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92

..

자연이 키운 맛, 인공이 당할 수 있나

  •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foodi2@naver.com

    입력2007-06-27 14:45: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자연이 키운 맛, 인공이 당할 수 있나
    “모르고 먹는 게 약이야.”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다가 음식재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동행이 있으면 가끔 하는 말이다. 식당 음식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려고 무척 노력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가 때로는 얄밉기까지 하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사회에서 좋은 음식재료를 확보해 조미료 따위를 넣지 않고 음식을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내 책상에는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이 놓여 있다. 먹을거리를 제 손으로 가꾸어 딱 그만큼만 먹고 산다는 것, 이게 참살이의 모범이라는 것은 다 안다. 그러나 니어링 부부처럼 살라고 하면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그래서 흔히 이런 식으로 절충한다. ‘최소한 패스트푸드는 먹지 말자. 유기농을 주로 먹자. 화학조미료는 쓰지 말자.’나도 이 정도의 삶밖에 살지 못한다. 좋은 줄 알면서 실천하지 못하는 인생이라니!

    우리 아이들과 패스트푸드는 절대 안 먹기로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 패스트푸드라는 게 한번 인이 박이면 끊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프라이드치킨 잉잉잉…, 피자 잉잉잉….” 징징거리면 안 사주고는 못 배긴다. 아이들보다 더 힘든 것은 아내다. 전화 한 통이면 다 해결되던 것이 이제는 일일이 간식 따위를 해서 아이들에게 갖다 바쳐야 한다. 그래서 가끔 내가 집을 비울 때면 아이들과 작당해 별별 것을 다 시켜먹는 줄 알면서도 아무 소리 하지 않는다.

    우리 집 부엌에는 인공 식재료가 없다. 산분해 간장, 탈지대두가 들어간 된장과 고추장 등을 버리고 믿을 만한 곳에서 재래식으로 만든 것을 구해 먹는다. 집에서 만들 수 없는 소스류는 인공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골라 쓴다. 그런데 이 정도 일만으로도 퍽 힘들다.

    집에서도 사정이 이런데 대중식당 가운데 이만큼 신경 써서 음식을 내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식당이야 식자재 원가를 낮춰야 하는 까닭도 있겠지만 인공조미료와 가공 식자재 맛에 길들여진 소비자의 입맛에도 원인이 있다.



    정직한 음식 내는 식당 갈수록 줄어 ‘아쉬움’

    양심적인 식당 주인이나 주방장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저희도 인공의 맛은 버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런 음식은 손님들이 맛없다고 외면하는데 어떡합니까.” 이런 말을 들으면 정말이지 힘이 탁 풀린다.

    그렇다고 니어링 부부의 ‘소박한 식탁’ 같은 음식을 내는 곳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장류를 담그고 제철 음식재료를 구해 전통적인 방식으로 음식을 내는 곳이 있기는 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역사학자 박문기 씨가 운영하는 전북 정읍의 ‘백학관광농원’이다. 이 농원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단군시대 이전의 역사와 민속 풍물 등을 배울 수 있는데, 그보다 더 관심이 간 것은 정직한 음식이다. 백학농원에서는 직접 농사지은 재료로 음식을 낸다. 차려내는 것은 집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계절나물과 김치, 장아찌, 두부, 된장찌개 등등. 그러나 그 맛의 깊이는 분명 다르다.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맛이다.

    요즘 우리 집 식탁에는 노지에서 무공해로 기른 상추 쑥갓 오이 고추 등이 오른다. 회사에서 가꾸는 텃밭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아이들이 이 채소들을 맛보고는 깜빡 넘어간다. 된장에 쌈싸 먹거나 찍어 먹을 뿐인데도 정말 맛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유기농이라고 하지만 대부분 하우스에서 양액 먹고 자란 채소는 노지에서 햇볕 받고 자란 것과는 향이나 식감부터 다르다. 이런 자연의 맛은 인공이 스며들면 오히려 맛을 버린다.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은 어찌 보면 ‘최고의 밥상’이다. 그렇다면 맛 칼럼니스트인 내가 맛있는 식당을 찾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인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래도 백학농원 같은 곳이 전국 곳곳에 널려 있어 다 다니는 데만 몇 년 걸렸으면 좋겠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