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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컬럼비아대 개리 레드야드 명예교수…백리척(百理尺) 적용 鄭상기 재평가해야

  • 김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holyjjin@donga.com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1 백두산 이남 지역을 관할하던 갑산부(甲山府)가 18세기 말 지역 형세를 파악할 목적으로 그린 ‘갑산부형편도’.

마치 하얗게 핀 구름처럼 백두산은 가장 높은 곳에 솟아 있다. 다른 산보다 더 새하얗고 신비스럽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 천지가 심장처럼 오롯이 자리 잡았다. 남쪽으로 뻗은 무수히 넓은 지형. 산맥과 산맥이 맞닿아 꿈틀꿈틀 요동치는 것 같다.

‘갑산부형편도(甲山府形便圖).’ 마치 살아 있는 듯한 이 지도의 매력에 사로잡힌 외국인이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한국학 개리 레드야드 명예교수. 한국 고지도와 역사 연구에 매진해온 그는 최근 ‘한국 고지도의 역사’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지도는 꼭 기사에 실어줘야 합니다. 많은 한국인 독자에게 꼭 보여주고 싶거든요.”

생물처럼 꿈틀 ‘갑산부형편도’

79세 고령임에도 그는 호기심 많은 소년 같았다. 갑산부형편도는 백두산 이남의 넓은 지역을 관할하던 갑산부(甲山府)에서 이 지역의 형세를 파악할 목적으로 18세기 말 그린 지도. 산과 강을 살아 있는 생물처럼 독특한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이 지도는 ‘생명을 갖고 진동하는’ 지도다.



“기괴한 형세가 꼭 사람의 뇌 같지 않나요. ‘대동여지도’처럼 아주 실용적인 지도도 좋지만, 저는 상상력이 가미되고 조금 변덕스러운 지도가 더 좋습니다. 이 지도는 제가 전 세계 지도 중 제일 좋아하는 지도입니다.”

그의 주장은 독특했다.

“지도는 살아서 진화하는 생명체입니다. 17세기 대량으로 유통했던 ‘천하도(天下圖)’는 1402년에 만든 ‘강리도(疆理圖)’가 진화한 결과입니다. 기존에 천하도가 불교에 기원을 두고 만들었다든지, 중국 고대 지도인 ‘산해경(山海經)’을 모방했다든지 하는설명은 모두 잘못된 거죠.”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2 17세기 전국적으로 유통했던 ‘천하도’. 3 1402년 제작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강리도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의 준말. 조선왕조 개국을 기념해 국가 프로젝트로 권근이 제작한 세계지도다. 유럽, 아프리카 대륙까지 그려 넣어 경험적 세계관을 넘어선 조선인의 개방적인 포부를 잘 드러낸 지도로 동아시아에서 최고(最古)다. 천하도는 제작 시기가 일정치 않은 세계지도로, 둥글게 생긴 지도 가운데에 내대륙(內大陸)이 있고 고리 모양의 바다(內海)와 이를 둘러싼 고리 모양의 외대륙, 또 이를 둘러싼 고리 모양의 바다로 구성된 추상적인 세계지도다.

제작 시기에서 두 세기 차이가 나는 두 지도의 연관성을 주장한 학자는 개리 교수가 처음이다.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한국 고지도와 역사 연구에 매진해온 개리 레드야드 교수(오른쪽)와 저서 ‘한국 고지도의 역사’.

“강리도는 서쪽 부분에서 아프리카 대륙이 지도 본체로 융합합니다. 이때 아라비아해와 서인도양은 남쪽으로 흐르는 하나의 긴 강으로 진화하죠. 즉, 천하도의 삼각형 반도는 아라비아 반도의 흔적이고 커다란 내해는 지중해의 흔적입니다.”

그는 천하도가 동아시아 최고의 지도인 강리도와 맥락이 닿아 있으며, 조선인의 전통 세계관을 잘 반영해 서양식 세계지도가 보급된 19세기에 이르러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金正浩)에 대해서는 한때 교과서에 “나라를 위해 조정에 지도를 바쳤다가 오히려 국가의 안보기밀을 유포한 혐의로 체포돼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쳤다”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지만, 오늘날에는 식민주의 사관을 가졌던 일본 역사학자들이 지어낸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만약 조정에서 그런 조치를 취했다면 정부 기록이나 개인 저술에 관련 내용이 무엇이든 남아 있을 것”이라며 “김정호는 세계적인 지리학자지만 (그의 업적이나 삶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잘 알려지지 않은 조선시대 지리학자 정상기(鄭尙驥)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기는 18세기 지도 제작자로서 조선에서 최초로 축척을 사용해 한반도의 윤곽, 즉 긴 해안선과 그동안 파악하기 힘들었던 북방 국경을 정확하게 그려낸 인물이다. 영조 때 관직 생활을 했던 아들 정항령(鄭恒齡)이 있다는 사실을 빼면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정상기는 평생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 학자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지도를 왕실에서 사용할 시점에는 죽고 없었죠. 그러나 그의 성과물은 위대했습니다. 그는 척도 개념을 지도 제작에 적용한 최초의 한국 지리학자였습니다. 정부의 지도 제작자는 경도와 위도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작업에 그의 지도를 사용했습니다. 김정호와 그의 동료 최한기 역시 이 축척을 ‘청구도(靑邱圖)’에 사용했을 정도죠.”

실제로 정상기는 백리척(百理尺)이라는 일종의 축척을 지도에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국지도’라는 지도책에 실린 그가 쓴 서문은 “우리나라 지도로 세상에 나온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러나 산천과 거리가 모두 바르지 못하다. 수백 리나 되는 먼 곳이 10리쯤의 가까운 곳으로 묘사돼 있고 동서남북이 바뀌기도 한다. 그 지도를 보고 어디로든 여행을 가려 한다면 의지할 것 없이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밝혔다. 백리척은 100리를 1척이 되게 하고, 10리를 1촌이 되게 한 축척. 실제로 측정해보면 축척의 실제 길이는 1척이 8.2cm이고, 약 42만분의 1 정도의 축척에 해당한다.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1 1417년 신숙주가 그린 ‘해동제국총도’는 일본을 그린 인쇄본 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동여지도만큼 뛰어난 지도 없어

“김정호만큼 정상기에게도 성공의 영예가 돌아가야 합니다.”

레드야드 교수는 열변을 토했다. 그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고지도 두 장을 새로 공개했다.

“일본을 그린 인쇄본 지도로 가장 오래된 것은 1417년 신숙주(申叔舟)가 그린 ‘해동제국총도(海東諸國總圖)’입니다. 현재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에 소장돼 있죠. 재밌는 점은 그중에 대마국을 그린 지도가 있는데 실제와 달리 섬을 마치 말굽 모양처럼 휘어 그렸다는 겁니다.”

상단에 ‘일본국대마도지도(日本國對馬島之圖)’라고 쓰인 흑백 지도에는 대마도가 정말 말굽 자국처럼 하얗게 찍혀 있었고 흰 선이 조선에서 시작돼 대마도 해안선을 따라가다 내륙을 가로지른다.

“1419년 조선 수군이 왜구 근거지를 공격했는데 흰 선이 그때의 항로입니다. 선이 육지 부분을 가로지르는 곳에 원래 육로가 있었는데 러일전쟁 때 일본군이 이 지협을 제거해 대마도가 오늘날 두 개의 섬이 된 거죠.”

레드야드 교수는 신숙주는 한 장의 지면에 해안선에 있는 모든 만과 강구를 표시하고자 일부러 휘어 그렸다고 설명했다. 한·중·일 세 국가의 고지도 중 어느 것이 가장 뛰어나냐고 물었더니 그는 대동여지도를 극찬했다.

“세 국가는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문화를 지녔지만 스타일이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이는 지도에도 여실히 드러나죠. 세 국가의 지도를 경험한 학자로서 지도에 적혀 있는 한문 필체만 봐도 한·중·일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예요. 한국처럼 중국과 일본에도 매우 뛰어난 지도가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중국과 일본에는 대동여지도에 필적할 만한 어떠한 지도도 없다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레드야드 교수는 6·25전쟁 직후인 1954년 미군 상병으로 한국에 처음 왔다. 그는 “서울 인사동과 명동에 있던 클래식 다방을 좋아했다”며 “지금은 없어진 ‘돌체’라는 다방에서 한국 연구를 결심했고, 그 뒤 50여 년간 그 길을 걸어왔다”고 회상했다.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2 해동제국총도에 있는 ‘일본국대마도지도’. 3 ‘영남호남연해형편도’.

사람 뇌 같은 독창성 “한국 古지도는 살아 있다”

4. 백리척을 적용해 현대 지도와 유사하게 경계를 그린 ‘강리도’와 그 외 지도의 윤곽 비교. 5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6 정확하게 측량한 지도를 제작하는 데 사용하는 선기옥형(오른쪽)과 선기옥형도.





주간동아 794호 (p50~53)

김진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holyj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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