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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으로 들어온 한 권

큰일이다, 책을 덮을 수가 없다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큰일이다, 책을 덮을 수가 없다

큰일이다, 책을 덮을 수가 없다

톰 라비 지음/ 김영선 옮김/ 돌베개/ 311쪽/ 1만4000원

중독에는 도박 중독, 게임 중독만 있는 게 아니다. 책 중독도 있다. 책은 읽을수록 좋은 것 아니냐고? 기자 겸 저술가인 톰 라비의 ‘어느 책 중독자의 고백’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자 책 중독에 대한 보고서다. 스스로를 ‘책 중독자’로 진단한 저자는 책 중독자의 심리와 행태를 그리는 동시에 독서문화, 출판산업 전반을 유머러스하게 짚어나간다. 그는 실제 대단한 책 중독자이자 수집광으로, 집 안 곳곳에 쌓인 책 더미가 불안과 밀실공포증을 안겨줄 정도였다고 한다.

이 책은 책 중독의 다양한 증상을 살펴본 뒤 책의 역사, 장서광과 애서가, 책 도취증 등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식당, 화장실, 잠자리 등에서 책 읽는 법, 책 정리와 보관 요령, 빌려준 책 꼭 돌려받는 법 등 유용한 팁도 담았다. 특히 3장의 ‘책 중독자 테스트’는 눈여겨봐야 할 대목. “일을 마치고 책방에 갔다가 밤늦게 집에 와서는 배우자에게 술집에 갔었다며 거짓말을 한 적이 있다” “텔레비전을 볼 때면 더디게 진행되는 부분과 광고를 틈타 읽을 책을 항상 무릎에 둔다” “읽은 책들 가운데서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 스무 권을 어렵지 않게 꼽을 수 있다” 등 25가지 질문에 ‘예’ ‘아니오’로 답한 뒤 ‘예’의 개수를 세어 중독 정도를 판별한다. 위 3문항에 모두 예라고 답했다고 책 중독자는 아니다. 책 중독 ‘종결자’라면 아래 언급한 인물들 정도는 돼야 한다.

일기작가인 샘 피프스는 “끝장이다. 눈이 아주 나빠지고 있는데, 도대체 책 읽기를 끊는 방법을 모르겠다”라고 쓴 뒤 14개월 후 장님이 됐고, 영국의 문인 에드먼드 고스는 태어나 처음 한 말이 ‘아빠’나 ‘엄마’가 아닌 책이었다 한다. 심지어 비행기에 탄 한 책 중독자는 비행기 엔진에 불이 붙어 비상착륙을 준비하는 와중에도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죽기 전에 읽고 싶어 100쪽 분량을 황급히 읽어나갔다고 한다.

이 책의 한국판 번역본은 실제 책 중독자들이 모여 만들었다. 저자 톰 라비를 비롯해 옮긴이 김영선 씨는 “뒷방에 숨어들어 책이나 읽으며 살아버릴 테다”라는 치유 불능의 책 중독증 환자 같은 생각을 품었다가 다행히 출판기획 및 번역일을 하고 있다. ‘책 중독자의 뇌구조도’ 등 유쾌한 그림으로 독자를 즐겁게 한 현태준 씨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수천 권의 재미난 책을 모은 ‘책 수집광’이다. 환상의 드림팀이 따로 없다. 저자가 이런저런 얘기 끝에 내놓는 결론은 이렇다.

“이 모든 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단 하나다. 걱정 말고 즐겨라. 책을 많이 사들여라. 그래서 심한 곤경에 빠져 다시는 책을 사고 싶지 않을 때까지.”



책 중독자는 책 앞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책 중독자를 동경하거나 자신의 중독이 아직 경증임에 안도하거나, 읽지 않은 책이 산더미란 사실에 조바심 내다 마지막 장을 덮을 것이다.



주간동아 2011.02.28 776호 (p84~84)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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