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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추락하는 갈리아노 날개 있나

세계적 디자이너 ‘反유대주의’ 발언 파문 … 일부에선 “그럴 리가” 음모론 제기

  •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추락하는 갈리아노 날개 있나

추락하는 갈리아노 날개 있나
2011년 2월 28일 오후, 명품 브랜드 디올의 아트 디렉터이자 세계적인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수많은 취재진 앞에 나타났다. 그가 도착한 곳은 패션쇼장이 아닌 경찰서. 깔끔한 검은색 정장을 입고 꽃장식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썼지만 얼굴은 평소와 달리 수척해 보였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변호사 스테판 제르빕의 보호 속에 프랑스 파리 3구역의 경찰서 안으로 들어간 그는 5시간 동안 조사를 받은 뒤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서둘러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늘 카메라 앞에 당당히 섰던 그가 왜 기자들의 플래시 세례에 도망치듯 경찰서를 떠났을까?

2월 24일 밤 갈리아노는 파리 마레에 있는 단골 바 ‘라 페를(La perle)’의 테라스에서 옆자리의 한 커플과 실랑이를 벌였다. 이 커플은 갈리아노가 난데없이 자신들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반(反)유대주의 발언을 했다며 그를 정식 고소했다.

“처벌 마땅한 일 vs 먼저 시비 걸어”

프랑스 언론은 즉각 갈리아노의 인종차별주의 발언과 욕설을 대서특필했다. 사건 다음 날인 금요일 디올은 그에게 아트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통보했다. 디올 관계자는 “사건 다음 주에 파리 패션위크가 시작된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세계 패션계에 충격을 안겨준 갈리아노의 정식 해임을 최종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해임의 충격도 잠깐. 토요일에는 또 다른 여성이 피해자임을 주장하며 파리 3구역의 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40대 후반인 이 여성은 갈리아노가 2010년 10월 같은 바에서 옆 테이블에 있던 자신에게 반유대주의 발언을 비롯해 욕설을 하며 외모를 비난했다고 주장했다. 여성은 “당시엔 갈리아노가 술에 취해 저지른 단순한 실수로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했기에 처벌받아 마땅하다”며 고소의 이유를 밝혔다.

사건 다음 주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더 선(The sun)’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문제의 동영상이 공개됐다. 피해자가 촬영한 동영상에는 만취한 갈리아노가 옆 테이블 손님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갈리아노는 “난 히틀러를 좋아한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죽었어야 했다. 당신들 어머니, 조상도 사라졌어야 했다”며 막말을 쏟아냈다. 손님들이 “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묻자 그는 “바로 당신 같은 쓰레기들이 문제다”라고 대답했다. 이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갈리아노도 대응에 나섰다. 그는 피해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을 이유로 정식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사건 당일 혼자 술을 마시는데 커플이 먼저 시비를 걸어왔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커플이 갈리아노 얼굴을 확인한 뒤 끈질기게 그의 성질을 돋우어 만취 상태인 그의 입에서 거친 발언이 나오도록 유도했다는 것. 커플은 이어 휴대전화로 그 장면을 촬영하고 협박했다고 한다. 파리 검찰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며 더 많은 증인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소인의 주장만으로 상황을 짐작할 수 없다”고 밝혔다.

추락하는 갈리아노 날개 있나

존 갈리아노는 강하게 결백을 주장했지만, 발언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스캔들은 그리 간단하게 풀릴 사안이 아니다. 경찰서로 불려간 갈리아노는 본인을 고소한 커플과 여성을 직접 만나 ‘정면 대결’했다. 경찰은 바의 관계자와 다른 손님까지 소환해 심문했다. 이날 수사를 통해 경찰은 “결론짓기가 어렵다. 현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었다. 갈리아노가 영어로 말해 다 알아듣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의 열쇠는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영어 구사와 이해 능력에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 출신인 갈리아노는 평소 프랑스어가 서툴러 모든 대화를 영어로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건의 의문은 여기서 시작됐다. 인터넷에 유출된 영상에는 그와 대화를 나누는 피해자들이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또한 갈리아노가 한마디 할 때마다 그들은 깔깔대며 웃었다. 과연 갈리아노의 말대로 피해자들이 그를 농락한 것일까?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건은 이미 갈리아노를 ‘생매장’시켰다. 갈리아노는 1984년 패션계에 첫발을 내디딘 후 20여 년간 세계적인 브랜드 디올과 지방시 등에서 작업하며 특유의 기하학적이고 엉뚱한 디자인으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디올 향수 ‘미스 디올’의 전속 모델이자 이스라엘 출신인 내털리 포트먼은 “평소 좋아하던 갈리아노의 행동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디자이너지만, 아름다움을 창조해야 할 본분을 망각하고 여성의 외모를 비난하거나 반유대적인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번 사건으로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적인 이념을 뿌리 뽑아야 하기에 다시는 갈리아노의 옷을 입지 않을 것은 물론, 어떠한 작업도 함께 하지 않겠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진실 밝히기 싸움은 이제부터

샤넬의 디자이너 칼 라거펠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세계의 패션을 이끄는 유명 디자이너는 조심해야 한다. 만취 상태로 거리를 배회해서도 안 된다. 동료로서 실망이 크다. 하지만 갈리아노와 수년간 일한 것은 물론, 그의 십년지기인 베르나르 아르노(디올의 모기업인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디렉터)는 더 실망이 클 것이다. 그의 한순간 잘못된 행동이 전체 브랜드와 그룹에 누를 끼쳤고 손실은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보그 이탈리아 편집장 프랑카 소자니는 “사건 소식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인종, 종교 차별적인 생각에는 반대하지만 내가 아는 갈리아노는 제정신으론 절대 그런 말을 뱉을 사람이 아니다”며 진상 파악을 촉구했다. 매거진 뉴메로(Numero)의 창시자 바베트 디지엉도 “의심스러운 스캔들이다. 검찰이 진짜 그날 사건의 발단과 원인을 찾아주기 바란다. 오랫동안 그를 알고 지냈지만 그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다. 분명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며 그를 두둔했다.

화려한 인생 뒤에 감춰졌던 갈리아노의 본성이 드러난 것일까, 아니면 패션계의 거물을 상대로 벌어지는 파렴치한 장난일까? 진실이 밝혀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주간동아 779호 (p54~55)

파리=백연주 통신원 byj5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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