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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칵테일 | 그래스호퍼

강한 민트 향 입안에 가득 ‘메뚜기’ 한잔 어때요?

영화 ‘로닌’에 진과 브랜디 섞은 ‘로닌 그래스호퍼’ 등장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강한 민트 향 입안에 가득 ‘메뚜기’ 한잔 어때요?

강한 민트 향 입안에 가득 ‘메뚜기’ 한잔 어때요?

칵테일 그래스호퍼.

영화 ‘로닌(Ronin)’은 1998년 상영한 존 프랭컨하이머 감독의 액션 스릴러다. 영화 제목 ‘로닌’은 무사를 뜻하는 일본어 낭인(浪人)에서 따왔다. 이 때문일까. 영화는 일본 봉건시대 사무라이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사무라이는 자신이 섬기던 영주가 살해되면 이를 큰 수치로 여기고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용병이나 도적이 되곤 했는데, 이들을 바로 ‘로닌’이라고 불렀다. 영화 주인공 샘(로버트 드니로 분)과 그가 이끄는 용병팀을 낭인에 비유해 붙인 제목으로 보이지만 왠지 자연스럽진 않다.

그럼에도 영화는 1701~1702년 일본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추신구라(忠臣藏)’ 이야기를 비중 있게 소개한다. 1701년 아코번(赤穗藩)의 다이묘인 아사노 다쿠미노카미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자 번의 가로(家老·최고 가신)인 오이시 구라노스케를 중심으로 한 가신 47명은 절치부심 복수를 다짐하다 마침내 1702년 1월 30일 눈 내리는 밤 애도에서 거사를 일으킨다. 그리고 모두 할복자살한다. 이를 소재로 한 ‘추신구라’ 이야기는 일본 정신을 표상하는 국민 서사시로 지금까지 일본인으로부터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다.

실제 영화 배경은 현대다. 프랑스 파리의 허름한 골목길 작은 바에서 샘과 빈센트(장 르노 분)가 래리(스킵 서더스 분)를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샘은 빈틈 없어 보이는 미국인이고 빈센트는 인상 좋은 프랑스 현지인이다. 이 세 사람은 바의 젊은 여주인 디어드르(너태샤 매켈혼 분)와 함께 파리 교외의 한 창고로 향한다. 그곳에서 스펜스(숀 빈 분)와 전직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소속이던 그레고(스텔란 스카르스가드 분)와 합류한다. 그들은 모두 전직 특수부대원이거나 정보요원으로, 디어드르는 이들에게 거액의 수고비를 주면서 정체불명의 가방을 탈취해달라고 요청한다.

“취조자가 그래스호퍼 줬다”

디어드르는 사실 아일랜드공화국군(IRA)의 중간 간부로, 삼엄한 보호 속에 옮겨지는 가방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그리고 그 가방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샘이 이끄는 용병팀에게 일절 설명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스펜스를 제외한 멤버 4명은 디어드르와 함께 작전 장소인 프랑스 남부 니스로 이동한다. 샘은 가방 속 내용물을 계속 궁금해하지만 디어드르는 이미 끝난 얘기라고 답한다. 성격이 치밀한 샘은 가방을 호위하는 목표 대상을 파악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문제의 가방은 운송하는 이의 왼쪽 팔목에 수갑으로 묶여 있고 주위 경호도 삼엄하다. 샘과 디어드르는 일을 해나가면서 상대에게 좋아하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후 영화는 IRA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러시아 갱단, 프랑스 정보국까지 얽히면서 긴장감 넘치게 진행된다. 니스 시내의 차량 추격전은 이 영화의 백미다.

강한 민트 향 입안에 가득 ‘메뚜기’ 한잔 어때요?

칵테일 그래스호퍼는 민트크림과 카카오크림에 생크림을 섞어 단맛이 강한 술로, 초록색이 그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 칵테일은 용병팀이 작전을 준비하며 취조기법에 대해 대화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취조를 당할 때는 끝까지 버텨라”고 배웠다고 스펜스가 아는 척하자 샘이 “경험해보니 버티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이때 래리가 샘에게 “그럼 취조 중에 어떤 일을 당했느냐”고 비아냥거리듯 묻자 샘은 “취조하는 사람이 그래스호퍼(Grasshopper·메뚜기)를 줬다”고 답한다.

그러자 래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이 메뚜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엇을 뜻하는 은어인지 몰라 “메뚜기라니, 무슨 뜻이냐(What’s a grasshopper)”고 되묻는다. 이에 샘은 “2 parts Gin(진 2잔), 2 parts Brandy(브랜디 2잔), 1 part Creme de menthe(민트크림 1잔)”라고 답한다. 샘이 말한 것은 다름 아닌 칵테일 ‘그래스호퍼’ 레시피였다. 주위 사람들은 샘이 실없는 농담을 하는 줄 알고 모두 실소한다.

하지만 샘이 말한 칵테일 그래스호퍼의 레시피는 이후 로닌 그래스호퍼(Ronin Grass- hopper)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칵테일 리스트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다. 메뚜기라는 독특한 이름을 가진 그래스호퍼는 원래 민트크림, 화이트 카카오크림에 생크림까지 섞은, 단맛이 아주 강한 칵테일로 주로 식후에 마신다. 전체적으로 느낌이 부드러운 칵테일로 민트 향이 특히 강해 입안이 상쾌해지는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이 칵테일에 그래스호퍼, 즉 메뚜기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순전히 민트크림을 첨가해 만든 특징적인 초록색 때문이다. 이 칵테일은 재료들을 셰이커에 넣고 흔든 뒤 한 번 걸러서 칵테일글라스에 담아 서빙하면 된다.

강한 민트 향 입안에 가득 ‘메뚜기’ 한잔 어때요?

영화 ‘로닌’ 포스터.

그런데 이런 전형적인 레시피 외에 푸스카페 스타일로 그래스호퍼를 만들기도 한다. 푸스카페는 재료 간 비중 차이를 이용해 칵테일 잔 안에서 층을 지게 만드는 기법을 말한다. 그래스호퍼 재료 중 민트크림 비중은 1.1088인 데 비해 화이트 카카오크림은 1.1434기 때문에 그래스호퍼를 푸스카페 스타일로 만들면 가장 아래층에 화이트 카카오크림, 중간층에 민트크림, 그리고 가장 위층에 생크림이 층을 이룬다. 이 스타일의 그래스호퍼에서는 중간층 초록색이 깔끔하면서도 매우 은은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영화에서 샘이 말한 그래스호퍼 레시피는 지금까지 설명한 정통 그래스호퍼와는 민트크림이 들어가는 것을 제외하곤 완전히 딴판이다. 왜 그랬을까. 어차피 샘이 바텐더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칵테일에 특별히 관심 있는 인물로 설정되지도 않은 마당에 그래스호퍼의 핵심인 민트크림 외에는 일반적인 칵테일에 많이 들어가는 술을 감독이나 작가가 대충 가져다 붙인 것으로 추측된다.

다양한 재료 레시피 변형

어쨌든 중요한 점은 칵테일 그래스호퍼에 샘이 말한 레시피대로 진과 브랜디를 섞은 로닌 그래스호퍼가 칵테일 바에서 대유행하며 새로운 칵테일로 재탄생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스호퍼에는 이 밖에도 생크림 대신 보드카를 넣은 보드카 그래스호퍼도 있다. 이 칵테일은 보드카의 술기운을 멋지게 비유해 플라잉 그래스호퍼(Flying Grass-hopper)라 부르기도 한다. 또 그래스호퍼 레시피에 커피가루를 섞으면 브라운 그래스호퍼(Brown Grasshopper)라는 칵테일이 만들어진다. 실제 메뚜기에는 초록 메뚜기 외에 갈색 메뚜기도 있기 때문에 이런 변형 레시피가 더욱 재미있게 여겨질 수 있다.



주간동아 2014.03.10 928호 (p78~7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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