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8

2011.03.14

‘쉐보레’ 브랜드 한국에서 通할까?

한국지엠 ‘대우’ 떼고 ‘쉐보레’로 변경 … 품질 개선으로 부정적 이미지 뛰어넘기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www.facebook.com/scud2007

    입력2011-03-14 11: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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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쉐보레’ 브랜드 한국에서 通할까?

    쉐보레 카마로

    색다른 디자인의 신차를 바라보며 “놀랍다”고 소리 지르는 남녀. 뒤이어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차를 장난감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카피가 흘러나온다. “진짜 자동차가 뭔지 알아?”란 도발적인 질문에 ‘쉐보레(Chevrolet)’를 외치는 여성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깔린다. 요즘 부쩍 TV에서 쉐보레를 알리는 광고가 많아졌다. 시리즈별로 독창적인 광고가 이어져 나오며 시청자의 눈길을 잡아끈다. 제너럴 모터스(이하 지엠)가 국내 시장에 독자 브랜드를 내걸고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지엠대우’는 3월 1일 사명을 ‘한국지엠’으로 공식 변경하고, 지엠의 글로벌 브랜드인 ‘쉐보레’를 회사의 대표 브랜드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로써 30년간 사용했던 대우자동차 브랜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명에서 대우를 떼느냐 마느냐는 2002년 지엠이 대우차를 인수하면서부터 했던 오랜 고민이다.

    지엠대우란 이름에서 보듯, 지엠대우는 인수합병(M·A)을 통해 지엠과 대우차의 장점이 합쳐지길 원했지만 각 사의 단점이 더 부각되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 대우차는 연식이 오래될수록 연비가 급속히 떨어져 소비자 사이에서 ‘기름 먹는 괴물’이란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차가 무거운 데다 소음마저 커서 소비자의 원성이 자자했다. 그러다 보니 중고차 가격도 현대·기아차 등보다 20~30% 낮았다. 오죽했으면 “중고로 팔려거든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현대차를, 살려거든 낮은 가격인 대우차를 선택하라”는 말이 떠돌았을까.

    30년간 사용한 ‘대우’ 역사 속으로

    지엠은 글로벌 자동차회사라곤 하지만 ‘덩치만 크고, 기름을 많이 먹고, 투박한 아메리칸 스타일의 차를 만드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해 국내 소비자에겐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더욱이 지엠대우 인수 이후 소비자의 시선을 확 잡아끌 제품을 내놓지 못하면서 점차 소비자에게 외면을 당하더니 시장점유율마저 르노삼성에 추월당했다. 전직 지엠대우 고위 임원은 “지엠이 대우를 인수한 이후 국내 시장에 한 게 거의 없다. 제대로 된 신제품도 개발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린 것도 아니다. 시장점유율 하락은 당연한 결과였다”고 지적했다.



    고착화된 판을 뒤집기 위해 지엠은 브랜드 변경이란 강수를 택했다. 쉐보레라는 글로벌 브랜드를 앞세워 내수판매를 두 자릿수대로 높인다는 전략이다. 인지도가 높은 쉐보레 엠블럼을 일정한 시장점유율을 지닌 한국지엠의 모든 차량에 달면, 이들 차량이 전국을 누비면서 자연스레 쉐보레의 우수한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쉐보레 브랜드 도입을 결정하기 전까지 수많은 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국내 소비자가 쉐보레 브랜드를 선호한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쉐보레’ 브랜드 한국에서 通할까?

    GM대우는 브랜드를 쉐보레로 전면 변경하면서 경쟁력 있는 품질확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2011년 한 해 신차 8종을 선보이며 공격적인 마케팅을 할 준비를 마쳤다. 쉐보레 올란도(위)와 아베오.

    사명 변경을 전후로 한국지엠은 대대적인 쉐보레 알리기에 나섰다. 먼저 쉐보레 고객을 대상으로 △ 3년 무상점검 및 소모품 교환 서비스 △5년 또는 10만km 보증수리기간 연장 △ 7년 무상 긴급출동 서비스가 포함된 ‘셰비 케어(Chevy Care)’란 파격적인 서비스를 내놓았다. 특히 여성 고객의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에 주목, 여성을 위한 마케팅을 강화해 여성이 쉐보레의 실질적 고객이 되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사명 변경에 대한 내부의 반발과 국내 소비자의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을 덜어내는 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신차 개발과 시설 확충을 포함한 마케팅 비용에 1조6000억 원을 배정하고, 향후 3년간 동일 금액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밝힌 것도 단순한 수입차 업체가 아닌 한국경제에 기여하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으로 풀이된다. 2월 9일 열린 올란도 신차 발표회에서 마이크 아카몬 한국지엠 사장이 “쉐보레는 한국이다(Chevrolet is Korea)”라고 강조한 것 역시 국내 소비자의 정서를 고려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하지만 브랜드를 바꾸는 것만으로 과연 기대만큼 내수시장 확대에 성공할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자동차는 품질과 기술력이 핵심인 까닭에 단지 브랜드를 바꿔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현대·기아차그룹 역시 같은 이유로 한국지엠의 공세에 크게 괘의치 않는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오히려 지금보다 지엠이 처음 대우차를 인수할 때가 더 마케팅이 거셌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브랜드보다는 결국 품질이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한국지엠은 2009년 10월 마이크 아카몬 사장 취임 이후 품질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고 반박했다. 또한 자동차업계에선 유례없이 1년간 8종의 신차를 내놓겠다고 밝혀 그동안 제대로 된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는 주변의 평가를 무색게 했다. 만에 하나 품질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전국 10개소의 직영 정비사업소와 500여 개에 이르는 정비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쉐보레 신제품뿐 아니라 차명을 쉐보레로 바꾼 제품들도 차체안전성, 주행안전성 및 디자인 측면에서 결코 경쟁력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지엠대우는 2011년 한 해 동안 국내에 8종의 쉐보레 신차를 선보이기에 앞서 2010년 내내 신차 초기 품질 확보에 노력을 쏟았다. 3월에 출시한 ‘쉐보레 올란도’와 ‘쉐보레 카마로’, 상반기 출시 예정인 신형 SUV ‘쉐보레 캡티바’와 ‘쉐보레 크루즈 해치백’은 과거 연비가 낮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엠대우의 이미지를 상당 부분 개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컨대 쉐보레 올란도는 고효율 2000cc급 첨단 가변 터보차저 커먼레일 디젤(VCDi)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 163마력(3800rpm), 최대토크 36.7kg·m(1750~2750rpm)를 자랑한다. 연비도 6단 수동변속기 차량의 경우 17.4km/ℓ, 6단 자동변속기는 14.0km/ℓ에 달해 ‘기름 먹는 괴물’이란 별명이 무색할 지경이다.

    생산은 한국에서 브랜드는 수입

    물론 쉐보레 아베오처럼 여전히 경쟁 차에 밀리는 차량도 있다. 1600cc DOHC 엔진을 장착한 아베오는 최고출력 114마력(6000rpm), 최대토크 15.1kg·m(4000rpm)의 힘을 발휘하며 수동은 17.3km/ℓ, 자동은 14.8km/ℓ의 연비 성능을 보여주지만 동급 차종인 현대차 엑센트에 비해선 엔진과 연비 성능이 떨어지는 편이다. 더욱이 엑센트의 공차 중량이 1085kg인 것과 비교해 아베오는 100kg 정도 더 무겁다.

    한국지엠이 전열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국내 시장 공략을 선언하면서 ‘생산은 한국에서 브랜드는 수입하는’ 시대가 열렸다. 국산과 수입산의 경계가 모호해질 수밖에 없게 되면서 국적보다는 브랜드 자체의 품질로 승부하는 브랜드 경쟁시대가 막이 올랐다. 쉐보레를 앞세운 한국지엠의 성공 여부는 올해 자동차 시장에서 주목해야 할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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