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6

2015.09.21

슈틸리케 스타일 확 달라진 ‘국대’

학연·지연 얽매이지 않고 포지션별 경쟁구도로 전반적 전력 상승 이끌어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9-18 16:1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슈틸리케 스타일 확 달라진 ‘국대’

    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울리 슈틸리케(61·독일)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취임 1년을 맞았다. 2014년 9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10월 10일 파라과이전(2-0 승)을 통해 데뷔전을 치른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 1년 동안 대표팀 체질 개선에 성공하고 기대 이상의 성적도 이끌어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1무2패, 참담한 성적으로 조별리그 탈락이란 아픔을 겪은 한국 축구는 홍명보 전 감독 교체와 새 사령탑 선임 과정에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고집에 가까운 ‘선수 편애’로 ‘엔트으리’라는 비아냥거림을 받다 최악의 성적을 낸 홍 전 감독은 ‘재신임 후 자진사퇴’라는 매끄럽지 못한 모습으로 옷을 벗었다. 이후 학연과 지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외국인 사령탑 영입으로 방향을 튼 대한축구협회는 베르트 판마르베이크(네덜란드) 감독을 최우선순위로 놓고 협상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결국 슈틸리케 감독은 ‘2순위 사령탑’이란 달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한국 땅을 밟았다. 감독 경력이 화려하지 않은 그가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됐을 때 기대보다 우려의 시선이 많았던 게 사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우려의 시선을 긍정의 눈빛으로 바꾸는 데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시작은 2순위 사령탑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의 ‘구원투수’로 선택된 그는 1월 2015 호주아시안컵에서 27년 만에 준우승을 일궈냈고, 8월 2015 동아시안컵에서 7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했다. 6월부터 시작된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3경기에서도 모두 승리를 거두는 등 훌륭하게 팀을 이끌고 있다.



    과거 한국 축구대표팀의 지휘봉을 잡았던 6명의 이방인 사령탑은 대부분 취임 초기 어려움을 겪었다.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한 거스 히딩크(네덜란드) 전 감독조차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프랑스와 체코에 잇달아 0-5로 대패하며 ‘오대영 감독’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 큰 외풍을 견뎌야 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슈틸리케 감독은 ‘기대 이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 사령탑까지 범위를 넓힌다 해도 슈틸리케 감독처럼 성공적인 첫 1년을 보낸 감독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한국 대표팀은 모두 20경기를 치러 14승3무3패를 기록했다. 35점을 넣었고 8점을 실점했다. 경기당 평균 1.75점을 뽑았고, 0.4점을 내줬다. 9월 라오스, 레바논과 치른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각각 8골과 3골 등 총 11골을 넣어 평균득점이 훌쩍 올라갔음에도 아직까지 경기당 평균득점이 채 2점이 되지 않지만, 실점은 충분히 눈여겨볼 만하다. 20경기 중 무실점 경기가 15개나 된다. 문전처리 미숙 못지않게 한동안 한국 축구의 고질적인 병폐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중앙수비 불안 문제를 해결하며 ‘짠물 수비’를 펼쳤다. 축구계 오랜 격언 중 하나이자, 슈틸리케 감독이 수차례 강조했던 말이 있다. ‘공격을 잘하는 팀은 이길 수 있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할 수 있다.’ 쉽게 골문을 허락하지 않는 탄탄한 수비, 지난 1년을 숫자로 돌아볼 때 슈틸리케 감독이 만들어낸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이후 이동국(전북), 박주영(서울), 염기훈(수원), 김신욱(울산)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적어도 한 번 이상씩 대표팀 기회를 줬다. 장기적으로 2018 러시아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그는, 그러나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 싶으면 다시 부르지 않았다. “모든 이에게 대표팀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나가는 문도 항상 열려 있다”는 말 속에 그가 대표팀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대표팀 사령탑으로서 그가 가진 철학과 선수단 운용 원칙이다.

    슈틸리케 스타일 확 달라진 ‘국대’

    9월 3일 경기 화성종합경기타운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라오스와의 G조 2차전에 원톱으로 출격한 석현준이 A매치 첫 골을 성공한 뒤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석현준은 ‘슈틸리케 감독이 선택하면 첫 경기부터 골을 넣는다’는 기분 좋은 법칙을 이어갔다.

    원칙 있는 선수 발탁과 기용

    슈틸리케 스타일 확 달라진 ‘국대’
    전임 홍명보 감독이 자신과 호흡을 맞췄던 일부 선수만 중용하며 ‘인재풀’에 스스로 한계를 뒀던 것과 달리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은 물론, 챌린지(2부리그)와 아마추어 현장까지 직접 발로 누비며 새로운 얼굴 발굴에 힘을 썼다. 특히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K리그 선수들에게 기회를 줬고,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웠다.

    슈틸리케 감독은 짧은 기간 내 대표팀 체질 개선에 성공했고, 포지션별 경쟁구도를 통해 전반적인 전력 상승을 이끌어냈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또 다른 근거는 K리그 선수들을 대표팀에 새로 발탁해 활용하면서 한국 축구를 살찌운 점이다.

    9월 라오스, 레바논과의 A매치 2연전에 나선 23명 엔트리 가운데 슈틸리케 감독이 처음 대표팀에 발탁해 키운 선수만 5명에 이른다. 이재성(전북), 권창훈(수원), 김승대(포항), 임창우(울산), 황의조(성남) 등 5명은 홍명보 전 감독을 비롯한 전임 사령탑들로부터 외면받았지만 슈틸리케 감독 부임 이후 태극마크를 처음 단 K리거들이다. 모두 20대 초반 신예들이다.

    이청용(크리스털 팰리스)의 부상 공백 속에 3월부터 대표팀에 발탁된 이재성, 8월 동아시안컵에서 처음 A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9월 A매치 2연전을 통해 ‘한국 축구 최고 샛별’로 자리매김한 권창훈 등은 ‘슈틸리케의 작품’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권창훈은 슈틸리케 감독이 평가하듯, 대표팀에 와서 성장폭이 가장 큰 선수다. 이재성과 권창훈은 이제 대표팀에 없어선 안 될 존재로 발돋움했다.

    부상으로 라오스, 레바논전 엔트리에서 빠졌지만 붙박이 대표팀 공격수로 자리매김한 이정협(상주)도 슈틸리케 감독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K리그 챌린지 무대를 누비는 평범한 선수였을지 모른다. K리거들이 한 단계 성장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인 신호임에 틀림없다.

    한국 사령탑으로 1년을 보낸 슈틸리케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한 시간이 자랑스럽다”며 “현재 선수들에게 100%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에 대한 평가는 여러분이 해달라”고 했다. 한 축구인은 “슈틸리케 감독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목표는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이 아니다. 그 무대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거두는 것”이라며 “슈틸리케 감독이 큰 고비 없이 첫 1년을 보낸 것은 그에게뿐 아니라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큰 자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