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6

2015.09.21

제품 결함 아니지만 수리는 해준다고?

삼성 갤럭시노트5, LG G2 결함 논란…증명은 소비자 몫, 뭉치면 무상수리로 태도 바꿔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9-18 17: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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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이폰4가 출시됐을 때 일이다. 아이폰4의 금속 테두리를 쥐고 있으면 통화 감도가 떨어지는 일명 ‘데스그립(death grip)’ 현상을 발견해 문제를 제기한 소비자에게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를 그렇게 잡지 마라”며 사용자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투의 e메일 답변을 했다 논란을 키웠다. 이 문제는 휴대전화 범퍼케이스 등을 장착해 해당 부분에 손이 닿지 않으면 해결할 수 있었다. 애플은 이후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제는 아이폰4 외에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삼성 등 다른 회사 제품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며 보상책으로 “모든 아이폰4 구매자에게 무상 케이스를 제공하고, 범퍼케이스를 구매한 고객에게는 환불해주겠다. 고객이 원한다면 개통 30일 이내 개통 철회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대기업들이 자사 제품에 대해 불거진 결함 의혹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며 수년 전 애플의 대처 방식이 떠올랐다. 얼마 전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삼성전자의 주력 모델 갤럭시노트5는 기존 노트 시리즈보다 진일보한 터치펜(S펜)을 차용해 많은 소비자의 눈길을 끌었다. S펜은 삼성의 노트 시리즈를 타사 제품과 차별화하는 기능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기능이어도 손이 잘 가지 않으면 무용지물. 삼성전자는 펜을 꺼내는 과정을 좀 더 편리하게 만들고자 원 클릭으로 S펜을 넣고 빼는 게 가능하도록 설계를 변경했다. S펜을 꺼내려면 하단을 손으로 잡고 빼야 했던 기존 노트 시리즈와 달리, 노트5의 S펜은 노크식 볼펜처럼 펜 끝을 손가락으로 누르면 ‘딸깍’ 하고 빠져나온다.

    설명서 안 따랐다 고장 나면 누구 탓?

    문제는 출시 후 얼마 되지 않아 해외 언론에서 ‘노트5의 S펜을 본체에 거꾸로 꽂으면 고장이 난다’며 설계 결함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안드로이드 폴리스와 아스테크니카 등 해외 정보기술(IT) 매체들은 ‘S펜을 거꾸로 꽂으려 하면 S펜이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정상적인 방향으로 넣을 때보다 힘을 많이 줘야 했던 기존 모델과 달리 너무 쉽게 거꾸로 들어간다’고 지적했다. 노트1부터 노트3까지는 펜 끝이 돌출돼 있어 홀더에 반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노트4는 펜을 반대로 넣을 수는 있지만 꺼낼 때 고장 나는 부분은 없었다. 그러나 노트5는 펜을 거꾸로 넣으면 들어가긴 하는데 꺼내는 과정에서 펜 인식 센서가 고장 나 노트 시리즈의 제 기능을 쓸 수 없게 된다. 이런 의혹에 대한 삼성전자 미국 법인의 답변은 “설명서 따르기를 권고한다”였다.



    이런 사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확산되며 화제를 모았다. 논란의 진위를 확인코자 제품에 펜을 거꾸로 넣었다 서비스센터를 찾는 웃지 못할 사례도 발생했다. 시장조사기관 애틀러스 리서치앤컨설팅에 따르면 8월 20일 발매 이후 첫 주 동안 노트5는 국내 스마트폰 판매량 점유율 22.3%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불거진 내용이 삼성전자 측도 당황스러웠을 터. 삼성전자 관계자는 “해당 내용은 제품 설계 결함 등의 불량이 아니며, 오사용 방지를 위해 사용자 설명서 등을 통해 안내하고 있다. 사용 중 해당 문제가 발생할 경우 가까운 삼성전자서비스에 문의하면 적절한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답했다.

    제품 결함 아니지만 수리는 해준다고?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는 기존 노트 시리즈와 달리 S펜 끝을 누르면 빠져나오도록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서 S펜이 거꾸로도 무리 없이 들어가 논란이 되고 있다.

    수많은 기사가 쏟아진 탓에 이제는 노트5의 S펜을 거꾸로 넣는 소비자는 거의 없으리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기자가 9월 초 한 휴대전화 판매 매장에서 노트5의 기능을 설명해달라고 하자 판매원은 “아시죠? 펜 거꾸로 넣으면 고장 나는 거”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노트5 S펜’이라고 쓰면 ‘거꾸로’라는 단어가 자동완성으로 따라붙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관련 내용을 검색한 것이다. 일부 소비자는 ‘노트5 S펜 거꾸로 넣었을 때 고장 내지 않고 빼는 법’도 공유하고 있다. 이제 전 국민이 노트5의 S펜을 거꾸로 넣으면 고장이 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직장인 윤모(27) 씨도 S펜을 잘못 넣었다 노트5 구매 일주일 만에 삼성전자서비스를 찾았다. 다행히 무상수리를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이 있다고 했다. 윤씨는 “기존에 쓰던 노트2, 노트3는 펜을 거꾸로 삽입하는 것 자체가 되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는데, 노트5는 펜을 거꾸로 넣으면 끝까지 들어간다는 점에서 설계 문제가 아닌지 궁금하다. 설명서에 적을 거였으면 애초 제품을 내놓기 전 개선할 수는 없었을까. 앞으론 펜을 넣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야겠다”고 말했다.

    소비자 탓하는 사용자들

    제품 결함 아니지만 수리는 해준다고?

    LG전자 G2 사용자들이 터치 불량 문제를 논의하고자 만든 인터넷 카페.

    삼성전자는 해당 문제로 수리를 받은 이용자가 있기는 하지만 극소수라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은 “아직까지 노트5의 결함에 대해 접수된 건은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노트5의 한글과 영문 온라인 설명서에는 ‘S펜을 끼울 때 펜촉부터 밀어 넣지 않으면 S펜 삽입구에 S펜이 끼일 수 있습니다. 이때 무리한 힘을 주어 S펜을 빼낼 경우 S펜과 제품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수십 장에 달하는 설명서를 꼼꼼히 정독하는 소비자가 얼마나 될 것이며, 설명서를 읽지 않았더라도 기존 버전에서 없던 문제가 생긴다면 소비자는 당황할 것이다. 삼성전자 측 주장대로 이것이 제품 결함이 아니더라도 제작 과정에서 문제를 인지했다면 테스트 단계에서 개선 방향을 연구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노이즈마케팅까지 생각한 게 아니라면 괜한 트집거리를 제공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휴대전화 수리업체 관계자는 “노트5는 기존 노트 시리즈와 달리 스마트폰 펜이 반자동으로 나오는 방식이다. 설계 시 부피를 덜 차지하고 단가도 저렴해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펜 뒷부분을 좀 더 신경 썼다면 이 방식을 쓰면서도 충분히 펜이 거꾸로 들어가지 않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 IT 업계 전문가는 “노트5의 S펜은 앞으로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예상되는 오토 이젝트 방식의 중간 단계다. 아이폰6S를 견제하고자 급하게 내놓는 과정에서 전작인 노트4까지 있었던 S펜을 뺄 수 있는 기능을 제거한 실수로 보인다. 많은 해외 언론이 스티브 잡스의 ‘그렇게 잡지 마라’를 비판하던 수준으로 노트5의 S펜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설명서에 명시했다 해도 ‘그렇게 넣지 마라’는 말이 당시 애플의 초기 대응과 차이가 커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재미있는 건 해외와 달리 국내에서는 일부 소비자가 사용자를 탓하며 기업 편을 들고 있다는 점이다. 노트5의 S펜은 설계 결함이라는 일부 소비자의 주장에 대해 또 다른 소비자들은 “정상적인 사용자라면 펜을 거꾸로 넣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힘을 줘야만 들어갈 수 있는데 고장을 냈다면 설명서를 숙지하지 않은 사용자의 과실”이라며 기업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 그나마 중립적인 의견은 “다음 버전인 노트6에서 S펜이 어떤 형태로 나오는지를 지켜보면 이게 결함이었는지 아닌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 정도다.

    고객 품질 만족 차원에서 자발적 수리

    제품 결함 아니지만 수리는 해준다고?

    2013년 LG전자가 출시한 스마트폰 G2.

    전자제품 회사들이 설명서에 넣는 다양한 금지사항이 모두 결함인 것은 아니다. 설명서가 빼곡해진 건 제조물책임법(PL법)의 영향이다. 만약 제품에 결함이 있다면 매뉴얼에 해당 내용을 고지한 것만으로 책임을 피해갈 수 있을까. 법무법인 한길의 문정구 변호사는 “제품 특성상 소비자가 실수할 수 있을 정도로 설계나 구조상 결함이 있는 것이 확인됐다면 설명서에 써놓았다고 해서 면책되지는 않는다. 휴대전화 폭발사고 같은 경우에는 사람이 다치는 등 추가적 손해가 발생하지만, 해당 사안은 물품상의 하자라는 게 확인될 경우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결함을 판단하는 기준은 좀 더 신중하다. 다수의 합리적인 소비자가 반복적으로 실수하는 데이터가 축적된다면 결함으로 볼 수도 있으나, 극소수의 사용자만 실수한다면 결함으로 판단할 개연성은 낮아진다.

    “예를 들어 휴대전화 배터리를 반대로 끼우면 고장 날 수도 있지만, 설계상 반대로 넣을 수 없게 돼 있고 그것 때문에 문제가 생긴 일도 없었죠.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걸 소비자가 입증하려면 의미 있는 사례를 집적하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한두 건 만으로는 결함을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국내에서의 결함은 다수 소비자가 증명해야 하는 일이지, 기업이 찾아서 해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다수 사례에서 기업들은 ‘제품 결함은 아니지만 서비스 차원에서’ 무상수리를 해주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 짓는다.

    한국소비자원은 9월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CISS)에 소비자가 LG전자의 스마트폰 G2를 구매해 사용하던 중 액정화면 터치 불량으로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례가 접수돼 조사를 실시했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조사 결과, 사용 환경에 따라 일부 제품에서 내부로 수분이나 땀 등이 들어가면 터치를 감지하는 부품이 부식돼 터치해도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시정조치를 권고했고, LG전자가 이를 수용해 2013년 8월 7일부터 판매한 G2 모델 155만여 대 가운데 해당 문제가 발생하는 제품에 한해 9월 7일부터 무상수리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단 외부 충격으로 인한 액정 파손, 침수, 사설업체에서 수리하고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무상수리 대상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안전국 안전감시팀 관계자는 “CISS에 터치 불량 접수 건이 올라와 조사하던 중 소비자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고했고 LG전자 측이 그 부분에 대해 무상수리를 하겠다고 밝힌 것”이라고 말했다. 7월 개설된 네이버 카페 ‘LG G2 터치 불량 사용자 모임’의 회원 수는 3200여 명이다. G2를 사용해온 정모(26) 씨는 “이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게 2013년 말부터였다. 그동안 LG에서 보증기간이 끝났으니 유상수리를 하라고 하던 사안인데, 소비자가 뭉치니 이제야 무상으로 한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LG전자 관계자는 “해당 문제는 제품 결함은 아니며, 고객 품질 만족 차원에서 자발적인 무상수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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