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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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신도시 리모델링’ 펌프질

분당 재보선 공약에 등장 빠르게 확산…제2의 뉴타운 우려 목소리 터져 나와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입력2011-04-18 10: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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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신도시 리모델링’ 펌프질

    위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계 없음.

    4·27재보궐선거(이하 재보선)에서 최고 격전지는 ‘분당을’이다. 한나라당 강재섭 전 대표와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맞붙은 분당을의 최고 현안은 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 특히 손 후보는 정책위원회 전병헌 의장에게 “리모델링 문제를 적극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고 특별 지시를 내렸고, “주민 중심의 친환경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지역공약도 내세웠다. 18대 총선에서 불었던 ‘뉴타운 바람’이 이번 재보선에서는 ‘리모델링 바람’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주민들 추진위 구성, 국토부는 반대

    경기 분당, 일산 등 5대 신도시는 1980년대 후반 ‘단군 이래 최대의 부동산 호황’을 이끌었던 노태우 정권이 개발했다. 경제 발전과 함께 수도권이 팽창하자 정부는 서울 근교에 대규모 고층 아파트단지를 만든 것. 신도시는 ‘제2의 강남’으로 불리며 성장했지만, 건설된 지 20년이 지나면서 노후화 문제가 제기됐다.

    현행 건축법상 준공 40년을 채우기 전에는 재건축이 불가능하다. 신도시 아파트는 대부분 15층 이상 고층이고 용적률도 높지 않아 재건축해도 층수를 많이 높이기 어렵다.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수직증축 리모델링. 건물 전체를 리모델링해 면적을 조금 넓히면서 현재 아파트 골격에 5층 내외의 층만 얹는 방식이다. 거주민 처지에서는 신규 세대를 분양함으로써 리모델링에 드는 분담금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최근 분당, 일산 등 신도시에는 아파트별로 리모델링사업 추진위원회가 생기면서 수직증축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분당 매화마을 2단지 김정락 리모델링사업 추진위원장은 “59㎡ 집을 85㎡로 리모델링하려면 가구당 1억5000만 원 내외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현 세대주의 10%인 100여 세대만 추가 증축해 일반 분양하면 분담금이 1억 정도로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층수를 높이거나 가구 수를 늘리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불가능하다.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하기 위해 2010년 3월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세대수 10% 추가 허용, 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 증축 허용 면적 60%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건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1년 가까이 잠들어 있다가 올 3월에야 국토해양위원회에 상정됐다.

    민주당은 올 3월에도 사용승인일로부터 15년 경과한 공동주택은 세대수를 추가할 수 있고, 리모델링으로 증가한 면적의 3분의 1은 일반 분양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허가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칼자루를 쥐고 있는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지난해 12월 말 국토부는 “수직증축 리모델링은 현행대로 불가능하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국토부가 근거로 제시한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 토지주택연구원은 용역보고서를 통해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통해 도시 과밀화가 우려되고 △저층의 일조권이 박탈당할 가능성이 크며 △기존 건축물은 증축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됐기 때문에 몇 층을 더 얹으면 접합 및 보강 시공이 복잡해져 구조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삼풍백화점에서 봤듯 과도한 수직증축은 건물 안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수의 경제적 이익만 따져 허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렇게 확고하던 국토부가 흔들리는 징후가 보인다. 국토부는 1월 중순 공동주택 리모델링 세대수 추가에 관해 한국리모델링협회, 건축 시공사 관계자와 간담회를 가졌다. 그뿐 아니라 건설기술연구원,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에 수직증축 리모델링의 구조 안전성에 대한 연구용역을 맡겼다. 이는 수직증축 허용 문제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업계에는 청와대 최고위층이 ‘수직증축 리모델링 문제를 다시 한 번 검토해보라’고 지시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전했다.

    수직증축 안전성 장담할 수 있나

    신도시 수직증축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안전성이다. 몇 층을 추가로 얹어도 기존 아파트가 과연 견딜 수 있느냐는 것. 토지주택연구원 공간디자인연구실 윤영호 연구위원은 “리모델링 대상이 되는 1990년대 초반 시공 아파트의 설계도면이 분실된 경우가 많고, 믿을 만한지도 확신할 수 없다. 제대로 된 설계도면이 없는 상태에서 안전한 수직증축을 하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무자들의 말은 다르다.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박정민 총무단장은 “1990년대 이후 지은 고층 아파트는 모두 내진설계가 됐기 때문에 모자란 부분만 조금 보강하면 충분히 안전하다. 오히려 이번 기회를 통해 구조적으로 부실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어 아파트를 기존 상태로 두는 것보다 더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 기술력은 해저에 터널도 뚫을 정도다. 기존 아파트에 몇 층 더 올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한편 기존 거주민의 이익을 위해 법을 바꾸고 수직증축을 허용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경원대 도시계획학과 모 교수는 “경제 논리로 보면 리모델링 비용은 리모델링에 따른 이익을 향유하는 사람이 부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억지로 세대수를 늘려 그 부담을 덜려고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현(現)세대의 부담을 후(後)세대에 넘기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광수경제연구소 선대인 부소장은 “지금 20층 아파트를 25층으로 만들면, 20년 후 다시 리모델링이나 재건축해야 할 시기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다. 용적률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건물을 더 높일 수도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분당, 일산에 수직증축 리모델링이 시작되면 일시적으로 부동산 경기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리모델링을 위해 세대주가 집을 비우고 단기간 거주할 곳을 찾으면서 근처 강남, 서초, 목동의 전셋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것. 한양대 경영학과 이창무 교수는 “리모델링은 사업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고 하지만 재건축과 크게 차이 없이 이주 수요를 발생시킨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선 부소장은 “리모델링이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 일시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결국은 부동산 거품 붕괴를 미루는 수준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 2월 행정안전부 자료에 따르면, 경기도 분당과 일산의 인구수는 총 100만 명에 달한다. 이 밖에 중동, 산본, 평촌 등을 5대 신도시까지 합치면 인구수는 2배 이상 늘어난다. 정치권에서 이번 재보선뿐 아니라, 내년 총선과 대선의 핫이슈 가운데 하나로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꼽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18대 총선 때 ‘장밋빛 미래’의 팡파르를 울리며 시작했던 ‘뉴타운’ 계획이 속속 취소되고 있다. 수직증축 리모델링도 그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닐까.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그 과정만큼은 신중해야 한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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