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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마…말 덫에 걸린 인생 토…토익 올리면 뭐해요 면접 가면 죽고 싶죠

영화 ‘킹스 스피치’와 말더듬이 청년A의 애환

  • 이설 기자 snow@donga.com

마…말 덫에 걸린 인생 토…토익 올리면 뭐해요 면접 가면 죽고 싶죠

마…말 덫에 걸린 인생 토…토익 올리면 뭐해요 면접 가면 죽고 싶죠

언어장애자들은 언어·심리·인지를 재구성해 언어에 대한 부담을 더는 훈련을 한다.

“저…는 오늘 이… 땅과 해외에 있는 국…민에게….”

다소 눌변이었으나 진심이 뚝뚝 묻어났다. 조지 6세의 전시(戰時) 연설에 영국 국민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최근 개봉작 ‘킹스 스피치’는 조지 6세가 언어장애를 극복하는 과정을 그렸다. 말을 심하게 더듬어 학창시절 왕자임에도 ‘왕따’를 당했던 그는 무면허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를 만나며 콤플렉스를 이겨낸다. 이 영화는 2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본상 등 4관왕에 올랐다.

거의 모든 ‘첫 음’이 걸림돌

스크린 밖에도 말 더듬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세계 성인인구 100명 중 1명이 말을 더듬는다. 하지만 그들을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말더듬이’가 되느니 ‘과묵한 사람’을 선택, 할 말을 삼키며 벙어리 인생을 자처하는 이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취재 중 만난 말더듬 환자는 하나같이 “말로 인해 포기당한 삶을 산다”라고 자조했다. 오로지 말이 서툴러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이들의 삶은 어떨까. 26~32세 말더듬 장애자 3명의 이야기를 토대로 가상인물 A씨의 인생을 재구성했다.

초등학교 4학년 국어시간이었던가. 한 사람씩 앞에 나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발표해야 했다. “만득이가 변기에 빠졌는데….” ‘빵’ 터질 줄 알았다. 그러나 회심의 한 방은 맥없이 풀이 꺾였다. 정적 또 정적, 그리고 동시에 날아와 꽂히는 싸한 눈빛들…. 그날 이후 나는 말 더듬는 아이가 됐다. 어쩌면 그 전부터 어버버, 말을 더듬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스스로 말을 심하게 더듬는다고 인지한 시기는 그즈음이었다.



“쿵쾅쿵쾅… 어, 어, 그게….”

말이 두려워지자 모든 게 변했다. 친구들과 곧잘 치고받고 토닥거리던 나는 온데간데없었다. 머릿속에 할 말이 가득해도 그냥 속으로 삼키는 일이 잦아졌다. 답을 알아도 첫 음에서 말문이 막혀 우물쭈물하다가 선생님에게 혼나는 일이 다반사. 친구들은 그런 나를 다소 모자라거나 이상한 아이 취급했다. 성격은 점점 소심해졌다.

내게는 거의 모든 ‘첫 음’이 걸림돌이었다. 쉽게 말해, 입을 떼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나’ ‘너’ ‘미’ 등 자주 쓰거나 쉬운 발음은 ‘스무드’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격’ ‘및’ 등은 블랙홀이었다. 이런 음절은 하늘만큼 긴 시간 동안 꺽꺽거리며 목구멍을 맴돌다, 턱을 당기거나 어깨를 격하게 들썩인 후에야 겨우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자,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따라 하세요. 첫 음이 막힐 때는 발음하기 편한 다른 음으로 대체하는 연습을 하시고요.”

중학교 2학년 즈음. 엄마 손에 이끌려 언어 클리닉에 갔다. 복도에 오가는 사람 모두 나처럼 말을 더듬을까. 쉬 믿어지지 않고, 기분이 묘하고, 얼른 증상을 고치고 싶다는 의욕이 솟구쳤다. 치료는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언어장애는 일부 대학병원이나 언어장애 관련 전공자가 운영하는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방법은 기관마다 제각각이다. 처음 방문한 클리닉에서는 호흡, 발성, 발음 교정 등을 병행했다.

한번은 사람이 빼곡한 지하철역으로 심리 치료를 나갔다. 선생님이 앞장서 지하철에 올랐다. 이제 모르는 수많은 얼굴을 향해 내가 누구인지, 왜 이 자리에 섰는지 크게 외칠 차례였다. “저는….”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긴장이 극에 달하자 목소리가 콱 막혀버렸다. 수업시간에 배운 호흡법으로 가빠진 호흡을 진정시켰다. “자, 박수!” 사람들이 보낸 응원의 박수를 받고서야 겨우 문장을 내뱉는 데 성공. 지하철에서 광장으로…. 3시간을 보내고 나서 귀가하는 길, 빙빙 현기증이 일었다.

공부가 본분인 중·고등학교 6년은 그럭저럭 지나갔다. 긴 이야기 할 상황은 죽어라 피했고, 꼭 해야 할 말은 짤막하게 끝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말 없는 모범생이었다. 가족도 내 상태가 좋아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나는 늘 방어태세였다. 가시를 바짝 세우고 말더듬을 숨기려 기를 썼다.

하지만 대학과 군대를 거치며 증세가 악화됐다. 입시 터널을 지나 자유에 다다랐지만 그것을 누릴 수 없었다. ‘언어 감옥’에 갇혀 여전히 가슴 졸이며 하루를 견뎌야 했다. 노래가 하고 싶어 밴드에 들어갔지만 말문이 막혀 보컬 대신 드럼을 택했고, 동아리 선배들이 중국집 식사 배달을 시켜도 주문할 수가 없었다. 전화로 이야기할 때는 말더듬이 극에 달해서다.

군대는 최악이었다. 클리닉에서 만난 형에게 익히 들어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정확과 신속이 생명인 군대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특히 특정 어휘가 문제였다. 발음이 힘든 단어는 비슷한 뜻의 단어로 바꾸며 말 더듬는 상황을 돌파해왔는데 군대에서는 신고, 보고, 점호 시 정해진 멘트를 속사포처럼 쏘아야 했다.

“말이 조금 불편” 따뜻한 눈길 필요

마…말 덫에 걸린 인생 토…토익 올리면 뭐해요 면접 가면 죽고 싶죠

신 언어임상연구소 성진아 소장이 1대1 상담치료를 하는 모습.

A:“유치원생, 초등학생도 할 말은 다 하잖아요. 그건 인간의 기본적인 능력인데, 다 큰 어른이 그게 안 된다는 게 수치스러워요.”

B:“말더듬을 고치려고 클리닉도 섭렵하고, 혼자 피나는 노력도 했어요. 원인도 치료법도 불분명하지만, 어쨌든 심리적인 원인이 큰 것 같아요.”

C:“맞아요. 그리고 훈련으로 잠깐 증상이 좋아져도 그걸 유지하기가 참 힘들어요. 예컨대 토익은 어느 정도 공부해 점수를 올리면 그 점수가 일정 기간 유지되는데, 이건 조금만 게을리하면 도루묵이에요.”

D:“저는 말더듬을 매일 한 시간씩 운동하지 않으면 죽는 병이라고 생각해요. 말이 조금 유창해지면 희망에 부풀다가 금세 의지가 꺾이기도 하고, 나이 들수록 힘드네요.”

제대 후 말더듬 관련 온라인 카페에 가입했다. 회원들과 온·오프라인에서 고민과 희망을 나눴다. 말 더듬는 정도, 발발 시점, 공포를 느끼는 상황 등은 각양각색이지만, 이구동성으로 이 같은 어려움을 토로했다. 학교에서 동아리에서 수많은 친구를 만났지만 마음에 남은 사람은 드물다. 관계를 유지하려면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해서다. 전화 공포가 심해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

이제 서른, 지금 나는 구직 중이다. 명문대 석사로 서류는 곧잘 통과하지만, 역시 문제는 면접이다. 한번은 사전에 질의응답을 준비해 100번 넘게 외운 뒤 면접을 보러 갔다. 하지만 낯선 상황이 주는 압박감에 혀가 움직이질 않았다. 말은 의사소통의 기본이고, 우리는 말로부터 그 사람을 유추하고 상상한다. 이건 바꿀 수 없는 현실이다. 그 때문에 ‘변할 수 있을까’라고 회의하면서도 ‘녹화’ 버튼을 누르고 말 연습을 한다.

말 더듬는 자가 가장 힘든 건 주변 시선이다. 말이 막혀 정적이 흐르고 회피 행동이 나올 때 내 눈길을 피하는 상대가 가장 큰 상처다. 그 수치를 견딜 수 없어 외톨이로 지내거나 방으로 숨어드는 이도 상당수일 것이다. 안경 쓴 사람을 자연스럽게 대하듯,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좋겠다. “이 친구는 말이 조금 불편하구나” 하는 따뜻한 눈길로 그저 고개 끄덕여주면 좋겠다

도움말:신 언어임상연구소의 성진아 소장, ‘유창성장애’(시그마프레스), ‘Dr. Manning의 유창성장애’(시그마프레스)



주간동아 779호 (p48~49)

이설 기자 s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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