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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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삶과 숨은 이야기가 살고 있었네

한국의 전통마을을 찾아서

  • 윤융근 기자 yunyk@donga.com

    입력2011-07-11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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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상의 삶과 숨은 이야기가 살고 있었네

    한필원 지음/ 휴머니스트/ 520쪽/ 2만8000원

    오늘날 아파트단지는 욕망이 춤추는 공간이자 계급을 나누는 기준이다. 아파트 크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주민 사이에 거리감이 생기고 갈등이 불거지곤 한다. 그래서 한 단지에 같은 크기의 아파트만 짓는 것이 현대 건축의 모습이다. 그러나 2010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에서는 갈등보다 공존이 숨 쉰다. 양동마을은 초가와 와가, 가랍집과 양반집, 낮은 곳에 있는 집과 높은 곳에 있는 집이 서로 부담을 주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린다.

    “전통마을은 물리적 공간과 정신적 내용이 결합한 의미 있는 하나의 체계로 다가온다. 사상, 문화, 사회, 환경 등 네 가지 시선으로 그 의미를 해석하면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가치들이 숨어 있다.”

    ‘이곳만은 꼭 가보자’며 저자가 꼽은 최고의 전통마을 12곳은 대구 옻골마을, 성주 한개마을, 순천 낙안읍성, 제주 성읍마을, 안동 하회마을, 보성 강골마을, 경주 양동마을, 나주 도래마을, 봉화 닭실마을, 김천 원터마을, 아산 외암마을, 고성 왕곡마을이다.

    까마득한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이 살고 있는 한국의 전통마을은 오랜 지혜와 사연을 간직한다. 저자의 눈을 따라 경북 성주 한개마을로 가보자. 이곳은 벼슬보다 명예를 중시한 선비 마을이다. 한주종택, 월곡댁, 북비고택 등 일곱 집이 문화재로 지정됐다. 여느 마을보다 주인 호를 택호로 한 집이 많아 명예를 중시해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개마을은 1개가 아닌 5개의 작은 마을이 하나의 큰 마을을 이루는 형태로 성장하고 쇠락해왔다.

    전남 순천 낙안읍성은 조상이 생각한 지방도시의 원형이다. 현재 성 안팎에 300여 명이 살지만 100여 년 전에는 약 1000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 전통마을 인구의 4배로, 다른 곳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고 밀집된 정주지였음을 알 수 있다.



    “높이 솟은 성문, 초가지붕 위로 목을 내민 행정기관의 검정 기와지붕들은 주변 지역을 조직하는 중심지로, 낙안읍성은 도시의 정의에 잘 부합하는 우리의 ‘중세도시’였다.”

    전통마을은 다 비슷하지 않느냐고? 알고 보면 전통마을엔 ‘위계성, 확장성, 다양성’이 자리 잡고 있다. ‘질서 있는 사회’를 추구한 성리학이 그 중심이다. 그래서 저자는 “마을에서 종갓집을 찾으려면 가장 안쪽으로 가라”고 말한다. 또한 배산임수(背山臨水) 풍수사상과 자연관은 서양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마을의 확장성 개념을 낳았다. 즉, 마을을 독립과 자족적 공간이 아닌, 주변 지역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하나의 생물체로 봤다.

    “전통마을 공간은 공동체의 소통과 결속을 뒷받침하며, 소수의 사람이 최상을 차지하기보다 모두가 최적의 생활을 누릴 수 있는 해법을 담고 있다. 또한 땅과 건축과 인간의 진정한 관계를 재발견할 수 있다.”

    전통마을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애정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시대 주거공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엿볼 수 있다. 올여름엔 전통마을의 구불구불 키 작은 담장이 이어지는 고샅길을 따라 걷다가 넉넉한 느티나무 밑에서 땀을 닦아볼 일이다. 불편하고 촌스럽다는 이유로 외면하던 그곳에 가면 조상의 삶과 시대를 건너온 사연이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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