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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의 ‘망달당달’(망가지느냐 달라지느냐, 당신에게 달려 있다)

눈뜨면 코스 생각 유별나게 뛰고 또 뛰었다

  •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눈뜨면 코스 생각 유별나게 뛰고 또 뛰었다

눈뜨면 코스 생각 유별나게 뛰고 또 뛰었다

김원곤 교수의 달리기 기록 메모.

“건강을 위해서는 적절한 유산소운동이 필요하다”는 말은 이제 상식 중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래서 잠시 눈을 돌려 사람들을 관찰하노라면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산소운동의 효과를 얻으려고 열심히 뛰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굳이 육상 트랙이 아니더라도 도심 곳곳에 조성된 산책로와 전국에 산재한 헬스클럽 러닝머신 위에서도 매일 많은 사람이 아침저녁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뛴다. 산에서도 뛰고 바닷가에서도 뛴다. 심지어 출퇴근도 뛰어서 해결하는 사람까지 나타나고 있다. 그야말로 ‘길이 있는 곳에 뜻이 있다’가 아니라 ‘길이 있는 곳에 달리기가 있’는 세상이 된 셈이다. 여기에 달리기와 목적을 같이하는 걷기나 자전거 타기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길을 걷고 달리는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건강을 위해 달려라’ 신선한 충격

그런데 오늘날에는 당연시되는 이러한 광경이 20~30여 년 전만 해도 매우 생소한 풍경 가운데 하나였다. 중년 남자가 운동복을 입고 거리를 뛰어다닌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이었고, 기껏 작심하고 나서본들 주위 사람들로부터 건강이나 챙기려고 발버둥치는 좀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기 일쑤였다. 건강한 사람은 건강하기에 운동을 경시했고, 고혈압이나 심장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은 마치 운동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인 양 경원시했던 것이다.

내가 달리기에 빠진 건 1980년부터였다. 당시 군의관으로 육군 대위 신분이던 나는 바로 그 전해인 1979년 초부터 80년 초까지 1년 동안 임진각 자유의 다리 너머에 있는 민통선 북쪽 최전방 지역 지오피(GOP·General Outpost, 북한과 직접 대치하는 최전방 지역)에서 근무하다 부대 이동으로 경기 파주시 광탄면에 배치됐다.



물론 민통선 안이라고 해서 운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 1년 동안 몸이 꽤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때라 여전히 전방인 페바(FEBA·Forward Edge of Battle Area, GOP 바로 후방인 전투지역전단) 지역이긴 했으나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환경이다 보니 운동을 통해 몸을 추스르고 싶었다.

그런데 그즈음 우연히 ‘건강을 위해 달려라’라는 제목의 책을 보게 됐다. 워낙 오래전 일이고 번역본이어서 제목이 정확한지 모르겠고 원저자가 누구였는지도 기억 나지 않지만, 당시 매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하긴 했으나 주로 격투기나 근력운동에 치중했다. 오래달리기 같은 운동에는 별다른 능력이 없다고 생각해 특별한 관심이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그 책을 읽고 나서 마치 개안을 한 것처럼 달리기라는 운동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을 재정비할 목적으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려던 차여서 당장 달리기를 해보기로 결정했다.

원래 무언가를 한번 시작하면 무섭게 빠져드는 성격이라, 그렇게 시작한 달리기는 곧 전 부대원 사이에서 심심찮은 소문거리가 됐다. 달리기에 점점 더 강하게 몰입하면서 달리기 때문에 체중이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잘 달리려고 체중을 의도적으로 줄이는 형국이 됐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업무시간 이후 어떤 코스를 뛸까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은 밝은 대낮부터 자연과 호흡하며 부대 주위 산길을 마음껏 뛰어다녔다. 어떤 날은 부대가 있는 광탄에서 산길을 따라 정신없이 뛰어가다가 의정부 시내가 보이자 황급히 뒤돌아 뛰어온 적도 있었다.

이후 일취월장하는 달리기 실력과 아무리 뛰어도 좀처럼 숨이 가빠지지 않는 몸 상태에 점점 고무됐다. 그러나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 탓이었겠지만 주위 사람들은 나의 달리기 취미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간혹 휴가를 나가면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조차 체중이 많이 빠진 나를 보고 무슨 큰 병치레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군 제대 후 인턴, 레지던트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자타가 공인하는 가장 어려운 수련 과정인 흉부외과 시절에도 잠을 희생하면서까지 한밤중이나 새벽이면 달리기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1982년 1월 통금제도가 없어지자 이때다 싶어 새벽 두서너 시면 서울대병원에서 남산을 넘어 고속버스터미널까지 갔다오거나 구파발을 왕복하기도 했다. 시간이 없을 때는 제한된 시간에 오래달리기 효과를 얻으려고 운동용품점에서 산 납주머니를 발목에 차고 병원 주변을 달리기도 했다.

30년간 지속한 달리기 이력

그 전해인 1981년 여름, 당시 춘천 강원도립의료원에 3개월간 파견 나갔을 때는 일과가 끝나기만 하면 수시로 춘천 교외 의왕댐 정상까지 달려갔다. 어느 일요일엔 아예 작정하고 가평을 왕복하기도 했다. 레지던트 시절엔 여름휴가를 제주로 가서는 한라산 진입로에서부터 도로를 따라 길이 끝나는 지점까지 뛰어서 올라가는, 지금 생각하면 무모하기까지 한 시도도 했는데, 당시 전공의 사이에선 그런 내 행동이 전설처럼 전해졌다고 나중에 전해 듣기도 했다.

그런데 힘든 전공의 과정 중에 제대로 자지도, 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운동을 계속하자 역시 문제가 발생했다. 어느 날 기어이 혈뇨를 본 것이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이른바 ‘달리기선수 혈뇨(runner’s hematuria)’가 생긴 것이다. 그렇지만 이틀 정도 쉬고 나자 혈뇨가 사라졌고,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당시 치열하게 달렸던 기록을 간단하게나마 남겨보고자 매일 달린 시간과 장소를 기록해두기도 했는데, 아쉽게도 긴 세월이 지나면서 대부분 유실되고 지금은 찢어진 노트 쪽지 한 장만 그때 기억을 되살려준다(사진 참조). 지금이라면 모든 기록을 컴퓨터에 깔끔하게 저장하고 백업도 간간히 해두면 잃어버릴 위험성이 거의 없겠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그 당시 기록을 보면, 달린 시간을 기준으로 대강은 얼마나 달렸는지 알 수 있다. 납주머니를 차고 뛴 경우에는 이를 따로 표시했고 달린 장소도 함께 기록했는데, 예를 들어 사진에서 보면 왼쪽 열에 있는 5월의 경우,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있는 서울대병원 본원에서 근무하던 때라 장거리 달리기가 가능한 성북동이나 정릉 쪽 스카이웨이에서 주로 뛰었다. 어떤 날은 운동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스카이웨이 시작점에서 팔각정까지 몇 번이고 왕복했다. 오른쪽 열은 6월 기록인데 앞서 말한 대로 춘천 파견 기간으로 의암댐까지 뛰어갔던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어쨌든 이렇게 사뭇 ‘요란했던’ 나의 달리기 이력은 그 후에도 중단 없이 지속됐다.



주간동아 2012.12.17 867호 (p78~79)

김원곤 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 wongon@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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