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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행복을 키우는 도심 농장 가꾸며 살고파

내 농장은 28번가에 있다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행복을 키우는 도심 농장 가꾸며 살고파

행복을 키우는 도심 농장 가꾸며 살고파

노벨라 카펜터 지음/ 정윤조 옮김/ 푸른숲/ 376쪽/ 1만2000원

“몸부림을 멈춘 해럴드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물에 담갔다 꺼냈다. 나는 옛 농장 일꾼들처럼 털을 뽑았다. 깃털이 날리고 속살이 드러날수록 해럴드는 점점 식료품 가게에서 비닐 포장을 씌워 파는 냉동 칠면조를 닮아갔다.”

미국 오클랜드 도심에서 농장을 가꾸는 노벨라 카펜터는 갓 부화한 때부터 정성을 쏟으며 기른 재래종 칠면조 해럴드를 추수감사절 전날 잡는다. 그리고 다음 날 추수감사절 저녁 만찬 시간, 몸 전체에 올리브기름을 발라 익힌 칠면조가 식탁에 올라온다.

“해럴드가 얼마나 맛있는지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밀크 초콜릿색을 띠는 허벅지와 다리 살은 육즙과 기름기와 풍미까지 모두 완벽했으며, 껍질은 바삭바삭했다. 손님들은 특별한 맛이라고 입을 모았다.”

도심에서 농장을 가꾼다고 하면 작은 텃밭이나 아파트 베란다에서 화분으로 몇 가지 채소를 길러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여느 농부처럼 온갖 작물을 심고 돼지, 오리, 토끼, 칠면조도 키운다. 애완용이 아닌 식용으로, 가히 자급자족 수준이다. ‘맛있는 고기, 행복한 고기’를 먹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에서 농장 가꾸기는 시작됐다.

아무리 땅이 넓은 미국이라도 도심에서 농장 가꾸기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시애틀에서 고스트타운이라 부르는 오클랜드 28번가로 이사한 저자는 버려진 지 오래된 상점과 폐쇄된 집, 잡초가 무성한 공터를 생명의 땅으로 일궈간다. 많은 동식물이 사는 도심 농장의 일상은 흥미진진하다. 벌은 밤마다 집으로 침입하고, 닭이 개에게 물려죽는 등 사고도 끊이지 않는다. 무릎 나온 바지에 두엄과 흙이 묻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저자는 무척 씩씩하다. 사료보다 풀을 좋아하는 토끼를 위해 취객과 마약쟁이들이 붐비는 29번가까지 진출해 펠리토리를 뽑아오거나, 엄청나게 먹어대는 돼지 남매를 위해 밤마다 차이나타운 음식점의 쓰레기통을 뒤진다.



농장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주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통로가 된다. 평소 대화 한 번 나누지 않던 이웃과 농산물을 나눠먹으면서 마음의 벽을 허물어간다. ‘자작농의 기쁨’을 맛보려면 땀과 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이든 생명을 돌보는 일은 어렵고 힘들다. 식탁에 오른 토마토 한 개, 고기 한 점에도 수많은 사연과 위대한 생명의 노래가 담겨 있다.

베란다에서 상추라도 가꿔본 사람이라면 자연의 소중함과 먹을거리의 귀중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씨를 뿌려 생명을 키우는 일, 어린 동물을 길러 고기를 얻는 일이 얼마나 숭고하고 행복한지를 체험하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크기에 상관없이 농장은 먹을거리를 키우는 곳인 동시에 삶을 살찌우는 공간이다. 도심 농사꾼인 저자는 이 책에서 그 행복한 감정을 속 시원히 털어놓는다.

“나는 우리 집 뒷마당에서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 성찰, 인간관계, 경쟁 그리고 사랑까지도. 싹이 트고, 자라고, 돌보고, 수확하는 단계는 저마다 기적이며 생명과의 대화다. 이제 나는 안다. 우리 모두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을.”



주간동아 2011.07.18 796호 (p74~74)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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