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9

2011.03.21

말 많은 ‘셧다운제’ 게임중독 해결?

문화부·여성부 기싸움 팽팽 … 모바일 게임 업계는 타격 받을까 노심초사

  • 김현수 동아일보 산업부 기자 kimhs@donga.com

    입력2011-03-21 10: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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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많은 ‘셧다운제’ 게임중독 해결?
    ‘어휴, 게임 좀 못하게 컴퓨터가 저절로 꺼졌으면….’

    게임 좋아하는 자녀를 둔 부모는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한다. 컴퓨터 앞에만 붙어 있는 자녀에게 아무리 잔소리해봤자 듣질 않으니 국가가 나서서 온라인 게임에 아예 접속하지 못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나온 대책이 바로 ‘셧다운제’다. 이것이 시행되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16세 미만 청소년은 정보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모든 게임을 이용할 수 없다. 나이도, 국경도 뛰어넘는 인터넷 세상에서 한국만 특정인의 특정 프로그램 접속을 막는 게 가능할까.

    청소년 절반 “그래도 한다”

    셧다운제 논의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지난해 3월 충격적인 사건이 알려지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게임 중독에 빠진 한 부부가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즐기느라 생후 3개월 된 딸을 굶겨 죽인 사건이다. 자기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까지 게임에 몰입한 부부의 비인간성에 여론은 경악했다. 성인은 그렇다 쳐도 우리의 자녀만이라도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받았다.

    한 달 뒤인 2010년 4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이하 문방위)와 여성가족위원회에서 게임 과몰입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과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각각 통과시켰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와 여성가족부(이하 여성부)는 줄다리기에 들어갔다. 어느 부처에서 게임산업을 규제할지, 셧다운제가 강제적이어야 하는지 등을 둘러싼 싸움이었다.



    결론은 지난해 12월에 났다. 여성부가 셧다운제의 주무부처를 맡기로 했다. 만 16세 미만 청소년의 오전 0시부터 6시까지 게임 이용을 금지하는 ‘셧다운제’를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에 넣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3월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심의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셧다운제 적용 범위와 시기를 두고 문화부와 여성부가 다시 충돌해 결국 셧다운제가 포함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 심사는 4월로 미뤄졌다.

    문화부는 “온라인 게임에 한해 셧다운제를 시행하자”는 주장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이온, 리니지처럼 비교적 과몰입 정도가 높다고 판단되는 게임 위주로 셧다운제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 반면 여성부는 네트워크를 활용한 모든 게임이 적용 범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되면 무선 인터넷을 쓰는 스마트폰 게임, 비디오 콘솔 게임 등도 규제 대상이다. 시행 시기도 문제다. 문화부는 3년간 유예기간을 두며, 모바일 게임이 중독성이 있는지를 판단해 차후에 논의하자고 주장하는 반면 여성부는 1년간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말한다.

    문화부와 여성부가 의견을 조정하는 사이, 셧다운제가 필요한지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나오고 있다. 청소년 과몰입 문제는 우리 모두가 안고 가야 할 심각한 사안이지만 셧다운제가 과몰입의 해법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심야에 강제로 온라인 게임을 못하게 한다고 해도, 청소년은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얼마든지 온라인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데다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아도 되는 게임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오후 10시 이후 학원 수업을 제한하면 새벽반이나 불법 과외가 기승을 부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 ‘IT 갈라파고스’ 되나

    말 많은 ‘셧다운제’ 게임중독 해결?

    ‘셧다운제’는 자정이 되면 무도회를 떠나야 하는 신데렐라 같다고 해서 ‘신데렐라법’이라고도 부른다.

    실제 최근 한국입법학회가 청소년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46%가 심야에 강제 셧다운제를 실시해도 게임을 하겠다고 답했다. 48.4%는 ‘인터넷상의 다른 콘텐츠를 이용하겠다’고 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소프트웨어협회(ESA)도 최근 셧다운제에 반대하는 의견서를 우리나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하고 “셧다운제는 자녀를 가장 잘 이해하는 부모에게서 게임 이용을 지도할 수 있는 결정권을 빼앗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민등록번호 인증을 거치지 않는 해외 게임에 대한 규제도 이슈다. 3월 4일 열린 문방위 회의에서 한나라당 허원제 의원은 “외국에 서버를 둔 게임은 셧다운제로 규제할 방법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지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정병국 문화부 장관은 “셧다운제의 경우 태국에서 실행하다 실효성이 없어 중단했고, 중국에선 검토 단계에서 포기했다”며 “셧다운제가 게임으로 인한 병리현상과 폐해를 없애준다면 적극 실행하겠지만, 실질적인 한계가 있다.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셧다운제가 여성부의 주장대로 통과할까봐 노심초사하는 곳은 바로 모바일 게임 업계다. 모바일 게임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사전 심의 규제 때문에 한국에만 애플의 앱스토어, 구글 안드로이드 마켓에 게임 카테고리가 없었다”며 “이제 규제가 완화돼 게임 카테고리가 열리려나 했는데 셧다운제가 ‘재’를 뿌리면 영영 열리지 못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스마트폰 게임은 ‘킬링 타임’용 단순한 게임이 많은데 이것까지 제한하면 국내 게임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장터가 타격을 입고, 시장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모바일 게임 업계는 사전심의 규정 때문에 ‘잃어버린 1년’이란 시련을 겪어야 했다. 스마트폰 게임 앱을 사고파는 장터의 주인인 애플과 구글은 한국의 사전심의제를 통과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한국의 앱스토어, 안드로이드 마켓에서만 게임 카테고리를 열지 않았다. 한국 모바일 게임 업체는 국내시장은 포기한 채 해외시장만 노릴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2008년 11월 문화부가 앱스토어 같은 오픈마켓에 한해 사전심의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그러나 ‘셧다운제’가 모바일에도 적용되면 국내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가 열릴 가능성은 사라진다. 해외 스마트폰 게임도 국내에서 발붙이기 어려워진다. 해외 개발자가 한국에서만 주민등록번호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 청소년인지 아닌지 확인할 리 없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세계적인 소셜네트워크게임(SNG) ‘팜 빌’도 한국에선 사라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개인정보가 불필요하게 수집되는 점도 세계적인 추세와 어긋난다. 소규모 개발사까지 청소년 인증 문제로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정보를 수집하면 이를 악용할 여지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세계는 모바일을 중심으로 콘텐츠를 앞세워 주도권을 잡으려 전쟁을 벌이는데 실효성 없는 규제 때문에 기회를 놓치고 있다”며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강국을 자처했지만 우물 안 개구리 정책으로 구글과 애플을 따라가기 바빴던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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