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3

2015.01.26

‘똘끼’ 충만 퍼포먼스, 패기의 신인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맥 드마르코 내한공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5-01-26 10: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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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똘끼’ 충만 퍼포먼스, 패기의 신인

    1월 18일 내한공연을 가진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맥 드마르코.

    1월 18일 서울 홍대 앞 레진코믹스V홀(옛 V-Hall). 캐나다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맥 드마르코의 내한공연이 열렸다. 국내에서는 음반은커녕 음원도 유통되고 있지 않지만, 지난해 발매된 2집 ‘Salad Days’는 영미권 평단에서 극찬을 받았다. 미국 인디음악계를 대표하는 피치포크 미디어에서 “완벽한 재능”이라는 평가를 내린 것을 필두로 각종 음악 전문지의 2014년 결산에서 올해의 음반 리스트 상위권을 차지하기도 했다.

    작업을 거의 대부분 미국 브루클린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끝낸 이 앨범은 미국 인디록의 어떤 흐름을 대변한다. ‘슬래커(slacker·게으름뱅이)’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나른한 보컬과 영롱하고 선연한 기타 멜로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낙관 가득한 분위기가 앨범 한 장을 그대로 메운다. 소박하지만 빛나는 팝 센스가 어느 한 곡도 빼놓지 않고 차지게 묻어 있다. 이런 음악을 사랑하는, 귀 밝고 빠른 이들은 어디에나 있는 법.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약 500석 규모의 공연장이 진작 들어찼다.

    보통 음반 분위기는 무대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곤 한다. 헤비메탈 밴드의 공연에서는 격렬한 퍼포먼스를 기대하는 게 당연하고, 힙합 뮤지션에게는 관객과 무대가 하나 되는 그루브를 바라기 마련이다. 어쿠스틱 뮤지션에게서는 침묵의 경청이 공연장을 메운다. 드마르코에게 기대한 건 적당한 그루브와 음악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종류의 음악이 늘 그렇듯,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리며 몸을 앞뒤로 흔들흔들하는 시간이 되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편안한(혹은 후줄근한) 라운드 티셔츠에 헐렁한 청바지를 입고 등장한 드마르코는 애초 예상과 전혀 다른 공연을 한 시간 반 남짓 선보였다. 백업 기타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3인조 밴드와 함께 그는 앨범에 담긴 음악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자신을 테일러 스위프트라고 소개하는 등 멤버들과 함께 할리우드 코미디를 연상케 하는 만담을 주고받으며, 꽤 많았던 외국 관객은 물론 한국 관객에게도 웃음을 선사했다. 얌전한 샌님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화장실 개그’를 떠올리게 만드는 각종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공연의 백미는 마지막 곡 ‘Still Together’였다. 길게 연주되는 간주 부분에서 그는 객석으로 몸을 날렸다. 무대 바로 앞에서 객석 맨 뒤까지, 관객들 손에 떠받쳐 파도 위 부유물처럼 떠내려갔다. 그리고 다시 둥실둥실 무대 위로 흘러왔다. 공연장 뒤쪽 좌석이 2층 높이였으니 마치 배가 운하의 도크를 거쳐 위로 올라가듯 공중부양 보디서핑을 한 셈이다. 공연 초반부터 무대 앞에서 자기에게 노래를 시켜달라고 소리치던 중년여성 관객을 결국 무대 위로 올려 그가 부르는 ‘학교종이 땡땡땡’에 맞춰 반주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퇴장시키는 등 신인임에도 능수능란한 진행을 선보였다. 한마디로 음악과 달리 오랜만에 ‘똘끼’ 넘치는 공연의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이다.



    그 즐거움이 가시기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격한 퍼포먼스가 난무하던 시절이 우리에게도 있었다. 언젠가부터 관객끼리 몸을 부딪치는 행위가 민폐처럼 돼버렸다. 관객도, 뮤지션도 너무 얌전해졌다. 좋은 연주와 노래를 선보이는 것, 즉 ‘웰메이드’ 공연만이 전부는 아닐 텐데 말이다. 라디오 공개방송 같은 공연도 좋지만, 일반인과는 다른 아티스트의 ‘똘끼’를 무대에서 만나는 것도 공연이라는 시공간의 즐거움이다. 웰메이드가 어떤 움직임을 완성하는 영역이라면, ‘똘끼’의 분출이야말로 그 움직임을 만드는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 인디음악이 탄생한 지 20주년 되는 해다. 홍대 앞이란 공간을 신촌의 변방에서 독립문화 출발지로 만들었던 힘이 바로 그 ‘똘끼’였다.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지 않고, 내면의 거친 욕망을 있는 그대로 뿜어내는 신인들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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