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6

2015.09.21

광고야, 드라마야? 무차별 PPL

욕먹어도 인지도 상승효과 포기 못 해…자율 운영 가이드라인 비웃는 과당광고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09-18 17: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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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야, 드라마야? 무차별 PPL

    9월 2일 방영된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 9화는 ‘직방’ 애플리케이션을 노골적으로 광고해 시청자들의 불만을 샀다.

    “이게 드라마냐. CF인 줄….” “용팔이가 아니라 방팔이. 드라마에서 이것저것 다 팔아라.”

    SBS 수목드라마 ‘용팔이’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9월 2일 방영된 9화에 어색한 간접광고가 등장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 남자 주인공 주원이 상대역인 김태희에게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괜찮아. 같이 살 방을 구해보자”며 휴대전화로 ‘직방’ 애플리케이션(앱)을 켠다. 주원은 김태희에게 “보증금 5000만 원에 월세 75만 원의 오피스텔이 좋겠다”고 권하고,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듯 휴대전화 화면을 바라본다. ‘직방’ 광고모델인 주원이 자신이 출연하는 드라마에서도 간접광고를 하자 시청자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드라마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방송을 보다 확 깼다’거나 ‘광고가 노골적이다’ 등 비판성 글이 잇달았다.

    PPL(Product Placement)이라 부르는 간접광고는 마케팅의 일종이다. 방송이나 영화에 특정 브랜드 또는 제품을 노출해 상품의 인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영상 관련 소품을 활용해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장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개연성이 없거나 노골적인 PPL은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어쨌거나 광고만 하면 된다’는 얄팍한 상술 때문이다.

    제작비 메꿔주고 인지도 높이고

    8월 3일부터 방영 중인 SBS 월화드라마 ‘미세스 캅’은 최근 부자연스러운 삼성전자 PPL로 논란을 일으켰다. 8월 24일 방영된 7화에는 주인공 김희애가 카페에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5’로 커피를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희애는 카페 계산대에서 “요즘 형사에겐 이게 필수야”라며 ‘삼성페이’로 결제한다. 그러나 누리꾼들 반응은 ‘과연 형사들 중 삼성페이 사용자가 얼마나 될까’가 대세였다. 6월 20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프로듀사’는 다른 신발을 두 번이나 퇴짜 놓은 다음에 낙점한 ‘스베누’ 운동화를 클로즈업해 시청자들로부터 ‘협찬 광고임을 대놓고 보여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아예 드라마의 주요 촬영장을 PPL로 지원받는 경우도 있다. 8월 28일 종영된 KBS 아침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는 남자 주인공이 본업인 의사를 그만두고 카페 사장으로 변신하는 설정이다. 이때 나오는 카페가 프랜차이즈 ‘오가다’다. 오가다는 드라마 전반에 걸쳐 브랜드 로고와 카페 내부, 음료까지 여러 번 등장했다.

    PPL을 지원하는 업체의 목표는 먼저 ‘인지도 상승’이다. 오가다 관계자는 “오가다 로고가 화면에 나온 이후 주부들로부터 창업 문의가 늘었고, 아침마다 방송이 끝날 때쯤엔 오가다 홈페이지 접속률이 급증해 광고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직방 개발사인 채널브리즈 관계자도 “‘용팔이’의 직방 PPL 장면에서 안드로이드 앱 서버 접속자만 1만 명을 넘어서는 등 순간적으로 폭증했다”며 “이번 간접광고로 ‘부동산 앱’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1위로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회사 내부에선 성공적인 마케팅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들로부터 야유를 받든 말든 ‘브랜드 각인 효과’만 누리면 된다는 식이다.

    방송 관계자들의 말에 따르면 현 방송 제작환경에서 간접광고는 배제할 수 없다. 모 드라마 제작사 PD인 문성훈(40·가명) 씨는 “드라마 1회 제작비가 3억5000만~4억 원이다. 그중 방송국에서 지원하는 제작비는 2억~2억5000만 원밖에 안 된다. 따라서 회당 1억 원 넘는 비용을 충당하려면 PPL이 필수”라고 말했다. 문씨는 “드라마 제작이 급하게 진행될 경우엔 본방송 1시간 전까지도 촬영하기 때문에 편집본을 냉정하게 검토할 시간이 없다. 부자연스러운 PPL은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만, 협찬을 받아야만 제작이 진행되는 현실상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PPL 업체가 ‘갑’ 행세를 할 때 가장 난처한 쪽은 방송작가다. 업체 요구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는 일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방송작가 윤지영(34·가명) 씨는 “PPL 업체가 권력을 행사하면 촬영장소나 소품은 물론 배우 연기도 바꿔야 한다. 심한 경우 업체가 방송 편집본을 보면서 제품을 사용하는 배우를 바꿔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며 “작가의 창의성을 침해한다는 생각이 종종 들지만 제작비 조달 때문에 참고 타협점을 찾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광고야, 드라마야? 무차별 PPL

    8월 28일 종영된 KBS 아침드라마 ‘오늘부터 사랑해’는 극 전반에 걸쳐 카페 ‘오가다’를 간접광고(PPL)했다. SBS 월화드라마 ‘미세스 캅’은 8월 24일 방영된 7화에서 전자결제 시스템인 ‘삼성페이’를 간접광고했다. 6월 20일 종영된 KBS 수목드라마 ‘프로듀사’는 PPL로 ‘스베누’ 운동화를 노출했다(왼쪽부터).

    스타 캐스팅 따라 PPL 규모 달라져

    PPL을 지원하는 업체가 늘 ‘갑’인 것은 아니다. 드라마에 스타 배우가 출연하면 여러 업체가 PPL을 먼저 지원하려고 나선다. 모 지상파 방송 계열사에서 드라마를 연출하는 명인호(36·가명) 씨는 “드라마에서는 스타 캐스팅이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PPL 업체들도 출연 배우에 주목하고, PPL로 많으면 15억 원까지 지원받는다”고 말했다. 연예계 뒷얘기를 털어놓는 케이블채널 E채널의 ‘용감한 기자들’에서는 6월 모 패션 전문기자가 “KBS 수목드라마 ‘프로듀사’의 제작비 48억 원 중 20억 원이 PPL지원이다. 김수현, 아이유 등 스타들 덕분에 많은 협찬을 받은 것”이라고 말해 시청자들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부자연스러운 간접광고를 규제할 방안은 없을까. 한국방송협회가 2013년 발표한 ‘간접광고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프로그램 전개와 무관하게 삽입된 집중적이고 과도한 노출이 흐름을 저해하거나, 출연진의 과도한 반응, 리액션이 프로그램에 대한 집중을 저해하는지 여부’ 등에 따라 자연스러운 노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간접광고로 노출되는 상표, 로고 등 상품을 알 수 있는 표시의 노출 시간은 해당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5를 초과하지 않는다’ 등 관련 규제가 있다. 하지만 이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도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당광고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방송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서범석 세명대 광고홍보학과 교수는 “국내 PPL의 가장 큰 문제는 방송 콘텐츠와 광고가 분리되지 않는 점”이라며 “방송의 핵심 내용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광고가 진행되지 않으면 시청권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 방송업계에서 광고 관련 규제는 아직 미미한 만큼 시청자들이 과당광고를 경계하고 자율적으로 비판할 수 있도록 사회적 차원에서 교육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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