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형남, 노은주 건축가가 설계한 경기 의정부 주택 풍경.
집을 짓기 전 단독주택에 먼저 세를 들어 살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주택에서 중요한 통풍, 채광, 단열에 관해 제대로 알려면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살아보는 것이 낫다. 겉으로는 멀쩡한데 여름에 곰팡이가 생기고, 겨울에는 두툼한 점퍼를 입어야 할 정도로 추운 집에서 살아보면 왜 비싼 돈 들여 건축가와 집을 지어야 하는지 절로 깨닫게 된다는 게 경험자들의 조언이다.
집 짓기의 첫걸음은 공부·발품
이 단계를 거쳐 집을 짓겠다는 결심이 서면 집과 관련된 책 읽기를 권한다. 좋은 집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건축가가 쓴 책과 다양한 단독주택 건축 사례를 모은 책, 적어도 이 두 가지 정도는 읽고 시작하자. 읽다 보면 어렴풋하게나마 좋은 집을 알아보는 눈이 생기고, 실제로 적용 가능한 공간 아이디어와 노하우도 체득할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집 크기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기 삶에 최적화된 스마트한 집을 선호하는 추세다. 집을 진짜 삶의 도구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책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책을 읽는 건 막연하기만 하던 집의 상을 조금씩 구체화하고 집 지을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앞서 집을 지은 사람들 중에는 책을 통해 건축가와 집 짓기의 중요성을 깨닫고 마음에 맞는 건축가를 찾은 이도 많다.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가 설계한 경기 가평 주택의 부부침실에서 내다보이는 전경.
공공택지에 집을 지으려면 택지 분양 정보를 활용하면 된다. 대표적인 방법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신도시나 택지지구에서 공급하는 단독주택지의 필지를 분양받는 것이다. 택지지구의 장점은 도시에 비해 토지 구매비가 저렴하고 전기, 수도, 통신 같은 인프라와 주변 기반 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점이다. 자세한 분양 정보는 LH 토지청약시스템 홈페이지(http://buy.lh.or.kr/main.jsp)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택지개발지구에서는 방향뿐 아니라 내 집 주변에 건물이 들어섰을 때의 상황까지 고려해 필지를 선택한다. 자신이 선택한 대지에 인접한 건물이 최고 높이까지 지어진다고 가정했을 때 채광이나 사생활 침해 문제는 없는지, 도로에 대지가 접하는지 등을 고려하면 무리가 없다. 건축가를 정한 상태라면 땅을 고를 때부터 건축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집 지을 터를 정한 뒤엔 지구단위계획과 토지이용계획 확인원을 검토해야 한다. 지구단위계획에 묶인 곳은 건축물의 용도 제한, 건폐율과 용적률, 건물 높이, 건축물 배치, 형태, 색상, 외장 재료와 지붕 또는 담장에 관한 규제가 있다. 이 규정에 맞게 설계해야 건축 인허가는 물론, 준공 시에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지구단위계획의 구체적인 내용은 해당 구청 도시계획과에서 열람할 수 있다.
개별 토지의 건축 제한 사항은 토지이용계획 확인원을 통해 알아보면 된다. 여기에는 지목, 면적, 공시지가, 건폐율, 용적률, 용도 지역, 해당 법령 등이 표기돼 있다. 해당 토지의 현재 특징과 향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집을 어느 정도 규모로 몇 층까지 지을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인터넷 토지이용규제정보서비스(http://luris.mltm.go.kr)에서 무료로 열람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오래된 동네 주택을 매입해 신축할 계획이라면 지적도를 확인하자. 지적도는 토지의 소재, 지번, 지목, 경계 등을 기록한 지도다. 도시계획 이전에 형성된 동네에서는 땅 모양과 위치가 실제와 달라 이웃집과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서류상으로는 99㎡(약 30평)인데 이웃집 일부가 내 땅에 편입돼 있어 실제 건축 가능한 대지 면적은 그보다 좁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 반대 상황이라면 지적도상에 명시된 내 소유분만 인정해 그에 준한 용적률을 적용한다.
땅을 다 골랐다면 이제 자금을 마련할 차례다.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대출 가능 금액이 적고 금리는 높다. 사실 대출 한도는 제1금융권을 기준으로 할 때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감정가의 60%까지 가능하다. 그런데 아파트는 환금성이 높고 평가와 사후 관리가 쉽기 때문에 거래가와 비슷한 수준에서 감정가가 산출되는 반면, 단독주택 감정가는 그보다 낮게 평가해 실제 대출 가능 금액이 적은 것이다. 단 택지지구 내 단독주택 용지의 경우엔 대출 한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일반 단독주택과 마찬가지로 기본 대출 한도는 감정가의 60%이다. 하지만 개인의 상환 능력과 금융 거래 실적 등에 따라 제1금융권에서도 분양가의 최고 80%까지 대출 가능하기도 하다.
건물 없는 토지를 구매해 집을 짓는다면 두 번의 대출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먼저 토지를 담보로 토지 구매 자금을 대출받은 다음, 여기에 집을 지은 뒤 건물을 담보로 다시 대출 신청을 하는 것이다. 이때 추가 대출이 가능한지, 아니면 이미 대출받은 금액 일부를 상환해야 하는지 등은 건물 완공 후 건물에 대한 감정평가에 따라 결정된다. 금융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보통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토지담보대출 금리보다 낮다. 따라서 집이 완공돼 등기가 완료되면 기존 토지담보대출을 주택담보대출로 전환해 이자 부담을 줄이는 게 좋다.
본격적인 집 짓기는 건축가 선정에서부터 시작된다. 건축가를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잡지나 단행본에 소개된 집 가운데 마음에 드는 집을 스크랩해 그곳을 설계한 건축가를 찾아가는 것이다. 건축가가 쓴 책을 읽고 의뢰하거나, 신도시 택지지구 혹은 단독주택 밀집 동네에서 여러 집을 설계한 건축가를 수소문할 수도 있다. 또한 요즘은 온라인에 판교단독주택 카페나 광교단독주택 카페 등 다양한 모임이 있어 이곳에서 건축가와 해당 지역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
그래도 방법을 모르겠다면 지으려는 집 규모와 가족 사항 및 예산 등을 바탕으로 적절한 건축가를 찾아주는 업체의 도움을 받자. 하우스스타일(www.hausstyle.co.kr)의 ‘유쾌한 집짓기’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주택 설계 경험이 많은 20개 팀 이상의 건축가 그룹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건축가뿐 아니라 시공사와 스타일링도 지원한다. 그 대신 설계비 중 일부를 코디네이팅비로 받는 방식이다. 유쾌한 집짓기 인터넷 블로그(http://blog.naver.com/hausstyle)를 통해 건축가와 해당 프로젝트를 찾아볼 수 있다.
꼼꼼한 계약서로 다툼 없이 집 짓기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가 설계한 경기 의정부 주택의 마당.
시공업체는 보통 두세 업체를 놓고 시공 능력과 견적을 비교해 결정한다. 단 시공업체에 견적서를 요청할 때는 설계 도면을 주고 대략적인 금액을 받아 3.3㎡당 건축비 개념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같은 설계 도면으로도 마감재의 질과 수량에 따라 견적에 큰 차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마감재 종류 및 수량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명세서에 근거한 견적을 받아야 동일한 기준에서 업체 간 비교를 할 수 있다.
건축가, 시공사와 갈등이 생기면 계약서를 근거로 해결하는 게 좋다. 따라서 계약서를 작성할 때 기본 업무 범위와 세부적인 합의 사항까지 꼼꼼하게 기록해야 한다. 건축주, 건축가, 시공사 모두에게 공정하게 작성된 표준계약서가 국토교통부 홈페이지에 있으니, 이를 내려받아 사용하면 된다. 계약서에 사용된 용어가 전문적이라 다소 어려울 수 있으니 계약 체결 전 해당 양식을 읽어보고 추가할 내용이 있는지 확인하자.
건축가와 체결하는 설계 계약서에는 설계자의 업무 범위 등을 명시하고, 시공사와 맺는 계약서에는 건축가로부터 받은 설계도면과 시방서, 시공사가 제출한 세부 견적서 등을 첨부한다. 비용 지급 방법과 시기, 준공 후 하자 발생 시 책임 보수 기간과 범위도 구체적으로 기록한다. 하자에 좀 더 철저하게 대비하려면 하자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지방에서 집을 지을 때는 시공사 선정 및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계약은 타 지역의 경험 많은 시공사와 하고, 실제 시공은 거리상의 문제나 현실적인 제약 때문에 해당 지역 소규모 협력 업체에 위탁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크고 작은 하자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경우 건축주가 직접 현장을 찾아 주요 공정별 마감 상태를 점검하고, 하자 발생 시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기 전에 수정해야 추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서울 옥인동 낡은 한옥을 고쳐 살림집 겸 상업공간으로 꾸민 모습.
시공업체와의 갈등 못지않게 힘든 것이 이웃과 마찰이다. 집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주택가에서는 크고 작은 민원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이로 인해 공사가 지연되면 이는 고스란히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 그런데 집 짓는 동안 구청에 한 건의 민원도 접수되지 않은 건축주도 있었다. 공사 시작 전부터 이웃집을 찾아다니며 일일이 양해를 구하고, 문제가 될 만한 일은 바로바로 해결한 것이다. 그는 또 동네 인력과 가게를 적극 활용해, 규모가 크지 않은 철거 공사는 동네 터줏대감에게 맡기고, 소소한 자재와 물품은 동네 철물점에서 구매했다. 일시적인 제스처가 아니라 진짜 이웃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한 그의 행동은 결국 이웃의 마음을 움직였다. 오래된 동네에서는 법보다 이웃 간 정이 더 강력할 때가 있는 법이다.
사실 집을 지으면서 알아야 할 것과 겪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을 모두 열거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럼에도 마음 고생하지 않고 집을 지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건축 인허가 과정이 까다롭다는 지역에서 순조롭게 진행한 사람도 있고, 애초 정한 기간과 예산에 꼭 맞게 공사를 끝냈다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시공에 들어가기 전 착실히 준비한 사람들이다. 열 일 제치고 전문가처럼 공부하고 연구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자신과 맞는 건축가를 찾고 원만히 소통하면서 설계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그다음부터는 건축가와 시공사를 믿고 원칙과 순리대로 풀어나가면 될 일이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건축주가 비용을 절감하고, 집 짓고도 10년 늙지 않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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