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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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고속鐵은 ‘빛 좋은 개살구’

수익성 확보 어려워 입찰 7월로 또 연기 … 국익 판단 땐 차라리 손 떼는 것도 고려해볼 만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1-04-18 09: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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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질 고속鐵은 ‘빛 좋은 개살구’
    “입찰제안서 제출 일자가 4월 11일에서 7월 11일로 미뤄졌다.”

    브라질 고속철도 한국사업단(이하 사업단) 측은 4월 8일 “브라질 교통부장관이 육상교통청장과 회의한 후 고속철도 사업 입찰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입찰이 3개월가량 미뤄질 수밖에 없게 됐다. 사업단 측의 발표에 관련 업계는 “혹시나 했더니 이번에도 역시나”라며 시큰둥한 반응이다. 사업 입찰이 미뤄진 것이 이번으로 벌써 다섯 번째.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가 언론을 통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10년 3월. 리우데자네이루-상파울루-캄피나스를 잇는 510km 구간에 고속철도를 건설하는 브라질 고속철도 사업은 사업비만 3462억 헤알(약 23조 원)에 달한다. 당장이라도 국내 컨소시엄이 이 거대 사업을 수주할 것처럼 알려지면서 지난해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 건은 국내시장을 뜨겁게 달궜다. 당시 취재를 하던 기자에게 사업단 측은 “곧 좋은 소식이 있을 테니 기다려달라”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았다.

    “막대한 손해” 사업자들이 연기 요청

    사업단은 2010년 5월까지 제안서를 제출하면 6월께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2010년 7월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는 “최종 사업자 선정 시기가 11월 말로 확정됐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11월이 되자 또다시 연기됐고 결국 해를 넘겼다. 그러자 국토부는 “수요 분석을 통한 타당성 검증 작업을 진행 중인 데다 민간과 국가의 재정 투입 비율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부가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국토부 해외철도기획단 관계자는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는 민간 사업자가 추진하는 것으로, 지금껏 정부가 나서서 보도자료를 내거나 고속철도 수주와 관련해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 가능한 한 우리 정보를 경쟁자들에게 알리지 않으려 노력하는데 정부가 앞장서 떠벌리고 다닌다는 것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업단에 참가한 기업들 쪽에선 “얘기가 정부에서 언론으로 흘러나와 결국 해외 쪽으로 들어간다”며 불만스러운 반응이다.

    이번 입찰 연기가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에 관심을 보인 사업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업성 논란마저 일고 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스페인, 독일 컨소시엄이 입찰 참여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 같은 사업비 규모, 자금 조달 기준, 건설사 시공 조건 등으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곤란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실제 프랑스는 “현재 계획으로는 수익성 확보 전망이 낮아, 계획을 재검토한 뒤 입찰을 연기하면 그때 가서 입찰 참가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사실상 브라질 고속철도 입찰에서 손을 뗀 상태다.

    국내 컨소시엄에서도 이미 이탈자가 나왔다. 당초 사업 참여 의사를 밝혔던 현대엠코, 코오롱건설, 삼환기업, 한신공영이 “수익성 담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참여를 포기했다. 그러다 보니 어렵사리 수주를 하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가 대박인 것처럼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자칫 우리 돈 들여 브라질만 좋은 일 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는 사업비를 살펴보자. 브라질이 제안요청서(RFP)를 통해 제시한 사업비는 23조 원으로, 브라질 정부가 70%를 부담하고 민간 사업자가 나머지 30%를 조달해야 한다. 문제는 실제 사업비가 23조 원을 넘는 경우다. 그 초과분에 대해선 민간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입찰 조건 변경이 수주 관건

    현재 건설사들은 사업비를 최소 40조 원, 최대 50조 원으로 본다.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려면 막대한 이자를 물어야 하며, 거기에 매년 물가상승분까지 더하면 사업비가 급증한다는 설명이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민간 사업자는 일정 자금을 브라질에서 마련해야 한다. 브라질의 현재 기준금리는 11.75%로, 5% 안팎의 국제 금리보다 배 이상 높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PF 대출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면 막대한 이자가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업단은 총사업비 규모를 30조 원 남짓으로 본다. 건설사가 추산하는 사업비보단 10조~20조 원가량 낮지만, 사업단 역시 처음보다 10조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판단한다. 사업비가 문제가 되자 사업단은 3월 이사회를 열고, 23조 원 사업비 책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업단장인 한양대 서선덕 교수를 전격 해임했다. 사업단 최양석 전략부단장은 “단순 공사비뿐 아니라 상대방의 투자비, 은행에서 투자를 끌어올 때 금리 등 투자를 유치하는 전반적인 부분에서 (서선덕 단장이) 주도면밀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고, 더는 같이 일할 수 없으리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사업비가 추가로 들어가더라도 운영 수익이 사업비보다 크면 이익이 남는다. 하지만 브라질 고속철도는 한국의 지하철 9호선이나 인천공항철도와 유사한 방식으로 건설된다. 민간에서 사업비를 마련하고 사업 완성 후 40년간 고속철도를 운영해 사업비를 보전하는 구조다. 따라서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이 내는 운임이 주수입원이 된다. 획기적으로 이용객이 늘지 않는 한 수익성에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자칫 수요 예측을 잘못할 경우 막대한 적자를 볼 수 있다. 실제 인천공항철도는 김포공항∼인천공항 노선만 개통한 2008년부터 서울역~인천공항 전 구간을 개통한 지난해까지 승객이 적어 만성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공항철도 적자에 대해선 우리 정부가 3997억 원을 보전했지만, 브라질 정부가 수요 예측 오류에 따른 적자분을 보전해준다는 보장이 없다.

    사업성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건설사들마저 컨소시엄 참여를 주저하거나 애초 참여 희망 업체도 이탈함에 따라 당장 사업단에 불똥이 떨어졌다. 여기에 적격심사(PQ) 조건을 충족하려면 시공 경험이 있는 국내 건설사 한 곳 이상을 컨소시엄에 참여시켜야 한다. 현재 사업단은 삼성물산, 현대건설 등 국내 대형 건설사의 전략적 참여를 추진하지만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토목공사의 경우 80% 이상을 브라질 건설사가 시공해야 하는 입찰조건으로 인해 국내 건설사로선 채산성을 맞추기 힘들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정부와 같이 가는 사업이라 독자적으로 (참여한다, 안 한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입찰이 또다시 연기됐지만 브라질 정부가 사업비를 당장 23조 원에서 대폭 인상하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브라질 정부가 세금 인하, 현지화 비율 및 기술 이전 완화 같은 입찰 조건을 변경해 어느 정도 사업성을 마련해주지 않는다면 브라질 고속철도 수주는 자칫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위험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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