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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박근혜를 잡아라!” ‘묻지마’ 친박 열풍 01

이유 있는 ‘박근혜 짝사랑’

지지모임, 예비후보 난립 전국이 들썩…충성 경쟁 아니면 순수한 후원?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이유 있는 ‘박근혜 짝사랑’

이유 있는 ‘박근혜 짝사랑’
“박근혜 전 대표께서 축전을 보내왔습니다.”

순간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친박(친박근혜)계로 분류되는 김기춘 전 의원이 보낸 축전도 함께 소개됐다. 다시 박수가 이어졌다.

1월 13일 오후 5시, 경남 거제시내 한 건물에서 열린 진성진 변호사사무실 개소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년 총선 출마를 준비하는 진 변호사는 이날 박 전 대표의 축전을 내세워 친박계라는 사실을 공식 천명했다. 진 변호사는 김 전 의원과 같은 고향 출신인 데다, 김 전 의원의 서울대 법대 및 대학원 후배다. 여러 차례 재기를 모색하던 김 전 의원이 후배인 진 변호사에게 사실상 도전 기회를 물려준 셈이다.

거제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인 김현철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 오랫동안 터를 닦아온 지역구다. 박 전 대표를 내세운 진 변호사의 움직임이 김 부소장으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일 터. 더욱이 진 변호사는 사무실 개소식을 전후해 김 부소장을 직접 공격하기도 했다. 김 부소장이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총선 공천권을 이명박 대통령이 행사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라고 말한 게 발단이 됐다. 진 변호사는 이에 대해 “김 부소장의 발언은 20년 전 군사독재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친이계와 친박계의 대립 양상을 보는 듯했다.

며칠 후인 1월 20일 김 전 대통령은 ‘느닷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민주동지회’ 신년모임에서 김 전 대통령은 “18년간 장기 독재를 한 박정희가 이 나라 군사독재 정권의 원흉이다. 수많은 국민이 유신독재의 무자비한 탄압과 고문으로 비명에 죽어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 준비 예비후보들 친박계 합류 경쟁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선 김 전 대통령의 공격은 박 전 대통령이 아니라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고 풀이한다. 김 전 대통령이 이어 “2년이나 남은 대선이 조기에 과열되는 것은 나라를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된다”고 한 말도 결국 박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염두에 둔 것이라고 해석한다. 결국 ‘김 전 대통령의 유신독재 비판’은 박 전 대표를 내세운 진 변호사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박 전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실제 (진 변호사에게) 축전을 보냈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다만 전국적으로 박 전 대표의 이름을 앞세워 정치하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벌어진 하나의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본격적인 정치 계절이 돌아온 모양이다. 그 중심에는 박 전 대표가 있다. ‘박근혜의 이름’으로 전국이 떠들썩하다. 진 변호사처럼 내년 총선 준비에 나선 예비후보 사이에서는 친박계에 합류하려는 경쟁이 치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이계보다 친박계가 내년 총선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친박계 전·현직 의원 사이에서는 박 전 대표에 대한 충성 경쟁이 본격화한 듯한 양상이다. 박 전 대표를 위한 조직이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그 증거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이성헌 의원은 요즘 다시 바빠졌다. 전국적인 박 전 대표의 외곽 지지모임인 ‘국민희망포럼’을 4년 만에 다시 복원하려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올 초 광주·전남지역 친박 인사를 중심으로 발족한 ‘빛고을희망포럼’과 뒤이어 전북지역에서 출범한 ‘온고을희망포럼’은 이 의원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또 4월 7일 강원지역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인 ‘국민희망포럼 강원봉사단’ 출범을 주도한 데 이어 20일 국민희망포럼 서울모임인 ‘서울희망포럼’을 발족할 예정이다.

희망포럼 상임고문을 맡은 강창희 전 의원도 적극적으로 동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전 의원은 지난해 말 무렵 대전과 충남·북지역 희망포럼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친박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국 조직화작업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본다. 자칫 대선 조기 과열을 부추긴다는 비난의 화살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인지 이 의원은 “국민희망포럼은 단순한 봉사단”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 의원의 설명이다.

“희망포럼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각 지역에서 박 전 대표를 지지하던 분들이 만든 모임이다. 그 이후 자연스레 봉사활동 모임으로 유지해오다가 최근 일부 지역에서 모임을 재정비한 것이지, 누가 나서서 의도적으로 조직화한다든지, 친박계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이 아니다.”

‘국민희망포럼’ 4년 만에 복원 움직임

이유 있는 ‘박근혜 짝사랑’
이 의원은 특히 “희망포럼은 자발적인 조직이지 선거조직이 절대 아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도움을 주는 것일 뿐, 박 전 대표의 의지와 전혀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희망포럼을 단순한 봉사활동 모임으로 보기 어려운 구석이 적지 않다. 친박계 이해봉 의원이 고문을 맡았으며, 경북지역 희망포럼 대표자는 현역 정치인인 정해걸 의원이다.

일부 친박계 의원은 희망포럼과는 별도의 조직을 이미 구성했거나 준비하고 있다. 현재 희망포럼은 전국 16개 광역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부산, 대구, 경남, 울산, 제주 등 5개 지역을 제외한 11개 지역에 모두 결성돼 있다. 희망포럼이 결성되지 않은 5개 지역은 또 다른 모임이 결성돼 운영 중이다.

부산은 친박계 서병수 의원이 2007년 경선 당시 만든 ‘포럼 부산비전’을 지속적으로 관리해왔으며, 대구에서는 올해 1월 조원진 의원 주도로 ‘새나라 복지포럼’이 출범했다. 3월에는 안홍준 의원이 경남지역을 기반으로 한 ‘경남행복복지포럼’을 만들었다. 제주에는 현경대 전 의원이 별도의 조직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박계 의원이 이처럼 지역 조직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내년 대선을 위해서도 조직이 필요하지만, 그 전에 치러질 총선 공천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고 총선 본선에서도 경쟁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친박계 의원은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이 봉사활동을 나갈 때는 별로 참여하지 않던 정치인들이 요즘에는 지나칠 정도로 적극적이어서 솔직히 걱정스러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의 이름을 내건 각종 팬 카페와 모임도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다. ‘주간동아’ 조사 결과, 현재 각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박 전 대표를 지지하는 팬 카페와 모임은 50개에 달한다. 2007년 박 전 대표의 당내 경선 패배 후에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결과다. 지난해에만 ‘근혜시대미래연합’ ‘대박가족(줄푸세클럽)’ ‘박해모(박근혜를 사랑하는 해병들 모임)’ ‘대한민국 박근혜 지지모임’ ‘박근혜 존사모(존경하며 사랑하는 모임)’ ‘박근혜 지지연대’ 등 6개가 생겼고, 올해 들어서도 ‘혜(惠)사랑’이라는 모임이 새로 문을 열었다.

회원 규모는 적게는 8명에서부터 많게는 6만~7만 명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모임은 2004년 3월에 구성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다. 현재 공식 회원 수는 6만3000여 명. 박사모는 4월 2일 대전 충무체육관에서 회원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 7주년 행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한나라당 박성효 최고위원과 홍사덕·김충환 의원, 미래연합 이규택 대표, 한나라당 강창희·김학원 전 의원, 정우택 전 충북지사 등 친박계 인사가 대거 참석했다.

하지만 현재 활동하는 박사모는 하나의 모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뉴 박사모’ ‘대한민국 박사모 전국연합’ ‘박사모 전국연합본부’ ‘New 박사모’ 등 4개가 더 있다. 모두 박사모에서 파생한 모임이다. 박사모 한 회원은 “박사모 초대 회장이었던 정광용 회장의 독선적인 카페 운영과 여러 내부 문제로 회원이 떨어져 나오면서 분화했다”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현재도 박사모 회장직을 맡고 있다.

다른 모임도 박사모처럼 분화한 경우가 적지 않다. 결국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이 난립하게 된 직접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한때 모임의 난립을 막으려고 10여 개 모임 대표가 한자리에 모여 ‘연대모임’을 추진한 적도 있다. 2007년 경선 때 이명박 대통령의 팬 카페가 하나로 뭉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던 반면,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은 수십 개가 난립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계기가 됐다.

10개 모임 대표가 연대해 2008년 12월 결성한 게 바로 ‘호박가족’이다. 박 전 대표 측에서 이 모임을 공식 팬 카페로 지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단일 모임으로 발전하는 데는 실패했다. “초기 운영진 구성 단계에서 시작된 의견 대립과 불협화음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게 한 모임 대표의 얘기다.

예상치 못한 악재로 돌변 가능성도

현재 호박가족의 회원 수는 6만~7만 명으로 추산된다. 박사모 못지않은 규모다. 하지만 호박가족 회원은 대부분 다른 모임에 중복 가입한 상태여서 결집력은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연대 논의 실패 이후 새로운 형태의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이 난립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치 않다.

전국적으로 박 전 대표의 이름을 내건 지지모임의 난립은 박 전 대표 측으로서도 부담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박 전 대표 측으로선 이들 모임의 운영이나 활동에 관여하긴 어려운 처지다.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모임인 만큼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 박 전 대표 측은 다만 ‘호박넷’이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모임 간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해놓은 상태다.

내년 대선까지는 1년 8개월 정도 남았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친박계 내부에선 예비후보들의 친박계 진입 경쟁, 의원들 간 조직화 경쟁, 박 전 대표 지지모임의 난립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 전 대표의 대선구도에 예상치 못한 악재로 돌변할 위험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를 지지하려는 친이계를 끌어안는 등 외연을 확대해야 할 시점에 지나친 내부 경쟁은 적절치 않다. 가장 두려운 적은 바로 내부의 적”이라는 한 친박계 의원의 발언은 친박계 내부의 미묘한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주간동아 783호 (p14~17)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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