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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재 기자의 일본 종단 다이어리 ⑤ 교토~히로시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백제인부터 윤동주, 정지용 시인까지 인연…혼슈와 시코쿠 잇는 다리 최고의 라이딩

  • 장원재 동아일보 기자 peacechaos@donga.com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다카시마에 있는 아이야 카페. 서울 홍대에 본점이 있다(왼쪽). 백제계 도래인 후손이 창건한 청수사의 샘물. 각각 지혜, 건강, 장수를 상징하는데 욕심이 지나쳐 세 물을 모두 마시면 불운이 찾아온다고 한다.

교토로 가는 길이었다. 동해를 따라 내려오던 길에서 벗어나 내륙으로 들어가는 것이어서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역시 초반부터 가파른 언덕이 이어졌다. 30km가량 달려 터널을 만났다. 자전거를 세우고 후미등을 켜는데 뒤에서 “저 죄송합니다만…” 하는 말소리가 들렸다. 고등학생 두 명이었다.

자신들도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데 자전거를 끌고 가야 할지, 타고 가야 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익힌 터널공략법을 간단히 설명했다. 끝 차선을 따라가며 라이딩을 할 것, 트럭이 오면 후폭풍이 있으니 핸들을 꽉 잡을 것, 큰 소리가 들려도 당황하지 말 것, 일정 속도를 유지하며 페달을 밟을 것. 일단 한 번 해보면 요령이 생길 것 같아 따라오라고 했다.

함께 터널을 무사히 지난 뒤 그들은 고맙다면서도 “목적지인 쓰루가까지 25km나 남았는데 지도가 없어 걱정”이라고 말을 흐렸다. 다케후히가시고교 2학년 테니스부 학생들인데 쓰루가고교와 친선시합을 하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산 하나만 넘으면 되겠지 싶어 길을 나섰는데 생각만큼 만만치 않아 걱정인 듯했다.

오전 8시가 조금 안 된 때였는데 친선시합은 10시 반이었다. 빨리 가야 몸이라도 풀 수 있을 것 같아 “근처까지 데려다줄 테니 따라오라”고 했다. 중간에 음료수도 사주면서 데리고 갔는데 생각보다 힘들었는지 한 명이 자꾸 뒤로 처졌다.

한 시간 반가량 걸려 서로의 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왔는데 둘 다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지도도 없는 처지에 내버려두면 헤맬 게 뻔했다. 결국 원래 계획에서 벗어나 목적지 근처까지 데려다 줬다. 헤어질 때 “고맙다”고 연신 고개를 숙이는 학생들에게 “한일 관계를 위해 노력해달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덕에 주행거리가 다소 늘었지만 마음은 뿌듯했다.



그날 주행을 마치고 다카시마에 예약해놓은 숙소 ‘BBC 펜션 · 아이야 카페’에 갔는데 뜻밖에도 문 앞에 한글이 적혀 있었다. 물어보니 ‘차밍’이라는 국제봉사단체에서 운영하는 펜션 겸 카페인데 서울 홍대에 있는 카페 ‘아이야’의 일본지점 격이라고 했다. 팸플릿에는 ‘서울 아이야 카페는 드라마에 자주 사용되는 곳’이라는 소개 글도 있었다. 이것도 한류의 일종인가 싶어 반가웠다.

그다음 날 숙소를 운영하는 여성을 만났는데 한국인이라 해도 믿을 정도로 한국어가 유창했다. 그는 “평화를 바란다는 점에서 우리 단체 취지와 같아 응원하고 싶다”고 했다. 감사 인사를 한 뒤 비와호 주변을 자전거로 라이딩 하면서 교토로 향하는 마음이 훈훈했다.

고등학생 두 명과 함께 터널 통과

1000년 동안 일본 수도였던 교토에는 고대부터 이어진 한일관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힘들게 들고 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이 좋은 길라잡이가 됐다.

숙소인 유스호스텔에서 가까운 청수사(淸水寺·기요미즈데라)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면서 연간 수백만 명이 찾는 교토에서 가장 유명한 절이다. 절 자체도 유명하지만 본당 앞에서 교토의 멋진 경치를 볼 수 있고, 올라오는 길에 전통 상점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각별하다.

필자는 예전에도 온 적이 있지만 유 교수의 책을 보고서야 이 절 창건자가 백제 출신 도래인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8~9세기 활약한 사카노우에노 다무라마로(坂上田村麻呂)라는 무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혁혁한 공을 세워 천황의 신임을 샀고, 후일 ‘쇼군’이라 부르는 정이대장군까지 올랐다.

청수사에서 내려오는 길은 기요미즈자카, 산넨자카, 니넨자카 등 전통 상점 골목으로 이어진다. 계속 내려가면 기온 거리가 시작되는 야사카 신사로 이어지는데 이 신사는 고구려계 도래인이 세운 것이다. 일본에서 3대 축제로 꼽히는 기온마쓰리를 주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교토 곳곳에 남은 도래인의 흔적을 보면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얼마나 긴밀하게 교류했는지 알 수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조선인 귀와 코가 묻힌 ‘이총’

물론 교토에 도래인의 성공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청수사에서 남서쪽으로 20분 정도 걸으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본국에 보낸 조선인의 귀와 코를 묻은 ‘이총(耳塚)’이 있다. 무덤 위에 석탑이 있는데 조선인의 원혼을 누르기 위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건너편에는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이총을 만든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신으로 모신 신사가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근대로 넘어오면 일제강점기 교토로 유학 온 이가 적잖다. 대표적인 인물이 윤동주 시인이다. 그가 다니던 도시샤대 교내에는 그를 기리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찾아오는 이가 많은지 필자가 학교 경비원에게 ‘한국 시인’이라는 단어를 꺼내자마자 위치를 알려줬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서시’가 일본어와 한국어로 새겨져 있고 앞에는 음료수, 꽃, 한국어로 된 그의 시집 등이 놓여 있었다. 연희전문학교(연세대 전신)를 졸업하고 도시샤대에 입학한 그는 독립운동 혐의로 수감됐다가 해방을 6개월 앞두고 감옥에서 숨졌다. 28년간의 짧은 생이었다. 역시 도시샤대 유학생 출신인 정지용 시인의 기념비도 옆에 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고구려계 도래인이 창건한 법관사(호칸지) 오중탑. 교토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이다(위). 비와호 풍경. 서울보다 넓다.

오사카로 향하는 길에도 역사의 명암이 엇갈리는 장소를 지났다. 왕인 박사 묘 앞에는 ‘일본에 한자를 전해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취지로 초등학생들이 만든 기념물이 놓여 있었다. 반면 10km가량 떨어진 우토로 마을에는 ‘우토로를 없애는 것은 일본인의 양심을 없애는 것’이라는 붉은 글씨의 벽보가 붙어 있었다. 비행장 건설을 위해 강제징용된 조선인들의 거주지 우토로는 강제철거 위기를 맞았다 최근 한국 정부 등이 일부 토지를 매입하면서 해결 실마리를 찾은 상태다.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예전부터 알던 ‘아사히신문’ 기자 두 명을 차례로 만나 한일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최근 일본과 한국 언론에서 상대국에 대한 자극적인 보도가 이어지면서 일반 국민 사이에 오해가 쌓이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또 “일본에도 한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더 많으니 건강하게 완주하라”고 응원해줬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도시샤대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왼쪽). 일본 넘버 원 자전거 코스인 ‘시마나미 사이클링 코스’ 중 이쿠치대교.

세토 내해를 따라 시코쿠로

오사카를 떠나 세토 내해를 끼고 라이딩을 한 뒤 시코쿠로 향했다. 혼슈와 시코쿠를 잇는 ‘시마나미 사이클링 코스’를 지나기 위해서였다. 이 구간은 세토 내해에 있는 6개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자전거로 지날 수 있는 곳으로, 일본에서 가장 멋진 라이딩 코스로 명성이 높다.

총길이는 70km쯤 되는데 바닥의 파란색 줄만 따라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게 돼 있다. 갈림길이 나올 때마다 표지판이 있어 길을 잃어버릴 염려도 없다. 다리에는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진출입로가 따로 만들어져 있다. 원래 다리마다 통행료를 받는데 마침 무료 홍보 기간이라 다행이었다.

다리를 건널 때 옆으로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보면서 라이딩을 했는데 구름 위를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특히 시코쿠로 가는 마지막 다리인 구루시마해협대교는 다리 3개를 하나로 연결해 총 4.1km를 바다 위로 라이딩을 할 수 있게 돼 있었다. 세계 최초의 3개 연속 현수교로, 바람이 강한 데다 아래로 급류가 소용돌이치는 소리가 들려 아찔한 기분도 들었다.

유일한 문제는 비를 맞으면서 라이딩을 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여행 기간 ‘비가 오는 날은 라이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켰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전날까지만 해도 가끔씩 소량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고 실제로 당일 새벽 비가 그친 것을 보고 길을 떠났다.

그런데 실제로는 잠깐씩 비가 멈췄을 뿐 거의 종일 내리부었다. 몇 번이나 멈출까를 생각했지만 섬 중간에서 숙소를 구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열 시간 이상 비를 맞으며 라이딩을 하다 보니 몸이 젖은 솜처럼 무거워졌다.

숙소 인근에 도착해서야 다소 날이 갰다. 사누키 우동 본고장에 온 만큼 휴게소에서 우동을 시켰는데 역시 명불허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그릇이 비어 있었다. 숙소인 유스호스텔에 도착해선 주인이 추천한 노천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푸른 바다와 섬들을 바라보며 온천을 즐기다 보니 사람 마음이 간사해 ‘힘들어도 자전거 여행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시코쿠 사찰 88곳을 순례 중인 이들과 맥주 한 잔을 나눴다. 유럽에 ‘산티아고 순례길’, 한국에 제주의 ‘올레길’이 있다면 일본에는 ‘시코쿠 순례길(오헨로)’이 있다. 흰색 옷을 입고 지팡이와 삿갓을 지참한 채 일본 진언종의 창시자가 수행을 위해 걸었던 길을 따라 걷는 1200~1400km의 도보 여행이다. 시코쿠 순례길 일부 구간은 제주올레와 파트너십을 맺고 있기도 하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교토 곳곳 도래인의 흔적

시코쿠 주변에는 섬이 많아 한국의 다도해를 연상케 한다. 사진은 숙소에서 바라본 섬.

더위에서 살아남기

일본 더위는 말 그대로 살인적이었다. 내륙지방으로 들어오면서 연일 37, 38도에 달하는 더위가 이어졌다. 특히 교토는 분지라 일본에서 가장 더운 곳 중 하나로 꼽힌다. 필자가 더위의 무서움을 알게 된 건 교토로 향하는 길에서였다. 오전 9시 반인데 이미 33도였고 사우나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들었다. 날은 계속 더워지는데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머리가 어질하는 순간 ‘이러다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휴게소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고 이후 5km마다 쉬면서 라이딩을 끝냈다.

그날 몇 가지 비상조치를 했다. 먼저 윗옷의 긴팔을 잘라 반팔로 만들었다. 헬멧을 벗을 수는 없으니 그 안에 물에 적신 손수건을 대기로 했다. 손수건은 편의점에서 구매한 얼음 이온음료에 감아 시원하게 만들었다.

어찌나 더운지 자전거 핸들 앞에 달아놓은 스마트폰에 ‘온도를 낮추고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나오기 일쑤였다. 내비게이션 구실을 하는 녀석이다 보니 길을 찾으려면 머리에 댄 차가운 수건을 양보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위를 피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간대를 피해 라이딩을 하는 것이다. 최대한 일찍 일어나 오전에 일정 대부분을 마쳐야 했다. 필자의 경우 해가 뜨자마자 라이딩을 하려고 오전 4시 전후에 일어나 4시 반~5시에 출발했다. 목적지에는 가급적 오후 2~3시 전 도착하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저녁은 5시에 먹고 8~9시 에 잠드는 ‘아침형 인간’이 됐다.




주간동아 2014.08.11 950호 (p60~62)

장원재 동아일보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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