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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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 부메랑 “악, 伊럴 수가”

베를루스코니와 절친 남다른 우호관계가 오히려 독 … 리비아 진출 이탈리아 기업도 손해 불가피

  • 로마=김경해 통신원 kyunghaekim@tiscali.it

    입력2011-03-14 12: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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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카다피는 이제 끝났다”며 오랜 친분관계에 드디어 마침표를 찍었다. 불과 1년 전인 지난해 3월 말 리비아에서 개최된 아랍연맹(Arab League) 총회 때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카다피 손에 입맞춤까지 한 기억을 되살리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 국제무대에서 총리의 튀는 행보에 익숙해진 이탈리아 국민이지만, 이 일만큼은 역겹고 수치스러운 외교였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총리와 카다피의 ‘위험한’ 친분관계가 여론의 도마에 다시 오른 것은 리비아 민주화 시위가 시작된 이후부터다. 총리는 리비아 사태 초기였던 2월 19일 “나의 오랜 친구인 카디피의 신경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러자 뒤늦게 “카다피의 유혈사태 진압을 규탄한다”고 말을 바꿨다. 야당 총수인 민주당의 베르사니 의원은 “총리의 잘못된 처세 때문에 이탈리아가 국제적으로 난감하게 됐다”고 비난했다.

    “총리의 잘못된 처세” 비난여론 고조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카다피는 두터운 친분을 늘 과시했다. 두 사람은 만날 때마다 포옹하고 어깨를 두드리며 절친함을 나타냈고, 그 제스처가 늘 카메라에 잡혔다. 총리는 카다피의 괴팍한 성격을 누그러뜨려 국제사회와 대화를 가능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고 떠벌렸다.

    이탈리아 유력 주간지 ‘레스프레소(L’Espresso)’가 3월 3일자로 단독 보도한 위키리크스 자료에는 “총리와 ‘말 많은’ 북아프리카 독재자들과의 친분관계를 미국 정부가 달갑지 않게 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실제 그는 카다피뿐 아니라 권좌에서 물러난 튀니지의 벤 알리, 이집트 무바라크와도 둘도 없이 친한 사이였다. 이들과의 정상회담에서 오간 말은 베를루스코니 특유의 농담뿐이었다고 한다. 인권이나 민주화 같은 불편한 이슈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는 것. 신중한 대화 역시 극히 개인적인 비즈니스에 한정됐는데 벤 알리와는 튀니지 영화 촬영장과 배급망, 국영 TV 지분 이권 개입에 대해 밀담을 나눴다고 전한다.



    이탈리아와 리비아 양국관계가 급속하게 긴밀해진 건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카다피와 2008년 체결한 이탈리아-리비아 간 우호협정 때문이다. 이 협정 체결 당시 이탈리아는 1911년부터 1942년까지 리비아를 식민지배한 것에서 비롯된 해묵은 응어리를 양국이 청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거액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리비아 식민지배 보상금 명목으로 20년간 50억 달러(36억 유로)를 투자 형식으로 지불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여기엔 1700km의 대규모 해안고속도로와 종합병원 등 각종 인프라 건설도 포함됐다. 반대급부로 리비아 측은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건너가려는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를 통제하기로 했다. 이탈리아는 이를 위해 리비아 경찰에게 맞춤 교육까지 실시했다.

    당시 이탈리아에선 변덕스러운 독재자를 달래려고 일방적인 ‘퍼주기’ 협정을 맺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총리가 카다피의 환심을 구하려 한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원유, 가스 등 자원의 확보와 불법 이민의 통제가 그것. 문제는 총리가 카다피에게 쏟은 정성이 도를 넘어섰다는 데 있다. 2009년 카다피 집권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이탈리아 공군 에어쇼팀을 파견했다. 지난해 8월 말 카다피가 자국 여성경호대를 이끌고 양국 우호협정 2주년 기념식 참석차 로마를 방문했을 당시엔 이탈리아 헌병대인 카라비니에리(carabinieri) 기마단의 대규모 승마 쇼를 벌이기도 했다. 이 자리에는 정부 장관과 이탈리아의 주요 기업가가 대거 참석했다.

    한편 카다피는 이탈리아 여성들을 모아놓고 이슬람 교육을 하는가 하면, 리비아 신여권에 2008년 우호협정 체결 때 양국 정상이 악수하던 사진을 싣는다는 기상천외한 계획을 발표했다. 어디에나 얼굴 내밀기 좋아하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기호를 배려한 셈. 그러자 이탈리아의 유수 언론은 일제히 카다피의 비위를 맞추는 베를루스코니식 정치 코미디라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탈리아가 리비아에 공을 들였던 가장 큰 이유는 석유. 리비아 사태가 커지면서 이탈리아는 상상치 못한 후폭풍을 겪고 있다. 지중해를 통해 시실리로 이어지는 해저 가스관 그린스트림(greenstream)의 가스 공급이 중단됐고, 유조선도 뱃길을 돌렸다. 이탈리아는 리비아에서 매일 2000~2500만㎥의 가스를 수입한다. 이는 국내 총소비량의 12%다. 원유도 전체 소비량의 23.3%를 수입하는 등 리비아와의 에너지 무역 비중이 높아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붕가붕가’ 파티가 최고의 선물?

    전력 생산에 필수인 가스 수입이 1년 정도 중단될 경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력 생산비가 메가와트(MW)당 연간 20유로 정도 인상되면 가구당 전기요금이 최소 8.5% 상승해 서민경제가 파탄 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뿐 아니다. 리비아의 이탈리아 국내 투자도 줄어들고 있다. 리비아 국부펀드와 카다피 가족은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유니크레디트(Unicredit) 지분 7.2%를 갖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우주항공 및 방위산업 기업인 핀메카니카(Finmeccanica) 지분 2%, 프로축구단 유벤투스(Juventus) 지분 7.5%를 소유했다. 이에 대해 안드레아 안넬리 유벤투스 회장은 “리비아 사태가 구단 운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못 박았으며 유니크레디트 은행도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만 밝힌 상태. 그러나 유니크레디트 감독위원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리비아 중앙은행 총재가 현재 행방이 묘연해 은행 측은 난감한 처지다.

    이탈리아 정부의 친(親)카다피 정책은 리비아에 대한 국제적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는 스페인이나 영국과 달리 카다피 일가의 재산을 동결하지 않은 채 국제사회의 눈치만 살핀다.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국내 금융계에 “리비아 투자가 포함된 거래를 피하라”는 지시만 내렸을 뿐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자산 동결 문제에 대해 “리비아의 정부 차원 투자와 카다피 일가 개인 재산을 구분해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조심스러워했다.

    총리가 카다피에게 약속한 아프리카 불법 이민자 문제는 로베르토 마로니 내무장관의 골칫거리로 남게 됐다. 철석같이 믿었던 리비아에 발등만 찍힌 셈. 지중해를 통해 이탈리아로 넘어오려는 이집트, 튀니지, 리비아 난민은 앞으로 최소 5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난민 처리 문제는 이탈리아와 다른 유럽 국가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안으로, 이탈리아는 지중해가 유럽연합 공동 국경이라 주장하면서 유럽연합이 강 건너 불구경만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분명한 사실은 두 나라의 친분관계가 이제는 부메랑이 돼 이탈리아를 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베를루스코니의 자랑거리였던 양국 우호협정은 ‘막장’으로 치닫고 있다. 리비아에 진출한 이탈리아 기업들은 손해를 어디 가서 호소할 수 있을지 당황스러운 처지. 우정이 막을 내리는 지금, 이탈리아에선 카다피가 총리에게 보낸 최고 선물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붕가붕가’ 파티가 바로 그것. 최근 이 말만 나오면 이탈리아인은 한숨을 내쉰다. 미성년 성매매 의혹으로 4월 6일 재판에 회부된 베를루스코니 총리에 대한 국내 언론의 호기심이 급증하면서 이미 ‘붕가붕가’는 외신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10여 명의 젊은 여성과 즐기는 파티를 총리는 ‘붕가붕가’라고 부르는데, 그 유래가 카다피의 파티 이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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