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05

2011.09.26

성폭력 불편한 진실 스크린으로 고발

황동혁 감독의 ‘도가니’

  • 정지욱 영화평론가, 한일문화연구소 학예연구관 nadesiko@unitel.co.kr

    입력2011-09-26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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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폭력 불편한 진실 스크린으로 고발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인간의 탈을 쓴 천인공노할 부류의 사람도 있다. 연약한 아녀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이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약한 사람을 괴롭힌 죄는 세상에 꼭 밝혀야 하고, 그에 대한 죗값도 치르도록 해야 한다.

    6년 전 광주인화학교에서 청각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성폭력을 자행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를 바탕으로 한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2011년 가을, 영화로 찾아왔다.

    자욱하게 안개 낀 고속도로를 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관객을 6년 전 실제 사건이 일어난 시점으로 접근시킨 영화의 첫머리는 인상적이다. 자동차에 치이는 사슴과 철로에서 죽음을 맞는 어린아이의 모습은 앞으로 영화를 통해 관객이 보게 될 아픈 현실에 대한 예방주사인지 모른다.

    범퍼 수리를 위해 정비소를 찾아간 강인호(공유 분)는 그곳에서 만난 지역 인권운동가 서유진(정유미 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배치받은 학교에 도착한다. 인호를 반갑게 맞아준 교장은 학교발전기금 5000만 원을 요구하고, 그의 요구를 받아들인 인호는 미술교사로서 첫발을 내딛는다.

    그러나 밤늦은 시간까지 자기 반 학생의 학생기록부를 살피다 외마디 비명소리를 들은 인호는 지난 몇 년간 학교에서 자행된 무자비한 성폭력의 진실에 서서히 다가선다. 그리고 유진과 함께 진실을 밝히고 파렴치한을 단죄하려는 싸움을 시작한다.



    예고편에서 진중한 모습의 강인호를 바라보며 오히려 그가 진실에 대해 어떤 자세를 견지할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게다가 사건에 대해서도 이미 알기에 영화가 사회현실을 어떻게 조명할지 조금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는 현실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실제 일어난 일에 비하면 그 표현 수위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어린 학생에게 가하는 성폭력과 무자비한 폭행, 그리고 지역사회가 진실을 덮으려 행한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손발이 묶인 채 성폭행당하는 아이, 화장실로 끌려가 성폭행당하거나 끊임없이 발길질을 당하는 아이. 알몸으로 씻김을 당하는 아이는 수치심을 느끼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역사회에서 명망 높고 신실한 종교인이기도 한 교육자는 신임 교사에게 학교발전기금 기부를 요구하면서 지역 형사에겐 돈봉투를 건넨다. 파렴치한 교육자를 연행해 가던 형사는 “판사하다 막 개업한 변호사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시교육위원회 관계자는 잘잘못을 따지는 인권운동가에게 “방과 후 일어난 일은 시청 소관”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영화 속 장면 하나하나가 관객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만든다. 학원 내 성폭력을 비롯해 학원비리, 전관예우 등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종합선물세트처럼 하나씩 펼쳐 보인다. 따라서 영화 내용은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렇지만 이 일은 실제로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지 모를 바로 그 이야기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것일 뿐이다.

    부드러운 로맨틱 가이 같은 공유는 군 복무를 하면서 수십 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특히 공지영 작가의 동명 원작소설을 읽고 마음에서 울림을 느낀 그는 휴가 때 자신의 소속사를 찾아가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 울림을 혼자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고 세상 밖으로 과감하게 끄집어낸 공유는 이 영화에서 나약해 보이지만 굽히지 않는 신념을 지닌 인호를 연기했다. 그는 이제 청춘스타의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연기 세계에 돌입한 듯하다.

    실화 영화가 가지는 힘은 탄탄한 스토리텔링뿐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난 극적 요소, 그리고 사실적 묘사와 진실에서 나온다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실화 영화는 감동적이거나 충격적인 소재를 다루기에 관객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는다. 그리고 대부분 실화 영화의 엔딩은 벅찬 감동, 잔잔한 여운으로 마무리된다.

    황동혁 감독은 전작 ‘마이 파더’(2007)에 이어 두 번째 작품인 이 영화에도 역시 실화를 담았다. 황 감독은 “실화여서 망설였지만, 실화이기에 만들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편한 진실도 진실이므로 이 영화가 단순히 과거를 들춰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은 아닐지라도 희망적인 엔딩으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성폭력 불편한 진실 스크린으로 고발
    영화는 잘 만들었지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기우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영화에 출연한 아역배우들이 지니게 될지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그것이다. 황 감독과 관계자가 거듭 밝힌 바와 같이 아역배우들의 연기는 그들의 부모가 입회한 가운데 촬영했고, 그 수위도 실제 사건에 비해 완급 조절이 잘 돼 있다. 하지만 아역배우의 속내를 어찌 단언할 수 있겠는가. 영화의 완성도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아역배우가 몸을 아끼지 않고 열연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리고 요즘에는 영화를 제작하면서 아역배우를 많이 배려한다. 그럼에도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영화 제작 종료 후 아역배우에게 상담 등을 통한 심리치료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촬영 당시 부모가 입회했고, 시나리오 내용도 허락을 받아 촬영했다 해서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관심과 관찰이 있어야 영화 꿈나무를 잘 키워낼 수 있다. 배우 양성을 발전적으로 해나가기 위해 영화 산업계가 아역배우를 대상으로 한 사후 조치 제도 등을 도입하기를 희망해본다.

    영화에서 인호의 어머니(김지영 분)는 “옳은 일, 옳은 소리만 하고는 못사는 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제는 옳은 일을 하고, 옳은 소리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나직하고 차분하게, 그리고 굽히지 않는 신념으로 진실을 들려주는 공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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