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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그래도 카이스트 DNA는 계속된다

‘대화가 필요해’ 공감 속 개혁 지속 추진…여론의 지나친 관심에 오히려 부담감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그래도 카이스트 DNA는 계속된다

그래도 카이스트 DNA는 계속된다

카이스트 재학생과 교수의 연이은 자살로 서남표 총장 리더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4월 11일 카이스트 총학생회 소속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마친 뒤 유명을 달리한 학생들과 교수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대전 유성구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에서 자전거를 타고 5분 정도 가면 한 정신과의원이 있다. 4월 11일 이 병원을 찾았을 때, 환자 몇 명이 연이은 카이스트 자살사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9년 전 문을 연 이 병원에는 카이스트 학생도 많이 온다. 병원 관계자는 “병원 규정상 정확한 수치를 알려줄 수 없지만, 카이스트와 가까운 지리적 이점 때문에 많은 학생이 찾아왔고 지금도 다닌다”고 말했다. 병원장은 “카이스트 자살사건의 원인을 단정할 수 없다”고 말을 아꼈지만 병원에서 만난 학생들의 고민을 들려줬다.

“단순히 징벌적 등록금 때문에 자살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 서남표 총장 취임 전에도 학생들은 꾸준히 찾아왔다. 대부분 공부 부담을 호소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각자 공부가 바쁘니 친구들과 고민을 나누기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을 느끼는데 대화를 나눌 친구는 적었다.”

올해 카이스트 학생 4명과 교수 1명이 잇따라 자살했다. 카이스트 안팎에서 원인을 두고 논란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자살은 서남표 총장 때문”이라 주장하지만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들은 “학교 경쟁 시스템 때문에 자살했다는 명확한 유서나 진술은 없었다”고 밝혔다.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이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카이스트 측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12명이 자살했다. 2003년에도 두 달 간격으로 4명이 자살했다. 당시에는 학교 측이 “자살 방지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무마됐지만 올해는 다르다. 특히 서남표 총장의 개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서 총장 취임 이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국식을 고집한 서남표 총장

서 총장은 2006년 카이스트 총장에 취임했다. 1936년생인 그는 고교시절 미국에 간 뒤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공부했고 MIT 기계공학과 교수, 미국국립과학재단 공학담당 부소장 등을 지낸 뒤 2001년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석좌교수직을 맡았다. 서 총장은 카이스트를 자신이 공부했던 MIT 같은 미국식 명문대학으로 바꾸려 했다. 생명화학공학과 박선원 교수는 “MIT 스타일을 그대로 가져와 문화 차이를 빚기도 했다. 좀 더 인간적인 배려를 보완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서 총장 개혁의 시작은 교수 정년보장(테뉴어) 제도 개혁이었다. 서 총장은 테뉴어 심사를 강화해 취임 이후 심사 대상 교수 148명 중 24%를 탈락시켰다. 하지만 과거 MIT 학과장 시절 40%를 교체했던 일을 거론하며 성에 차지 않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카이스트의 한 보직교수는 “동료로 지내던 교수가 잘려나가는 것이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카이스트가 1등을 하려면 젊고 능력 있는 교수가 필요했다. 서 총장이 굉장히 어려운 일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수들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교수협의회(이하 교수협)가 2009년 총장의 정책을 중간 평가한 결과에 따르면, 교수 51%만이 서 총장의 계획이 장기 비전에 부합한다고 봤다.

‘공부하는 학생’을 만들려는 개혁도 시작했다. 주요 정책은 성적에 따른 수업료 차등 부과, 100% 영어 수업, 1학년 학사 경고 도입 등이었다. 서 총장의 정책은 즉시 학교에 영향을 끼쳤다. 1997년 카이스트 학부과정에 입학해 지난해 박사과정을 마친 심모(32) 씨는 “10년 넘게 학교를 다니면서 5번째 총장을 보았다. 총장이 바뀔 때마다 개혁을 이야기했지만 서 총장 부임 이후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체감 정도가 확연히 달랐다”고 말했다.

돈에 자존심 상한 학생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성적에 따른 수업료 차등 부과제다. 서 총장은 국민의 세금을 받아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고 재수강을 계속하면서 학교 밖으로 나가지 않아 기숙사 등의 공간 부족 문제까지 생기자 이 제도를 도입했다. 2007년 이후 학생들은 학점 평균이 3.0 미만일 경우 0.01학점당 6만 원씩 최대 600만 원을 수업료로 내게 됐다. 많은 학생이 이 제도를 ‘징벌적 등록금’으로 부르며 ‘장짤’(장학금이 잘린다는 뜻)의 부담감을 호소했다. 돈의 압박은 확실한 효과가 있었다. 전기 및 전자공학과 08학번 정모 씨는 “누구나 돈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공부는 하게 됐지만 돈으로 압박하니 부담도 컸고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희경 기획처장은 “징벌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 도리어 공부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개념이다. 국민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영어 강의도 학생들의 반발을 샀다. 서 총장 취임 전에는 전체 수업의 25% 정도가 영어 강의였지만 취임 이후 80% 이상으로 늘었다. 이를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은 “수업 내용을 이해도 못하고 스트레스만 받는다. 교수와 학생 사이 소통을 단절시켰다”고 말했다. 수리과학과 한상근 교수는 “다시는 영어로 수업하지 않겠다”고 학내 게시판에 선언했다. 하지만 영어 강의를 찬성하는 학생도 있다. 전기 및 전자공학과 08학번 윤모 씨는 “우리가 교환학생으로 외국에 가려면 외국 교환학생이 카이스트로 와야 한다. 그들이 들을 영어 강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도 카이스트 DNA는 계속된다

카이스트를 미국식 명문대학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서남표 총장의 개혁안은 배우는 학생뿐 아니라 가르치는 교수에게도 많은 부담을 안겨주었다. 이에 대해 문화 차이를 인정하고 인간적인 배려가 필요했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이은 자살로 카이스트 학내 구성원들의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앞으로 상당 기간 진통이 예상된다. 박 기획처장은 “안타까운 죽음이 계속된 만큼 오래 고민해야 한다. 학부모와 학생이 흥분한 상태에서 요구하는 것을 당장 다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밝혔다.

4월 13일 카이스트 학부학생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교 이래 첫 비상학생총회가 열렸다. 이날 상정된 4개 안건 가운데 학교 정책결정 과정에서의 학생 대표 참여와 의결권 보장 제도화, 학생사회 통합 요구안 이행, 차기 총장 선출 시 학생 투표권 보장 요구 등은 통과됐다. 하지만 관심을 모았던 ‘서 총장과 학교당국의 경쟁 위주 제도 개혁을 실패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안건은 투표에 참여한 852명 가운데 416명만이 찬성해 부결됐다.

앞선 11일에도 총학생회 회장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우리는 비극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회견문을 발표하며 비상총회 개최를 선언했을 때도 한쪽에 있던 다른 학생들은 “왜 발표하느냐. 너희의 논리를 전체 논리인 양 말하지 마라”며 따지기도 했다.

머리 맞댄 혁신위서 대안 찾기

대부분의 카이스트 학내 구성원은 서 총장 퇴진 찬반을 떠나, 자신들의 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했다. 4월 1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여야 국회의원은 서 총장의 책임을 물었지만, 학내에서는 교육과학기술부, 정당, 언론 등의 관심을 여전히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해결 실마리는 서 총장이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는 것이다. 한 학과장 교수는 “우리도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했고 귀를 열려고 하는데 정작 총장이 고압적”이라고 비판했다. 서 총장은 자살사건 이후 가진 간담회에서도 자신의 미국식 철학만을 강조해 구성원의 분노를 샀다.

서 총장은 4월 14일 “카이스트 구성원 전체가 총체적 위기 해결을 위한 새로운 기구 구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교수협이 요구한 혁신비상위원회(이하 혁신위) 구성 요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학교, 학생, 교수협의 의견 차가 적지 않아 조율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교수협 측은 “획기적인 변화가 없으면 용퇴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지만, 서 총장 측은 “개혁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혁신위는 총장이 지명하는 교학·대외·연구 부총장 등 3명을 포함한 5명, 교수협이 지명하는 평교수 5명, 학생 대표 3명 등 모두 13명으로 구성돼 학교 전반의 사항을 논의하고 결론을 이끌어낸 뒤 총장에게 수용할 것을 요청하게 된다.

학생 사이에도 대화가 더 필요한 실정이다. 4월 11~12일 카이스트는 수업을 모두 휴강한 채 학과별로 ‘사제 간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11일 한 학과 학생대표는 행사 시간이 다 됐는데도 학생이 5명밖에 오지 않자 “자리라도 채워달라”며 전화를 돌리기 바빴다. 다른 학생은 “정작 대화가 필요한 학생은 이 자리에 나오지 않는다”며 이 행사를 회의적으로 보았다.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08학번 A씨는 “카이스트 학생도 학교를 나서면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산다. 학교생활이 힘들었는데 졸업 후 무엇을 할지 정한 다음에 편해졌다. 서 총장의 제도는 이겨내는 사람에겐 도움이 되지만 지는 사람에겐 치명적이다. 서로 보듬어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구성원이 학내 의견을 모으고 만족스러운 학업성적과 행복한 학교생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학생들이 연이어 자살하는 가운데도 전남의 한 명문 자립형 공립고 학생들이 카이스트를 찾아와 홍보관을 둘러보며 카이스트 진학의 꿈을 키우고 돌아갔다.



주간동아 783호 (p42~44)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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