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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길의 놀라운 편집의 힘

3등은 ‘캐스팅 보트’로 세상의 판을 다시 짰다

제갈공명의 천하삼분지계

  •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3등은 ‘캐스팅 보트’로 세상의 판을 다시 짰다

3등은 ‘캐스팅 보트’로 세상의 판을 다시 짰다
위, 촉, 오 3국이 대립하던 서기 210년경 중국. 국력으로 보면 위나라가 가장 으뜸이었고 지배 영토도 가장 넓었다. 승상 조조는 천자를 허수아비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천하인재가 다 모여들었다. 오나라는 천혜의 방어선을 앞세웠다. 장강(양쯔강)이 거대한 국경선을 이루며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바리케이드 구실을 했다. 그래서 오나라 군대는 적벽대전 대승처럼 수전에 능했다. 아래로는 바다를 끼고 있어 무역 또한 발달해 물산이 풍부했다.

가장 취약한 나라가 유비의 촉나라. 지배지역은 큰 도시 없이 산간벽촌이 대부분이었다. 궁벽한 곳이라 인재도 드물었다. 오직 주군 유비를 필두로 ‘오호대장군’ 관우, 장비, 마초, 황충, 조운의 기량과 전략가 제갈공명의 시대 편집력이 무기였다.

공명은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로 세상을 나누려 했다. 북쪽의 조조와 강동의 손권이 자신의 거점에서 위용을 떨칠 때, 익주에 터를 내리고 ‘중원의 배꼽’ 형주를 취하면서 오나라와 동맹을 맺어 조조를 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다는 원대한 포부를 삼고초려 때부터 유비에게 건의했다. 위나라와 오나라 두 호랑이가 우뚝 버티는 형국을 뚫고 도모한 생존전략이 바로 천하삼분지계다.

고대 중국의 솥은 다리가 세 개다. 한 개라도 없으면 무너지고 만다. 솥의 다리 한 축을 이뤄 불우한 땅, 불리한 형국을 헤치고 캐스팅 보트를 쥐고자 한 것이다.

두 라이벌인 1등과 2등은 3등에게 구애를 할 수밖에 없다. 조조도 유비-손권의 선린 동맹을 저어해 촉을 먼저 공격하지 않았다. 오나라 또한 촉나라를 단독 공격할 시간에 위나라가 쳐들어올까 봐 굳이 촉나라를 자극하지 않았다. 더구나 촉나라의 지형은 험준했고 침공의 요로는 한정된 상황. 공명은 바로 이 점을 노리고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자 했다. 탄탄한 1등과 버금가는 2등 사이에서 3등이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세력 편집력인 것이다. 판이 불리할 때는 우월한 자의 판을 쪼개거나 기존의 판이 아닌 독립된 판을 짜야 살아남을 수 있다.



판의 기획자, 시대의 편집자 공명은 손권이 촉나라와 동맹관계를 맺길 내심 원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체면을 세워줬다. 조조와 손권은 마음속으로 ‘천하양분지계’를 원했지만 현실은 공명이 구도를 세운 천하삼분지계의 책략대로 출렁거린 것이다. 위, 촉, 오 삼국 세력 판세가 솥 다리처럼 정립되는 시기는 공명의 생존 시기와 궤를 같이한다.

“강유, 오늘밤 천문을 본 결과 내 수명이 다했구나. 보아라. 삼대성좌(三臺星座)에 객성(客星)의 빛이 강하고 주성(主星)은 희미하니 주성을 보좌하는 별들도 빛을 잃고 있다. 이는 내 수명이 다했다는 의미다. 생명이 있는 것은 반드시 스러지겠지. 슬퍼할 일도, 두려워할 일도 아니지. 이제 자연으로 돌아가는가.”

공명의 고개가 한쪽으로 툭 기울어졌다. 때는 서기 232년 8월 13일, 나이 쉰넷. 한나라 재건을 꿈꾸며 싸워온 영웅들. 유비, 관우, 장비, 조운, 마초…. 마침내 그 최후의 큰 별이 떨어졌다. 오장원 들판 건너편 위의 진영. 공명의 별이 떨어지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본 사람이 있었다. 바로 사마의(司馬懿) 중달. 공명에겐 최후의 라이벌. 공명에 비해 늘 한 치가 부족했던 중달의 지략. 사마의가 있었기에 위나라는 나중에 촉을 흡수할 수 있었다. 공명이 사라진 중원의 판세는 사마의가 의도하는 대로 짜여졌다. 위나라 또한 사마 집안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흰 깃털 부채를 들고 천하통일의 대전략을 도모하다 전장의 가을 속으로 스러져간 공명 선생. 사심 없이 주군을 모시며 충절의 미학을 보여준 선비정신. 전체를 보는 전략가이자 부분을 엮어낼 줄 알았던 전술 편집의 대가. 1700여 년 전 오장원 들판에 불던 초가을 바람, 완벽한 삶으로 완벽한 죽음을 맞이한 공명의 흰 도포자락이 아련하게 흔들린다.



주간동아 2011.12.12 816호 (p67~67)

김용길 동아일보 편집부 기자 harri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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