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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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고발과 실험정신 무대 오르다

‘2011 서울국제공연예술제’

  • 현수정 공연칼럼니스트 eliza@paran.com

    입력2011-10-17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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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 고발과 실험정신 무대 오르다
    가을이면 서울 대학로가 다양한 공연예술제로 풍성해진다. 특히 9월 말 시작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연극, 무용, 복합장르 등을 아우르는 대규모 페스티벌이다.

    개막작인 ‘홀리 이노센트 : 기이한 파티’(하이디 압더할덴·롤프 압더할덴 연출, 콜롬비아 마파극단)는 콜롬비아의 학살과 내전을 다룬 작품으로, 우익과 좌익의 대치 상황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민중의 애환을 표현해 관심을 모았다. 이 작품은 대사보다 무대, 가면, 소리, 움직임 등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퍼포먼스다. 특히 다큐멘터리적인 영상과 카니발의 놀이적 특성을 결합해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해학적 즐거움을 준다.

    극은 화자(話者)가 자신의 생일인 12월 29일에 콜롬비아 구아피의 ‘무고한 순교자들의 날’ 카니발에 참여하러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날은 헤롯이 예수를 죽이고자 2세 이하 남아를 학살한 날이라는 점에서 작품 주제와 관련 있다. 이날의 중요한 행위는 채찍으로 사람을 마구잡이로 때리는 것인데, ‘왜 그렇게 세게 채찍질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죄가 없어서’다. 이러한 문답은 폭력을 형상화하는 것으로 저항과 분노를 느끼게 한다.

    카니발에서는 일상의 규칙과 질서가 전복되고, 금기가 깨진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는 이승과 저승이 뒤섞여 노는 것 같은 난장을 만든다. 민중은 이러한 카니발을 통해 두려움과 억압을 해소하고 다시금 힘차게 살아갈 힘을 얻는다.

    현실 고발과 실험정신 무대 오르다
    이 작품에서 남미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마림바 연주는 잔혹한 내용과 어우러지며 낙천성과 페이소스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배우들이 무대 벽에 가면인 양 걸려 있다가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마치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것 같고, 마지막에 물건을 쌓아놓는 장면은 거대한 무덤을 연상케 한다. 가면을 바꿔 쓰며 춤을 추다가 풍선 터뜨리는 소리에 맞춰 연신 쓰러지는 것은 일종의 ‘죽음의 놀이’라고 하겠는데, 학살된 민중의 이름을 나열하는 영상과 어우러지며 처연함을 배가한다.



    반면, 고통을 승화하는 민중의 생명력은 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공연보다는 다큐멘터리가 강조되고, 이야기나 장면이 파편화한 채 늘어선 모습이다. 이는 현재진행형의 폭력에 대한 ‘거리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임을 전한다. 따라서 보편적 감성보다는 콜롬비아의 특수한 상황을 강조한 듯하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는 이외에도 체호프의 고전을 재해석한 ‘갈매기’, 무의식과 잃어버린 꿈의 세계를 탐색하는 음악극 ‘에코’, 고골의 ‘검찰관’을 한국적인 몸, 음악, 미술로 재구성한 ‘비밀경찰’이 무대에 올랐다. 호주 극단의 퍼포먼스 ‘작은 금속 물체’, 코메디아 델라르테 식의 코미디를 보여주는 한국 극단 ‘수레무대’의 ‘스카펭의 간계’,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소재로 한 일본 극단의 ‘히로시카-합천’, 3D 영상을 활용한 프랑스 극단의 디지털 미디어 퍼포먼스 ‘시네마티크’도 기대를 모은다. 10월 3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 서강대메리홀, 서울역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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