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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 중립성 ‘시한폭탄’ 또 터질라

KT vs 삼성 ‘스마트TV’ 놓고 정면대결…인터넷 ‘트래픽 관리’ 등 제도 정비 서둘러야

  • 권건호 전자신문 경제정책부 기자 wingh1@etnews.com

망 중립성 ‘시한폭탄’ 또 터질라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두 거물이 맞붙었다. 통신서비스를 대표하는 KT와 제조업체를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주인공이다. 싸움은 ‘스마트TV’로 촉발됐다.

KT는 인터넷망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스마트TV가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한다며 2월 10일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을 제한했다. 삼성전자는 즉각 반발하며 인터넷 접속 차단을 중단하라는 가처분신청을 냈고,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도 청구하기로 했다. 이후 양측이 각각 기자회견을 통해 견해를 밝히고 상대방 주장을 반박, 또 재반박하면서 진흙탕 싸움이 됐다.

소비자 피해가 커지자 2월 14일 두 회사가 극적으로 합의해 삼성전자 스마트TV의 인터넷 접속이 재개됐지만 싸움의 원인이 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양측의 의견은 팽팽히 맞선다. 망 이용료에 대해 KT는 삼성전자가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이용자가 인터넷 요금을 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따로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두 회사는 자신들의 주장을 고속도로에 빗대 표현했다. KT는 “통신사가 만든 고속도로(초고속 인터넷)에 삼성전자 스마트TV라는 대용량 화물차량이 나타난 것”이라고 표현했고, 삼성전자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자동차 제조사에게 내라는 격”이라고 맞받아쳤다.

KT는 스마트TV가 HD와 3D급 대용량, 고선명 화질을 인터넷망으로 송출하기 때문에 IPTV보다 5∼15배나 많은 트래픽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특히 실시간 방송을 중계할 때는 수백 배까지 트래픽이 늘기 때문에 지금 속도로 스마트TV를 보급하면 통신망이 다운되는 ‘블랙아웃’이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스마트TV 보급으로 통신망 다운?

망 중립성 ‘시한폭탄’ 또 터질라
삼성전자는 KT의 주장이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삼성전자는 스마트TV가 IPTV에 비해 5∼15배 트래픽을 유발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스마트TV에 사용하는 HD급 용량은 기존 IPTV와 유사하거나 더 낮은 1.5∼8Mbps 수준이라는 것이다. 또 IPTV와 달리 실시간 방송은 공중파 신호로 들어오기 때문에 수백 배나 트래픽이 늘어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한다.

여러 스마트TV 제조사 중 삼성전자만 겨냥한 데 대해서도 양측 의견은 다르다. KT는 “망 이용료에 대한 문제를 논의하는 데 대해 LG전자는 협상의지를 보인 반면, 삼성전자는 협상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접속 제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반면에 삼성전자는 “KT가 망 이용료 지불을 전제로 논의를 제안했기 때문에 응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삼성전자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에서 망 중립성 정책을 논의하는 만큼 어떤 결정이 나온 후에 협의하는 것이 맞으며, 정책적으로 제조사가 망 투자비를 분담해야 한다고 결정된다면 그에 따르겠다는 의견이다.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도 관점이 엇갈린다. KT는 스마트TV 이용자가 일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대용량 트래픽 유발로 일반 인터넷 이용자의 서비스 품질이 저하되는 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삼성전자는 이미 인터넷 요금을 내고 있는 소비자의 서비스를 차단한 것은 잘못이며, 제조사에 망 이용료를 부담시키면 이는 곧 제품가격에 전가돼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한다.

두 회사가 싸움을 벌이는 동안 소비자들의 불편은 커졌고, 결국 방통위 중재로 극적 합의에 이르렀다. 그러나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자는 데까지만 합의했을 뿐,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시각차가 여전하다. 실제로 합의 후 KT는 “망 이용료에서부터 공동 비즈니스 모델까지 진척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 반면, 삼성전자는 “망 이용료보다 공동 사업 등 ‘윈윈’할 수 있는 모델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해 차이를 드러냈다.

두 거대 기업이 정면대결을 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지만, 사실 비슷한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통신사업자와 포털 및 온라인게임 업체, 통신사업자와 모바일 메신저, 통신사업자와 무선 인터넷전화(mVoIP) 사업자 간 벌어졌던 논란이 모두 같은 맥락이다.

핵심은 망 중립성에 대한 문제고, 정확한 규정이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새로운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반복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사업자 간 조정으로 일정 금액을 부담하는 등 나름의 합의를 통해 넘어갔다. 포털이나 온라인게임 업체는 전용회선요금을 내고, mVoIP는 5만5000원 이상 정액제 요금 이용자에 한해 허용하는 등의 방식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망 중립성이란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네트워크 사업자는 모든 데이터(콘텐츠)를 차별 없이 동등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비차별, 상호접속, 접근성이 핵심이다. 최근에는 대용량 콘텐츠 증가에 따른 트래픽 급증으로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도 망 중립성 논의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과 유럽은 망 중립성 법안 통과

통신사들은 망을 설치하는 데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드는 데다, 최근 등장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는 막대한 트래픽을 유발하기 때문에 통신망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사업자들도 망 이용료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다. 통신사 혼자서는 폭증하는 데이터를 소화하기 위한 추가 망 투자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즉, 안정적이고 자유로운 망 이용을 위해서라도 트래픽 유발 서비스를 만드는 사업자가 망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콘텐츠 사업자들은 이미 이용자가 요금을 내는데 사업자가 추가로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에 변화가 없다.

망 중립성을 둘러싼 논쟁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으며, 각국 상황에 맞는 가이드라인이나 법이 만들어지고 있다. KT와 삼성전자 간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도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1월 연방통신위원회(FCC)가 △투명성 △차단 금지 △차별 금지 등 3개 원칙을 담은 망 중립성 고시를 발효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6월 네덜란드는 통신사업자가 VoIP를 차단하거나 추가 요금을 부담시키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망 중립성 법안을 통과시켰다.

우리나라는 방통위가 1월 1일부터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지만, 선언적인 내용이라서 세부적인 보완이 뒤따라야 한다. 이 가이드라인은 △이용자 권리 △트래픽 관리 투명성 △합법적인 콘텐츠 및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망에 위해가 없는 기기 차단 금지 △합법적인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에 대한 불합리한 차별 금지 △합리적인 트래픽 관리 등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단, 보안과 안정성에 위협을 가하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는 통신사가 망 트래픽을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 서비스 품질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통신사업자가 프리미엄급에 해당하는 관리형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가이드라인에는 ‘투명성, 합법적, 불합리’ 등 광범위하고 모호한 내용이 많아 실효성을 가지려면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망 중립성 및 인터넷 트래픽 관리에 관한 정책자문위원회’(이하 위원회)를 구성하고, 2월부터 논의에 들어갔다. 위원회는 학계 및 연구기관, 통신사업자, 포털사업자, 케이블업체, 제조사, 소비자 분야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참여한다.

결국 반복적인 논란을 끝마치려면 위원회가 논의 속도를 높여 스마트TV, mVoIP 등 각각의 서비스에 맞는 규정과 제도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주간동아 2012.02.20 825호 (p64~65)

권건호 전자신문 경제정책부 기자 wingh1@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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