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65

2012.12.03

행동하지 않으면 노후도 없다

강제 저축 3종 세트

  • 김동엽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은퇴교육센터장 dy.kim@miraeasset.com

    입력2012-12-03 09: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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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지 않으면 노후도 없다
    “노후는 멀고, 현실은 다급하다.”

    살다 보면 당장 눈앞의 유혹을 물리치고 먼 훗날에 대비해야 할 때가 있다. 노후 준비도 그중 하나다. 평안한 노후를 맞으려면 지금부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은 늘려야 한다. 문제는 이는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이다. 노후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노후가 걱정되느냐’는 질문에 대부분 ‘그렇다’고 응답하면서도 ‘노후 준비를 하느냐’고 물으면 고개를 가로젓는다. 노후 준비가 중요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면서도 막상 노후를 위한 저축은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가 뭘까.

    이 문제는 하기 싫은 일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인간 뇌의 작용과 관련 있다. 무게 약 1500g의 단백질 조직인 사람 뇌는 온갖 정보를 처리하는 신경세포 1000억 개 덕에 판단하고 기억할 수 있지만 모든 정보를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고정관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선뜻 수용한다. 편안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의 달콤한 유혹을 참고 견뎌야 하는 정보라면, 그것이 설령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도 애써 외면해버린다고 한다. 2011년 영국 경제전문지 ‘파이낸셜타임스’와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가 공동으로 ‘올해의 비즈니스 서적’으로 선정한 ‘의도적으로 외면하기’에 나온 내용이다. 저자 마거릿 헤퍼넌은 “사람 뇌는 자신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려면 반드시 알아둬야 할 내용이라도 받아들이기 불편한 진실이라면 그것을 외면해버린다”고 했다.

    노후 대비 저축을 늦추는 것도 뇌의 ‘의도적 외면하기’가 작동한 결과라 볼 수 있다. 사람 뇌는 노후에 대비해 저축을 하려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여 골머리를 앓느니,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 생각하고 의도적으로 눈감아버리는 것이다.



    노후 저축 차일피일 미루는 이유

    행동하지 않으면 노후도 없다
    이뿐 아니다. 큰맘 먹고 노후에 대비해 저축을 하던 사람도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연금보험상품에 가입해 1년 넘게 유지하는 사람은 80%가 안 되고, 2년 넘게 유지하는 사람은 63%였다. 연금보험 가입자 10명 가운데 4명 정도가 2년 이내에 해약하는 셈이다. 보험상품은 초기 수수료가 많아 중도에 해지하면 손해가 많은데도 왜 해지하는 사람이 많은 걸까.

    ‘넛지(Nudge)’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리처드 탈러 시카고대 교수는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 사이의 충돌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행동하는 자아’는 당장 원하는 것을 달라고 유혹하는 반면, ‘계획하는 자아’는 비용과 편익을 따져 당장의 욕구를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자명종 시계를 예로 들어보자. ‘계획하는 자아’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려고 아침 6시에 알람을 맞추지만, ‘행동하는 자아’는 알람이 울리면 끄고 다시 잠자리에 든다. 아침마다 ‘계획하는 자아’와 ‘행동하는 자아’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계획하는 자아’는 일부러 자명종 시계를 침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지만, ‘행동하는 자아’가 다시 알람을 끄고 잠자리로 돌아가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다. 이처럼 ‘행동하는 자아’는 ‘계획하는 자아’가 잘 짜놓은 계획을 수시로 망쳐놓는다.

    ‘행동하는 자아’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사람들은 ‘강제 장치’를 동원하기도 한다. 요즘 판매하는 휴대전화나 자명종시계는 알람이 울려 한 번 끄더라도 일정 시간 뒤에 다시 울리는 스누즈(snooze)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5분 간격 5회 반복으로 스누즈 기능을 설정해놓으면, 첫 알람을 끄더라도 5분 간격으로 다섯 번 알람이 울리는 식이다.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데도 이 같은 강제 장치를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이다. 현재 미성년자와 전업주부, 18~26세 학생, 기초생활수급자 등을 제외하고 소득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민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렇게 가입하면 중도에 찾아 쓸 수 없으며, 60세 이후 연금으로 수령해야 한다.

    1988년 처음 국민연금제도를 도입할 당시만 해도 이같이 준(準)조세적 성격을 띤 국민연금을 두고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통계청이 베이비붐세대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노후 준비를 한다’고 응답한 사람 가운데 38.5%가 주요 노후 준비 수단으로 ‘국민연금’을 꼽았다. 베이비부머 중에는 젊은 시절 월급에서 강제로 연금을 떼 갈 때만 해도 불만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정년이 임박하고 보니 그나마 기댈 곳은 국민연금밖에 없다며 안도하는 이가 많다.

    강제로 뗄 땐 불만, 지금은 만족

    행동하지 않으면 노후도 없다

    따뜻한 노후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려야 한다.

    퇴직연금도 대표적인 강제 저축상품 가운데 하나다. 퇴직연금 가입자는 법에서 정한 특별 사유가 아니면 퇴직금을 중간에 정산해 쓸 수 없다. 이뿐 아니라 중간에 직장을 옮기더라도 퇴직금을 현금으로 수령하는 게 아니라 개인형 퇴직연금(IRP)으로 이체한다. 필요한 경우 중도에 IRP를 해지할 수 있지만, 근로자들이 퇴직연금을 찾아 쓰기 번거롭게 함으로써 나중에 노후생활비로 사용하게끔 하려는 것이다.

    2001년 우리나라가 도입한 연금저축도 강제 저축 성격을 띤다. 요즘 같은 연말이면 근로자와 자영업자가 소득공제 목적으로 연금저축에 많이 가입하는데, 연금저축 가입자는 저축금액에 대해 연간 400만 원까지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연봉이 4000만 원 정도인 근로자가 연간 400만 원을 저축하면 연말정산 때 최대 66만 원을 돌려받는다.

    하지만 일단 연금저축에 가입하면 적립한 돈을 55세 이후 5년 이상에 걸쳐 연금으로만 수령할 수 있다. 중도에 해지하거나 55세 이후라도 연금이 아닌 일시금으로 수령할 경우에는 그동안 소득공제를 받았던 금액에 대해 기타소득세(주민세 포함 22%)를 납부해야 한다. 가입 후 5년 안에 해지하면 별도의 해지가산세(2%)도 내야 한다. 이렇게 중도 해지에 따른 불이익이 크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불편함 때문에 노후에 쓸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것이다.

    노후자금은 한두 해 노력해서 마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처음 저축을 시작할 때 아무리 굳게 결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여러 유혹에 맞닥뜨린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연금저축 같은 강제 저축 수단은 이 같은 유혹을 떨쳐내고 노후자금을 마련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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