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느 대통령이나 지지율이 하락하면 하는 말이다. 그러나 100% 거짓말이다. 선거제도를 도입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힘은 선거 승리와 높은 지지율에서 나온다.
지난해 11월 예상치 못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전 세계를 휩쓸던 ‘스트롱맨’ 리더들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늘 시끄럽기만 하고 성과가 없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변화 갈망으로 카리스마 있는 ‘이단아’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추락에 가속이 붙는 형국이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마크롱 대통령을 ‘자유주의적 스트롱맨’이라고 평가했다. 내용적으로는 보호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반대로 세계화, 자유주의를 지향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리더십은 독재적 성격이 강한 ‘불도저식’이라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젊은 아마추어’라는 불안을 불식하고자 강한 리더십을 추구했다. 자기보다 31세나 많은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강하게 악수한 것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 리더를 대거 파리로 불렀다. 만남 장소도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 등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곳들을 선택했다. 국내 정치에서도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 승리한 마크롱 대통령은 상·하원의원을 모두 베르사유궁으로 불러 “의원 정원의 3분의 1을 줄이라”고 압박했다.
다수 의석까지 확보한 대통령이 절대왕정을 꿈꾸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과 국민의 견제 및 반감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 비결은 기존 정치로부터 탈피였다. 공천과 내각 절반을 여성 및 정치 신인으로 채워 기존 좌우이념을 뛰어넘겠다는 선언도 신선했다. 그러나 말처럼 정책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공약의 덫에 걸렸다. 그가 내건 공약의 핵심은 감세를 통한 경기 활성화다. 그러나 감세 공약을 시작도 하기 전 올해 프랑스의 재정적자 규모를 유럽연합(EU)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에 맞추려면 80억 유로(약 10조4500억 원)가 필요하다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전임 정부가 적자를 잘못 예상한 탓이지만 감세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공약을 파기할 수 없다며 감세 공약을 예정대로 마무리 짓겠다고 결정했다.
그 대신 재정 압박을 덜고자 공공소비를 줄이기로 하고 각 부처의 예산 삭감에 돌입했다. 그러자 정부 지원을 받던 각종 수혜자들이 혜택이 줄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첫 번째로 난리가 난 건 국방부였다. 국방부 예산 삭감에 반대한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항명하고 사퇴했다. 또 지방 예산 감소로 지방 공무원 노조, 대학에 투입될 예산 삭감으로 대학교수 노조, 여성 지원 예산 삭감으로 여성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주택보조금이 삭감되면서 학생까지 들고 일어섰다.
마크롱 정부는 “지금 고통스러워도 구조개혁을 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라며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그렇잖아도 마크롱 정부가 구조개혁의 핵심으로 여기는 노동법을 9월까지 처리하겠다고 밀어붙이자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마크롱 대통령 처지에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월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할 반대 진영에 힘만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사실상 모두 공천한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만 해 오히려 대통령 혼자 온몸으로 여론의 비판을 맞는 형국이 됐다. 게다가 감세 공약을 밀어붙이면서 탈이념 이미지보다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이미지만 강해졌다.
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1기 내각의 강점은 꺼지지 않는 지지율과 선거 승리 신화였다. ‘잃어버린 20년’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의 참화를 겪은 일본인은 ‘아베노믹스’를 내걸고 경기 활성화를 부르짖는 아베 총리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야권은 지리멸렬하고, 자민당에도 아베에 대적할 세력이 없는 가운데 아베 내각은 50~70%라는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 또 집권 이래 수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승리하며 권력이 날로 집중돼갔다.
지난해 여름에는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자연스레 ‘아베 1강(强)’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다. 아베를 대체할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집권 후 4년 넘게 굳건하던 이 신화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오사카의 학원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에 국유지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학교 명예교장으로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아베 총리는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에서 화를 내며 “내가 관여했다면 당장 총리직은 물론, 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단언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설상가상으로 5월부터는 절친한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加計)학원에 수의학부를 허가해준 의혹과 관련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아베 총리는 5월 3일 헌법기념일을 기해 자신이 구상하는 개헌 로드맵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제시하는 등 일방통행식 처신으로 치달았다. 7월 지지율 조사에서 30% 이하로 떨어진 수치가 등장했고, ‘총리에 대한 신뢰가 문제가 된다’는 응답도 60~70%에 달했다. 권력의 오만함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정부와 자민당 등 주변에서도 나타났다. 일본 여당은 중의원과 참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한 상황에 편승해 반대여론이 심한 공모죄법(테러 등 대책법) 등을 국회에서 강행처리했다.
실언과 망동을 되풀이하는 각료들의 스캔들도 화근이 됐다. 올해 들어 스캔들로 자리를 내놓은 정부 고관은 5명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아베 정권의 폭탄’이라 일컬어지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 공모죄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가네다 가쓰토시(金田勝年) 법무상 등은 여당에서도 경질을 주장할 정도지만 아베 총리는 마이동풍이다.
정작 일본 국민 대부분은 경제에 관심이 쏠려 있다. 정권 초기부터 이어진 높은 지지율도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경제는 국민의 환심을 사는 수단에 불과했던 듯하다. 그는 2번의 사학재단 스캔들로 자신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5월부터는 특히 경제보다 개헌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자민당의 오랜 원군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木神原定征)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조차 아베 정권의 최근 처신을 비판하며 개헌 같은 정치 이슈보다 경제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쓴소리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베 총리를 대체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현실도 변하지 않았다. 7월 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우선회’가 선풍을 일으켰지만 지방의원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정치 신인이라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칠 대안세력이 되기에는 미흡하다.
일본 정계에서는 포스트 아베 후보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내각부 지방창생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더해 고이케 도쿄도지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6) 중의원 의원을 거론한다. 아무도 그렇게 될 거라 보지는 않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자신의 파벌을 키우며 ‘자가발전’ 중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처음 반년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 그의 일가를 둘러싼 의혹과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로 얼룩졌다. 그가 약속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공약은 소리만 요란했지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바마케어(전 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는 아직 의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오바마케어를 고쳐 예산을 절감하고, 기업들의 세금을 과감하게 깎아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게 함으로써 경제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그의 원대한 꿈은 첫 단추조차 꿰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 42개 가운데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부끄러운 국정 성적표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을 36%까지 떨어뜨린 결정적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트롱맨 캐릭터가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의 퍼스낼리티와 캐릭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캐릭터나 퍼스낼리티 문제가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전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서 점수를 깎아먹었기 때문에 국정수행 성과와 정책이 주요 이슈가 됐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취임 후 6개월 지지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강요하면서 기존 판과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려는 스트롱맨 정치인은 전통 언론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건 정치인이건 맘에 들지 않는 상대에겐 거친 트위트를 날리고, CNN 같은 전통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운 그이지만 기자회견은 지금까지 1번밖에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적은 중도층의 불신을 키우고 반대세력을 결집하는 역풍을 불러왔다. 폴리티코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율 50%를 회복하려면 보수층 유권자 전원의 지지를 받거나, 중도층 지지자를 갑절로 늘리거나, 진보 성향 지지자를 4배로 늘려야 한다. 선거 같은 특단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스트롱맨 캐릭터를 유지하며 이 같은 기적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프리 존스 갤럽 수석에디터는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원 사이에서는 꽤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으나 여기서 더 물러설 여유는 없다”며 “앞으로 올라갈 일보다 떨어질 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같은 하락은 공화당원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추가 하락은 불가피한 것일까.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지지율은 ‘허니문 랠리’가 나타나는 초기에 높았다 갈수록 하락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허니문 랠리를 건너뛰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과거 패턴이 반복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공화당원들의 ‘열정’이 당선 이후 시들해지는 ‘열정 갭(enthusiasm gap)’ 현상이 현 지지율에 반영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주류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지지율에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며 “내년 중간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연말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과 공화당의 여론 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트롱맨의 원조’ 푸틴 대통령은 때만 되면 터지는 반푸틴 시위로 곤혹스러운 처지다.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1)가 특히 눈엣가시다.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들은 나발니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고 있지만 나발니 트위터는 늘 문전성시다. 나발니는 재기발랄하고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민주주의나 인권 등 추상적 가치가 아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 축재 보고서나 소치동계올림픽 건설 비리 등을 고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SNS 검열에 치밀한 중국은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죽음으로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 사진이나 이모티콘 등도 검열 대상에 올렸으나 촛불을 은어로 사용하는 누리꾼들의 의지를 따라잡지 못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법과정의당 대표는 지난해부터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지난해 낙태금지법을 추진했다 폴란드에서만 10만 명이 모이고, 전 세계 폴란드대사관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들이 몰려들어 결국 포기했다. 지난주에도 사법권 장악을 위해 대법관을 법무장관이 임명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SNS를 통해 모인 폴란드 시위대 수만 명 앞에서 뜻을 접어야 했다.
전 세계 어느 대통령이나 지지율이 하락하면 하는 말이다. 그러나 100% 거짓말이다. 선거제도를 도입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대통령의 힘은 선거 승리와 높은 지지율에서 나온다.
지난해 11월 예상치 못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전 세계를 휩쓸던 ‘스트롱맨’ 리더들이 일 년도 지나지 않아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늘 시끄럽기만 하고 성과가 없는 기존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증과 변화 갈망으로 카리스마 있는 ‘이단아’들이 정권을 잡았지만 “뭔가 다를 것”이라는 기대는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다. 오히려 ‘강하면 부러진다’는 말처럼 추락에 가속이 붙는 형국이다.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나폴레옹 삼세 이후 프랑스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이 된 에마뉘엘 마크롱(39) 대통령의 추락은 예상보다 빠르다. 6월 총선에서 60% 넘는 의석을 장악하며 60% 이상 유지되던 지지율이 한 달 새 10%p 이상 빠졌다. 취임 두 달 만에 50%대 초반 지지율은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 유럽’은 마크롱 대통령을 ‘자유주의적 스트롱맨’이라고 평가했다. 내용적으로는 보호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대통령과 정반대로 세계화, 자유주의를 지향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리더십은 독재적 성격이 강한 ‘불도저식’이라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젊은 아마추어’라는 불안을 불식하고자 강한 리더십을 추구했다. 자기보다 31세나 많은 트럼프 대통령과 첫 만남에서 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강하게 악수한 것도 밀리지 않겠다는 의도된 행동이었다.
그는 집권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 스트롱맨 리더를 대거 파리로 불렀다. 만남 장소도 나폴레옹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 태양왕 루이 14세가 지은 베르사유궁 등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곳들을 선택했다. 국내 정치에서도 대선에 이어 총선까지 승리한 마크롱 대통령은 상·하원의원을 모두 베르사유궁으로 불러 “의원 정원의 3분의 1을 줄이라”고 압박했다.
다수 의석까지 확보한 대통령이 절대왕정을 꿈꾸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언론과 국민의 견제 및 반감이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 비결은 기존 정치로부터 탈피였다. 공천과 내각 절반을 여성 및 정치 신인으로 채워 기존 좌우이념을 뛰어넘겠다는 선언도 신선했다. 그러나 말처럼 정책을 구현하기는 쉽지 않은 법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취임 2개월 만에 공약의 덫에 걸렸다. 그가 내건 공약의 핵심은 감세를 통한 경기 활성화다. 그러나 감세 공약을 시작도 하기 전 올해 프랑스의 재정적자 규모를 유럽연합(EU) 상한선인 국내총생산(GDP)의 3%에 맞추려면 80억 유로(약 10조4500억 원)가 필요하다는 충격적인 전망이 나왔다. 전임 정부가 적자를 잘못 예상한 탓이지만 감세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몰린 것이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공약을 파기할 수 없다며 감세 공약을 예정대로 마무리 짓겠다고 결정했다.
그 대신 재정 압박을 덜고자 공공소비를 줄이기로 하고 각 부처의 예산 삭감에 돌입했다. 그러자 정부 지원을 받던 각종 수혜자들이 혜택이 줄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첫 번째로 난리가 난 건 국방부였다. 국방부 예산 삭감에 반대한 피에르 드빌리에 합참의장이 항명하고 사퇴했다. 또 지방 예산 감소로 지방 공무원 노조, 대학에 투입될 예산 삭감으로 대학교수 노조, 여성 지원 예산 삭감으로 여성단체가 반발하고 나섰다. 주택보조금이 삭감되면서 학생까지 들고 일어섰다.
마크롱 정부는 “지금 고통스러워도 구조개혁을 하려면 불가피한 조치”라며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그렇잖아도 마크롱 정부가 구조개혁의 핵심으로 여기는 노동법을 9월까지 처리하겠다고 밀어붙이자 이에 대한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마크롱 대통령 처지에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9월 거리로 몰려나와 시위할 반대 진영에 힘만 실어주고 있는 셈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사실상 모두 공천한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지 못하고 거수기 노릇만 해 오히려 대통령 혼자 온몸으로 여론의 비판을 맞는 형국이 됐다. 게다가 감세 공약을 밀어붙이면서 탈이념 이미지보다 부자를 위한 정부라는 이미지만 강해졌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최근 아베 신조 내각의 지지율 추락은 아베 총리의 오만한 처신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일반적이다.2012년 12월 출범한 아베 1기 내각의 강점은 꺼지지 않는 지지율과 선거 승리 신화였다. ‘잃어버린 20년’에 이어 동일본 대지진의 참화를 겪은 일본인은 ‘아베노믹스’를 내걸고 경기 활성화를 부르짖는 아베 총리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보냈다. 야권은 지리멸렬하고, 자민당에도 아베에 대적할 세력이 없는 가운데 아베 내각은 50~70%라는 높은 지지율을 누렸다. 또 집권 이래 수차례의 크고 작은 선거에서 승리하며 권력이 날로 집중돼갔다.
지난해 여름에는 참의원 선거에서 연립여당이 의석의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자연스레 ‘아베 1강(强)’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였다. 아베를 대체할 그 어떤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하지만 집권 후 4년 넘게 굳건하던 이 신화가 깨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2월 오사카의 학원재단 모리토모(森友)학원에 국유지를 불하하는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학교 명예교장으로 아베 총리의 부인인 아키에 여사가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아베 총리는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에서 화를 내며 “내가 관여했다면 당장 총리직은 물론, 의원도 그만두겠다”고 단언해 논쟁에 기름을 부었다.
설상가상으로 5월부터는 절친한 친구가 이사장으로 있는 가케(加計)학원에 수의학부를 허가해준 의혹과 관련해 제대로 해명하지 않아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아베 총리는 5월 3일 헌법기념일을 기해 자신이 구상하는 개헌 로드맵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제시하는 등 일방통행식 처신으로 치달았다. 7월 지지율 조사에서 30% 이하로 떨어진 수치가 등장했고, ‘총리에 대한 신뢰가 문제가 된다’는 응답도 60~70%에 달했다. 권력의 오만함은 아베 총리뿐 아니라 정부와 자민당 등 주변에서도 나타났다. 일본 여당은 중의원과 참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한 상황에 편승해 반대여론이 심한 공모죄법(테러 등 대책법) 등을 국회에서 강행처리했다.
실언과 망동을 되풀이하는 각료들의 스캔들도 화근이 됐다. 올해 들어 스캔들로 자리를 내놓은 정부 고관은 5명에 이른다. 더 큰 문제는 ‘아베 정권의 폭탄’이라 일컬어지는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 공모죄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가네다 가쓰토시(金田勝年) 법무상 등은 여당에서도 경질을 주장할 정도지만 아베 총리는 마이동풍이다.
정작 일본 국민 대부분은 경제에 관심이 쏠려 있다. 정권 초기부터 이어진 높은 지지율도 ‘아베노믹스’를 내세운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에게 경제는 국민의 환심을 사는 수단에 불과했던 듯하다. 그는 2번의 사학재단 스캔들로 자신의 아성이 흔들리기 시작한 5월부터는 특히 경제보다 개헌에 집착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근 자민당의 오랜 원군인 사카키바라 사다유키(木神原定征) 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조차 아베 정권의 최근 처신을 비판하며 개헌 같은 정치 이슈보다 경제정책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쓴소리했을 정도다.
하지만 아베 총리를 대체할 방안이 마땅치 않은 현실도 변하지 않았다. 7월 2일 도쿄도의원 선거에서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도민우선회’가 선풍을 일으켰지만 지방의원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정치 신인이라 중앙정치에 영향을 미칠 대안세력이 되기에는 미흡하다.
일본 정계에서는 포스트 아베 후보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내각부 지방창생상,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에 더해 고이케 도쿄도지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의 차남인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36) 중의원 의원을 거론한다. 아무도 그렇게 될 거라 보지는 않지만,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가 자신의 파벌을 키우며 ‘자가발전’ 중이기도 하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민과 달콤한 ‘허니문’조차 누리지 못했다. 취임 이후 지지율이 내리막길을 걷더니 어느새 40% 밑으로 떨어졌다. 그는 지난 70년간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취임 6개월 후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도 안게 됐다.그도 그럴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처음 반년은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설렘보다 그의 일가를 둘러싼 의혹과 러시아의 대선 개입 스캔들로 얼룩졌다. 그가 약속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공약은 소리만 요란했지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바마케어(전 국민건강보험법·ACA) 폐지는 아직 의회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오바마케어를 고쳐 예산을 절감하고, 기업들의 세금을 과감하게 깎아 인프라에 대대적으로 투자하게 함으로써 경제를 일으키고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그의 원대한 꿈은 첫 단추조차 꿰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법안 42개 가운데 통과된 것은 하나도 없다.
부끄러운 국정 성적표가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을 36%까지 떨어뜨린 결정적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트롱맨 캐릭터가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대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의 퍼스낼리티와 캐릭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다는 것이다. 캐릭터나 퍼스낼리티 문제가 거의 제기되지 않았던 전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여기서 점수를 깎아먹었기 때문에 국정수행 성과와 정책이 주요 이슈가 됐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보다 취임 후 6개월 지지율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강요하면서 기존 판과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려는 스트롱맨 정치인은 전통 언론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언론인이건 정치인이건 맘에 들지 않는 상대에겐 거친 트위트를 날리고, CNN 같은 전통 언론을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운 그이지만 기자회견은 지금까지 1번밖에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행적은 중도층의 불신을 키우고 반대세력을 결집하는 역풍을 불러왔다. 폴리티코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율 50%를 회복하려면 보수층 유권자 전원의 지지를 받거나, 중도층 지지자를 갑절로 늘리거나, 진보 성향 지지자를 4배로 늘려야 한다. 선거 같은 특단의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트럼프 대통령이 스트롱맨 캐릭터를 유지하며 이 같은 기적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제프리 존스 갤럽 수석에디터는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원 사이에서는 꽤 탄탄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으나 여기서 더 물러설 여유는 없다”며 “앞으로 올라갈 일보다 떨어질 일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같은 하락은 공화당원에서 나타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 추가 하락은 불가피한 것일까. 일시적 현상에 그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역대 대통령의 취임 이후 지지율은 ‘허니문 랠리’가 나타나는 초기에 높았다 갈수록 하락하는 전형적인 패턴이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허니문 랠리를 건너뛰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였기 때문에 과거 패턴이 반복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을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공화당원들의 ‘열정’이 당선 이후 시들해지는 ‘열정 갭(enthusiasm gap)’ 현상이 현 지지율에 반영됐다는 의견도 나온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주류 언론과 대립각을 세우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 지지율에 큰 의미를 두긴 어렵다”며 “내년 중간선거가 가시권에 들어오는 연말쯤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과 공화당의 여론 등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기타
그 외에도 전 세계에는 스트롱맨이 많다. 그들 역시 권력을 유지하기가 예전만큼 녹록지 않다.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워낙 발달해 방송과 출판매체만 장악하면 언론을 통제할 수 있던 과거와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 최근 스트롱맨은 모두 반대 진영의 민주화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스트롱맨의 원조’ 푸틴 대통령은 때만 되면 터지는 반푸틴 시위로 곤혹스러운 처지다.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41)가 특히 눈엣가시다.
정부가 장악한 미디어들은 나발니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고 있지만 나발니 트위터는 늘 문전성시다. 나발니는 재기발랄하고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으로 민주주의나 인권 등 추상적 가치가 아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의 부정 축재 보고서나 소치동계올림픽 건설 비리 등을 고발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SNS 검열에 치밀한 중국은 인권운동가 류샤오보의 죽음으로 전 세계의 지탄을 받고 있다. 중국 당국은 류샤오보의 이름뿐 아니라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촛불 사진이나 이모티콘 등도 검열 대상에 올렸으나 촛불을 은어로 사용하는 누리꾼들의 의지를 따라잡지 못했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폴란드 법과정의당 대표는 지난해부터 권력을 강화하려는 시도가 번번이 무산되고 있다. 지난해 낙태금지법을 추진했다 폴란드에서만 10만 명이 모이고, 전 세계 폴란드대사관 앞에 검은색 옷을 입은 여성들이 몰려들어 결국 포기했다. 지난주에도 사법권 장악을 위해 대법관을 법무장관이 임명하는 안을 추진했지만 SNS를 통해 모인 폴란드 시위대 수만 명 앞에서 뜻을 접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