두 달 전부터 이를 암시했다고 한다. 90일 유예기간 내 사업을 정리하라는 것이었다. 시행 한 달 전 “12월 10일이 마지막 날이다. 정리하라”고 경고한 중국 당국은 일주일 전인 3일에도 “100% 막는다. 더는 아무것도 거래가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북 사업가들은 ‘설마 정말로 그렇게까지 할까’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나선특구로 가야 할 원부자재가 못 들어가고, 중국을 경유한 각국 기업의 제품 생산 주문이 차단됐다.
베이징의 ‘은근한 분노’
12월 4일 중국 단둥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압록강대교 위를 트럭들이 오가고 있다. [뉴시스]
그런데 이런 위기가 오히려 기회가 되는 이들이 있다. 단둥, 훈춘 등 북한 접경지역에서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있는 중국 사업가들이다. 나선특구에서 생산길이 막히자 그 많은 주문이 고스란히 이들에게로 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의 북한 근로자 공장들은 전성기 호황을 되찾고 있다고 한다.
12월 10일 압록강대교 통행 전면 금지와 나선특구 무역거래 전면 중단 조치. 노후 대교 보수공사와 유엔 안보리 결의 이행이라는 명분 아래 진행된 두 조치는 우연히 한날 이뤄진 것일까. 혹시 중국이 북한을 최대한 압박하고자 교묘하게 계획한 것은 아닐까. 이런 관측이 가능한 이유는 압록강대교와 나선특구가 ‘후견국’ 중국의 면모를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북한으로 들어가는 물동량이 가장 많은 통로, 사실상 중국 도시라 할 정도로 상당한 중국인과 중국 기업이 진출해 있는 북한 유일의 경제특구. 중국은 북한의 ‘경제 숨통’을 조인 것이다.
10월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은 중국 공산당의 역대 어떤 지도자보다 강력한 권력을 잡으면서 이른바 ‘황제’ 지위에 올랐다고 평가받았다. 그런데 당대회 이후 시 주석이 보낸 특사를 김정은 위원장은 무시했다. 중국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다. 감히 ‘시 황제’를 무시한, 버릇없는 평양을 향해 베이징은 이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가 너희를 내치진 않는다. 그렇다고 너무 까부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우리는 너희의 숨통을 쥐고 있는 존재다.’ 12월 10일 베이징이 보여준 ‘은근한 분노’에 평양이 체감하는 고통의 정도는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어떤 대북제재보다 강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