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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선 기자의 미술 여행

은박지에 새겨 넣은 추억, 동경, 그리움

‘이중섭의 사랑, 가족’展

  •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은박지에 새겨 넣은 추억, 동경, 그리움

은박지에 새겨 넣은 추억, 동경, 그리움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소장품인 은지화 ‘낙원의 가족’. 복숭아밭에 있는 가족의 평화로운 한때를 그렸다.

사내는 불행했다. 현해탄 건너 타국에 사는 가족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랐으나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홀로 거리를 떠돌다 숨을 거뒀을 때 그의 신원을 아는 이조차 없었다. 한동안 연고불명 행려병자로 병원 한편에 방치돼 있던 그의 시신은, 친구들의 수소문 끝에 겨우 발견돼 서울 한 공동묘지에 묻혔다. 오늘날 ‘국민화가’로 불릴 만큼 큰 사랑을 받는 화가 이중섭 이야기다.

1916년 태어나 5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이중섭이 살아야 했던 이 땅의 현실은 신산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삶 또한 한국 근현대사만큼이나 굴곡지고 어두웠다. 그러나 이중섭은 지독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고난에 굴하지 않는 ‘황소’ 연작을 그렸고, 구김살 없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를 꿈꾸게 하고 강해지게 한 존재, 이중섭의 끝없는 ‘사랑’의 대상이던 ‘가족’ 이야기가 지금 서울 종로구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펼쳐지고 있다. ‘이중섭의 사랑, 가족’전이다. 전시장에는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 그림 등이 가득하다.

“언제나 내 가슴 한가운데서 나를 따듯하게 해주는 나의 귀중하고 유일한 천사 남덕 군. (중략) 하루에도 몇 번이나 몇 번이나 마음속으로 소중하고 멋진 당신의 모든 것을 포옹하고 있소. 당신만으로 하루가 가득하다오. 빨리 만나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요. 세상에 나만큼 자신의 아내를 광적으로 그리워하는 남자가 또 있겠소(후략)”.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편지지 여백에는 사방을 둘러 그림을 그렸다. 이른바 편지화다.

은박지에 새겨 넣은 추억, 동경, 그리움

이중섭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 여백에 가족에 대한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이중섭이 일본 미술학교 유학시절 만난 ‘남덕’은 식민지 청년에게 반해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라는 본명을 버리고 현해탄을 건넜다. 이들 부부는 광복과 6·25전쟁의 혼란기에 평안남도부터 제주까지 한국 곳곳을 떠돌며 함께 지낸다. 하지만 1952년 생존을 위해 이산(離散)을 택했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이 더는 가족을 부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내와 당시 다섯 살, 세 살이던 두 아들 태현, 태성을 일본 처가에 보낸 뒤부터 이들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과 사랑을 작품에 새겨 넣기 시작한다. 아들에게 “아빠는 태현 군을 빨리 보고 싶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아빠는 건강합니다. 건강하게 기다려주세요”라고 적어 보낸 편지의 여백은 아내와 두 아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으로 채웠다.



이중섭이 개척한 장르인 은지화에도 가족의 모습을 담았다. 나비와 새가 날아다니는 평화로운 복숭아밭에서 아이들과 여인이 복숭아를 따는 모습을 그린 ‘낙원의 가족’이다.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에 소장돼 있는 이 작품에서는 가족과 더불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중섭의 마음이 절절이 느껴진다.

늘 가난했던 이중섭은 담뱃갑 속에 있는 은박지를 잘 편 후 연필이나 철필 끝으로 눌러 그림을 그리는 은지화를 많이 남겼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이런 은지화, 편지화와 더불어 드로잉, 채색화 등도 감상할 수 있다. 2월 22일까지, 문의 02-2287-3591.



주간동아 2015.01.12 971호 (p73~73)

송화선 주간동아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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