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2

2003.12.04

쫓고… 숨고… 거리 곳곳서 ‘숨바꼭질’

불법체류 외국인 숨가쁜 단속 … 추방 위기 노동자들 “일한 죄밖에…” 눈물과 탄식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11-27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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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쫓고… 숨고… 거리 곳곳서 ‘숨바꼭질’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하기 위해 출동하는 합동단속반.

    ”난감합니다. 비도 오고, 도대체 다들 어디로 숨어버렸는지….”

    11월20일 오전 10시30분께 경기 안양시 인덕원 사거리 동안파출소. 이곳에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4명과 지원 나온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형사 10명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를 단속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이날 합동단속에 나선 이들은 서울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 2명과 경찰 5명으로 편성한 14개 조사반 가운데 11, 12반 소속이다. 기자는 이들과 한 조가 돼 안양시와 의왕시 일대를 둘러보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김학신 11반장(조사계장)이 하루를 공치게 생겼다며 투덜거렸다.

    이들은 의왕시 계원조형예대(이하 계원예대) 근처의 W모텔에서 조선족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만 종업원들이 일하러 나오는 시간이 오후 2시반께여서 그때까지의 행동계획을 세워야 했다. 일단 11반은 인덕원 근처를, 12반은 안양시 외곽을 살펴보기로 했다. 단속대상자는 합법화 대상자이면서 자진신고하지 않은 3만8000명과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4년 이상 국내 체류자, 밀입국자 및 위·변조 여권 소지자 8만6000명으로 12만4000여명이나 된다. 50개 단속반이 전국에 퍼져 있는 이 많은 인원을 단속해야 하는 상황이다.

    주인은 시치미, 노동자는 도주



    쫓고… 숨고… 거리 곳곳서 ‘숨바꼭질’

    단속 나가기 전 안양시 인덕원의 한 파출소에서 회의하고 있는 합동단속반.

    오전에는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점심식사를 한 뒤 11, 12반은 음식점이 많은 백운호수 쪽으로 향했다. 그 사이 빗방울이 더욱 굵어졌다. 호숫가에 있는 T한식집에서 조선족 말투 비슷한 말투를 쓰는 50대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아주머니, 고향이 어디예요?”

    “원래는 충청도인데, 경상도이기도 하지.”

    “충청도예요, 경상도예요?”

    그러나 단속반원이 다그쳐도 아주머니는 자꾸 웃기만 했다. 경찰이 주민등록증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고 하고, 주민등록번호를 묻자 “모른다”고 했다. 답답한 건 오히려 단속반이었다. 단속반원이 “전 대통령들 이름이 뭐냐”고 묻자 아주머니는 “글쎄, 전에는 다 알았는디 지금은 잘 모르것네” 하며 멋쩍어했다. 한참을 우물쭈물하던 아주머니는 결국 2, 3분이 지나서야 전직 대통령들의 이름을 죽 늘어놓았다.

    쫓고… 숨고… 거리 곳곳서 ‘숨바꼭질’

    불법체류하고 있는 조선족 여성 두 명(가운데)이 단속반을 피해 도망갔다 다시 붙잡혔다(위). W모텔 사무실에서 불법체류자들을 조사하고 있는 단속반.

    M가든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는 “주소 말했으면 됐지, 왜 나한테 시비야. 주민등록증은 집에 있는데 그것 가지러 집까지 갔다 오란 말이야? 집에 갔다 오는 데 2시간 걸려. 2시간 일하면 돈이 얼만데. 법무부 장관 오라고 그래, 난 겁날 것 없으니까” 하고 쏘아붙여 단속반원들을 쩔쩔매게 했다.

    오후 2시10분께. 단속반원들은 다시 인덕원 사거리에서 작전회의를 했다. 이제 제보받은 곳으로 갈 시간이다. 단속반원들은 봉고차 두 대에 나눠 타고 불법체류자가 일하고 있다는 계원예대 인근의 W모텔로 향했다. 모텔까지는 차로 20여분 걸리는 거리다.

    단속반원이 들이닥치자 주인은 시치미 떼기에 바빴다. 주인은 “불법체류 노동자는 절대 안 쓴다”며 일단 단속반원들을 모텔 입구 사무실로 몰아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노련한 우수명 위동섭 경위 등이 곧장 모텔 옥탑방으로 달려갔고, 박용순 오태록 이병휘 경사 등이 모텔 각 층을 돌아다니며 청소부들을 한 명씩 붙잡았다. 그새 한 명은 단속반원을 피해 도망쳤다.

    정의홍 계장과 이영재 경사, 그리고 기자는 모텔 입구에 있는 사무실에서 휴대용 등록외국인조회기로 신원조회에 들어갔다. 붙잡힌 조선족 청년 주모씨(32)와 김모씨(56), 한족 반모씨(28)는 불안한 눈빛으로 단속반원들을 쳐다보았다. 주씨와 반씨는 2000년 8월에 입국했다고 주장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이 명확치 않았다. 조회기상에는 1998년 입국한 것으로 나타났다. 체류기간이 4년을 넘은, 합법화 대상에서 제외되는 불법체류자였다. 주씨가 자꾸 한탄이며 거짓말을 늘어놓자 단속반원이 쏘아붙였다.

    “98년에 들어왔으면 돈 많이 벌었겠네. 당신이 나가야 다른 사람도 와서 일하고 그러지.”

    외국인 노동자가 출입국관리사무소 심사과 직원에게 자신의 딱한 사정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으면 신원보증인에게 신병이 인도돼 일정기간 강제추방 처분을 면할 수 있다. 기자는 그들로 하여금 국적, 성명, 근무지, 급여 등 기본사항을 진술서에 적도록 했다. 김씨는 “손이 떨려 못 적겠어요”라며 곧 울먹였다.

    그때 추가로 김모씨(48)와 안모씨(52) 등 5명이 잡혀왔다. W모텔 주인은 단속반원들이 어떻게 자신의 모텔에 들이닥쳤는지 의아해하는 듯했다.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사업주는 최고 2000만원까지 벌금형을 받게 된다.

    오후 3시10분, W모텔에서 나온 단속반원들은 이웃한 L마트로 이동했다. 대형 마트에서 청소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탐문수사를 벌이기로 한 것. 그러나 L마트에서는 불법체류자를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30여분 뒤 L마트를 나오던 박용훈 경장이 나란히 걸어가는 두 여자를 주시하는가 싶더니 그쪽으로 달려갔다. 다른 일행도 그를 쫓아갔다.

    “주민등록증 좀 봅시다.”

    두 여자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 박경장은 “이 두 사람, 아까 W모텔 옆 M모텔에서 다급하게 나오는 것 봤어요. M모텔에서는 절대 외국인 노동자 안 쓴다고 딱 잡아떼더니. W모텔에서 미리 피하라고 연락해준 겁니다”고 말했다.

    내년 6월 말까지 지속적인 단속

    불법체류자인 김씨(38)와 박씨(27)는 “왜 큰 도둑은 안 잡고 죄 없는 우리만 이리 닦달하느냐”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단속반원들은 이들을 데리고 고용확인서를 받기 위해 M모텔로 이동했다. 김씨가 갑자기 모텔 입구에 주저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억울하다 싶은 모양이었다.

    “그래, 할 수 없어. 가긴 가야지. 그런데 난 죄 없어. 일한 죄밖에 없어. 남편….”

    그는 남편이란 말을 내뱉고는 갑자기 가슴을 치며 괴로워했다. 그는 남편과 97년 함께 입국했는데 얼마 전 남편이 바람이 나 모아둔 돈을 몽땅 갖고 도망갔고, 최근에는 병이 들어 큰 수술까지 하느라 빚만 졌다고 했다. 중국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목이 멘다며 그는 서럽게 울었다.

    오늘 단속한 인원은 모두 10명. 17일부터 시작된 합동단속에서 11반, 12반은 하루 평균 10여명을 단속했다. 아침부터 비타령 하며 걱정하던 김학신 반장의 얼굴에 비로소 조금 희색이 감돌았다.

    오후 4시30분. 합동단속반은 다시 인덕원 사거리 동부지구대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과 경찰들은 다음날 하남시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경찰 봉고 차량에 타고 있던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출입국관리사무소 차량으로 옮겨 타게 했다. 그러던 중 김씨가 손에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땅에 떨어뜨렸다. 가방이 젖어 안에 든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의 얼굴이 다시 일그러졌다. 한국에서 성공해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그의 희망도 그처럼 허망하게 흩어져버릴 위기에 처했을 거라는 생각에 애처로웠다.

    11월 말 현재 전국의 출입국관리사무소와 화성·여수 외국인보호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1800여명. 이미 500명 이상이 수용돼 있어 이번 합동단속으로 수용인원을 금세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문화춘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조사3과장은 “보호소 시설을 넓히고 있고, 보호소에 머물고 있는 이들에 대한 심사가 이뤄지면서 여유가 생기고 있다”며 “단속을 내년 6월 말까지 지속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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