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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미술 여행

환상으로 채색, 어른 위한 동화

‘블라디미르 쿠시’展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환상으로 채색, 어른 위한 동화

환상으로 채색, 어른 위한 동화

블라디미르 쿠시의 회화 ‘도시의 물고기’ ‘바람’ ‘작별의 키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녕, 난 구름 속에서 흘러나온 바다야/ 안녕, 난 강 속에서 태어난 구름이야/ 안녕, 난 밤하늘에서 내려온 나무야/ 안녕, 난 널 삼키고 다리를 건너고 있는 애벌레야// 네가 꿈꾸는 동안/ 매일 밤 너에게 기어갈게(후략).”

김경주 시인이 블라디미르 쿠시의 그림 ‘도시의 물고기’에 부쳐 쓴 시의 일부다. 바다와 구름과 나무와 애벌레가 다정히 인사를 건네는 상황은 다분히 동화적이다. 하지만 작품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바다는 구름 속에서, 구름은 강 속에서, 나무는 밤하늘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벌레. 매일 밤 꾸물꾸물 다리를 건너가는 애벌레는 누군가를 삼켰다. 뭔가 하나씩 비밀을 가진 듯한 이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기운은 어슴푸레 몽환적인 쿠시의 그림 정조와 잘 어울린다.

1965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쿠시는 ‘러시아의 달리’라고 불리는 화가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에게서 유래한 별명이다. 달리는 시계가 녹아내리듯 늘어지는 풍경을 담은 작품 ‘기억의 지속’ 등 신비로운 분위기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 쿠시 역시 마찬가지다. 거대한 애벌레가 도시의 강을 가로질러 다리처럼 놓여 있는 풍경을 담은 회화 ‘도시의 물고기’만 봐도 그렇다.

어둠이 내려앉은 강변은 일견 평화로워 보인다. 하지만 어둑해진 강물 속에서는 애벌레 못지않게 거대한 물고기가 애벌레를 향해 유유히 나아가는 참이다. 거리에 드문드문 놓인 가로등이 밤의 눈처럼 빛을 밝힌 채 둘의 조우를 지켜보고 있다. 인상적인 건 이처럼 초현실적인 설정을 담고 있음에도 작품 속 애벌레와 물고기의 묘사만큼은 지극히 사실적이라는 점이다. 신민경 큐레이터는 이러한 쿠시의 화풍을 ‘은유적 사실주의(metaphorical realism)’라고 소개하며 “쿠시는 현실의 이미지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그 안에 은유적 의미를 담아 관객에게 다양한 해석과 상상의 여지를 주는 작가”라고 설명했다.

푸른색 셔츠가 희푸른 건물 안을 가득 채우고 천장과 창밖까지 뚫고 나와 펄럭이는 풍경을 담은 작품 ‘바람’도 마찬가지다. 건물 벽에서 출렁이는 시계와 파도처럼 일렁이는 구름의 풍경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셔츠의 섬세한 질감은 그의 작품이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확인시킨다.



쿠시의 작품을 무의식, 욕망, 환상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회화, 조각, 영상 등 170여 점을 감상할 수 있다. 대표작 21점 옆에는 각각을 감상한 뒤 김경주 시인이 시로 풀어 쓴 해설문이 붙어 있어 낯선 ‘환상 세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4월 5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문의 02-580-1300.



주간동아 2015.01.26 973호 (p75~75)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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