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6

2011.07.18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한컴’의 그 의욕과 열정 다시 볼 수 있을까

  • 정지훈 관동대 IT융합연구소 교수@hiconcep

    입력2011-07-18 11: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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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소프트웨어 불모지인 한국에서 ‘한글과컴퓨터’는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발표하고 한국 시장에서 MS워드의 독주를 저지했다. 한글과컴퓨터를 창립한 현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정보통신(IT) 강국이라는 대한민국도 소프트웨어 분야에선 그 이름이 무색하다. 소프트웨어 불모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 노력한 기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글과컴퓨터(이하 한컴) 역시 그런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현재 드림위즈를 이끄는 이찬진 사장이 1989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벤처사업에 뛰어들면서 한컴 역사는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사(MS)가 세력을 확장해가던 당시 한국의 워드프로세서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삼보컴퓨터에서 개발한 ‘보석글’과 금성의 ‘하나워드’, 그리고 군소회사에서 만든 몇몇 제품이 있었지만 한글 코드가 제각각이었고, 호환성에도 문제가 많았다.

    이런 와중에 한컴은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인 ‘한글 1.0’을 내놓으며 소프트웨어 업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평생을 한글 사랑과 한글 기계화 운동에 헌신했던 한국 최초의 안과의사 공병우 박사와 3벌식 자판 보급운동에 앞장섰던 국어교사 박흥호 씨, 그리고 독학으로 최고의 프로그래머 경지에 오른 정내권 씨가 합류하면서 이 사장은 한컴 드림팀을 만들어냈다.

    드림팀의 기세는 대단했다. 속칭 ‘아래아 한글’로 불리는 한컴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를 장악하던 MS의 MS워드를 제치고 한국 시장에서 1위를 내달렸다. 1993년에는 매출액이 100억 원을 넘어섰고, 한컴 소프트웨어를 정식 등록해 사용하는 사람만 10만 명이 넘었다. 그 후 이 사장은 활발한 인수합병을 통해 한컴의 사업 영역을 넓혔다. 이렇게 합병한 회사 중에는 현재 삼성전자 강태진 전무가 창업했던 나라소프트도 있다.

    하지만 잘나가던 한컴과 이 사장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MS가 ‘윈도 95’를 내놓자 많은 사용자가 오피스 제품군으로 넘어간 것. 게다가 의욕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운 탓에 경영이 갑자기 어려워졌다. 결국 한컴은 1998년 5월 13일 1차 부도를 냈다. 한 달 뒤에는 한글 워드프로세서 개발을 포기하고 소스코드를 넘기는 조건으로 MS에서 1000만~2000만 달러 상당의 투자를 받는다고 발표해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이 사태는 방송사가 메인 뉴스로 보도할 만큼 파장이 컸다. 많은 사람이 한컴을 살리겠다고 나섰다. 1998년 6월 22일 메디슨 이민화 회장이 주도하고 한글학회 등 여러 단체가 참여해 ‘한글지키기운동본부’를 만들었다. 결국 한컴은 1998년 7월 20일 한글지키기운동본부에서 100억 원의 투자를 받는 조건으로 MS와의 계약을 파기했다. 이 과정에서 이 사장은 한컴을 떠나게 됐다.

    1998년 8월 15일 한컴은 한글 97을 개선한 한글 815 특별판을 발매해 70만 카피를 팔면서 반전에 성공했다. 이후 외자 유치에 성공하고 후속 인터넷서비스를 발표하면서 회생했다. 한컴 사태는 사용자로 하여금 불법 복제의 폐해에 눈뜨게 만들어 소프트웨어 정품 사용 운동을 확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드림위즈 이찬진 사장
    한컴은 공룡 MS에 맞섰던 기업이다. 비록 그들의 성공은 제한적 수준에 그쳤지만, 그 패기만큼은 대단했다. 세상을 바꾸려는 의욕과 열정을 가진 젊은이들을 다시 볼 수 있길 간절히 희망한다.

    * 정지훈 교수는 의사이면서 IT 전문가라는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현재 관동대 의과대 명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이자 IT융합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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