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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 이형석의 영화 읽기

관능 유혹… 니콜 키드먼 매력 발산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관능 유혹… 니콜 키드먼 매력 발산

관능 유혹… 니콜 키드먼 매력 발산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스토커(Stoker)’는 탐미주의적 영상이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인 결정을 이룬다. 박 감독 영화 세계의 한 뿌리인 앨프리드 히치콕에게 ‘영화적 쾌락’을 묻고, 신에게 ‘악마의 윤리’를 질문함으로써 관객을 도발하게 만드는 작품이자 히치콕에게 ‘영화의 윤리’를, 신에게 ‘악마의 쾌락’을 묻는 영화이기도 하다. 박 감독은 스릴과 서스펜스, 문학적 상징과 시각적 탐닉으로 채운 100분간 죽음과 관능이 유혹하는 기괴하면서 화려한 미로 속으로 관객을 들여보낸다. 그리고 그 끝에서 영화적 ‘오르가슴’과 영화적 ‘오르가슴’의 도덕성 사이에서 다시 한 번 길을 잃게 한다.

니콜 키드먼과 매슈 구드, 미아 바시코프스카 등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박 감독의 할리우드 데뷔작이다. 박 감독은 할리우드 데뷔작인 이 영화가 지금껏 다져온 자신의 영화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이 영화 프로젝트 시발점이 된 웬트워스 밀러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박 감독을 매혹시켰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밀러는 다름 아닌 미국 FOX TV 시리즈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연 배우다. 극중 이름 ‘스코필드’를 음차한 ‘석호필’이라는 애칭으로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밀러의 시나리오 데뷔작을 박 감독이 영화화했다.

박 감독은 복수 3부작(‘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과 전작 ‘박쥐’에서 저주받은 운명에 처한 주인공을 통해 자기 구원의 가능성을 물었다. 복수 3부작 주인공들은 신의 계율을 어기고 직접 복수에 나설 수밖에 없도록 운명지어졌다. ‘스토커’는 한 발 더 나아가 정화될 수 없는 나쁜 피, 대속할 수 없는 원죄를 가진 이들에 대한 이야기다.

의문의 사건, 꼬리 무는 미스터리

이 영화 제목 ‘스토커’는 사람 성이다. 특정인에게 집착 증세를 보이며 따라다니는 사람을 일컫는 ‘스토커(stalker)’와는 다른 단어다. 한 교외 지역, 웅장한 저택에 사는 소녀 인디아 스토커(미아 바시코프스카 분)가 주인공이다. 그녀가 18세 되던 날 아버지가 사고로 죽는다. 아버지 장례식날, 평소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 스토커(매슈 구드 분)가 나타난다. 아버지 죽음이 수상하다고 웅성거리는 사람들,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삼촌. 인디아는 불길한 기운을 느끼며 찰리를 경계하지만, 어머니 이블린(니콜 키드먼 분)은 시동생에게 묘한 호감을 보이며 자기 집에 체류할 것을 허락한다.



찰리는 형수인 이블린뿐 아니라 조카 인디아에게 친절과 호의를 베풀며 그들 삶 속으로 조금씩 스며든다. 인디아는 유령처럼 늘 주위를 맴돌며 자신에게로 침입해 들어오는 삼촌에게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지만, 점차 그를 향한 정체 모를 감정에 빠져든다. 그러던 중 찰리와 가정부가 비밀리에 이야기를 나누다 언성을 높이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이후 가정부의 종적이 묘연해진다. 이어 고모할머니(재키 위버 분)가 이블린과 인디아를 위로하고자 방문했지만 무슨 말인가를 꺼내려다 찰리에게 등을 떼밀려 쫓기듯 떠난다.

의문의 사건이 꼬리를 물고 찰리를 둘러싼 미스터리가 증폭되는 가운데, 인디아는 어느 날 어머니와 삼촌이 키스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알 수 없는 격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아빠 서재를 정리하던 중 의문의 사진들과 편지 다발을 발견하고, 아빠 죽음과 삼촌 정체에 관한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인물들 감정이 폭발하고 사건이 절정으로 치닫는 후반부 이야기를 몇 줄로 줄인다면 이 영화는 매우 단순하다. 하지만 작품 전반을 휩싸고 도는 불길한 비극의 전조와 인물의 과거 및 사건에 대한 암시 때문에 첫 장면부터 객석을 압박하는 긴장감이 상당하다. 18세가 된 소녀를 사이에 두고 매력적인 어머니와 속을 알 수 없는 젊은 삼촌이 이루는 성적 긴장과 뉘앙스도 강렬하다.

스토커가의 저주받은 피

관능 유혹… 니콜 키드먼 매력 발산
박 감독은 한 장면 한 장면에 매우 정교하게 미장센(화면 구도)을 구축하고, 이를 벽돌처럼 쌓아올려 완벽한 구조물처럼 영화를 만들었다. 모든 신의 배경과 소품, 빛, 어둠이 인물 성격을 드러내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전조와 암시, 다층적 맥락의 상징과 비유를 담아낸다. 무대가 된 집은 1920년대에 지은 고풍스러운 건물로 침실, 지하 저장고, 거실, 식당, 계단, 복도 등이 다양한 색과 조명, 구도로 촬영돼 균형과 혼란, 불안과 매혹, 비밀과 진실, 절제와 흐트러짐 등 인물들의 심리 및 관계, 정조를 대변해준다.

미모의 어머니와 성인이 된 딸, 불온한 매력의 삼촌이 만들어내는 숨 막힐 듯한 성적 긴장은 찰리와 인디아가 함께 피아노를 치는 장면에서 절정에 이른다. 박 감독은 삼촌과 조카가 나란히 앉아 건반을 두드리는 장면을 성행위를 하는 듯한 구도와 액션, 연기로 연출했다. 이상 자아와 병리적 인성을 가진 이들의 욕망을 미스터리 스릴러로 다룰 뿐 아니라, 사건과 비밀을 영상으로 표현하는 방식까지 ‘스토커’는 앨프리드 히치콕에 대한 21세기 응답이라고 할 만하다.

결국 이 영화는 스토커가(家)에 흐르는 저주받은 피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 첫 장면에서 인디아는 “내 귀는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내 눈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본다. 이게 나”라며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유로워진다는 것”이라고 읊는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인디아는 ‘자신이 누군지, 어른의 자유란 어떤 것인지’ 보여줌으로써 이 말에 대구를 이룬다. 이블린은 “사람들은 왜 자식을 낳는 걸까”라고 자문하며 “인디아, 넌 도대체 누구냐”고 울부짖는다.

죽은 아버지는 인디아가 어릴 때부터 데리고 다니면서 사냥을 했고, 전리품으로 박제를 만들었다. 아버지는 인디아에게 “때로는 나쁜 짓을 해야 더 나쁜 짓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들 속에 스토커가의 비밀이 들어 있다. 정화될 수 없는 스토커가의 원죄 말이다. ‘Stoker’가 사냥꾼이라는 뜻의 ‘stalker’와 발음이 비슷하고, ‘드라큘라’ 작가 브램 스토커의 이름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중의적이다. 신도 대속할 수 없는 저주받은 존재, 그들의 ‘악마적 쾌락’으로 창조한 영화의 ‘오르가슴’. 그것이 바로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다.



주간동아 2013.03.04 877호 (p68~69)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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