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5

2011.02.21

‘배보다 배꼽’ 큰 아동출판시장

  •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장 khhan21@hanmail.net

    입력2011-02-21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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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출판시장의 ‘블루오션’은 아동출판이었다. 경박단소한 책들이 서점의 서가를 뒤덮는 현실에서 부모가 된 386세대가 자녀들에게 좋은 책을 골라 읽히려는 열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비전이 있는, 수준 높은 기획서의 안정적인 판매가 가능해졌다는 것도 한 이유가 됐다. 물론 여기에는 저작권 확립이라는 변수도 작용했다.

    유명한 출판사치고 아동출판물을 펴내지 않는 곳이 없지만 작금의 현실은 예전만 못하다. 많은 출판사가 아동출판물을 계륵처럼 여기는 형편이 된 것이다. 소비자의 눈이 높아진 탓에 우리 아동출판의 수준은 책을 잘 만들지 않으면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한국의 그림책 작가들은 세계적인 상을 해마다 받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책을 읽히려는 열기와 관계없이 아동출판시장은 저절로 축소되는 실정이다. 2000년에 1138만3000명이던 학령인구(6~21세)는 2010년 990만1000명으로 줄었다.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시장이 이렇게 줄어들자 출판사는 B2B(기업 간 거래)로 위기를 돌파하고자 했다. 창작동화, 그림책, 논픽션으로 삼분되는 아동출판시장에서 창작동화나 그림책은 교사나 독서운동가들이 추천한 스테디셀러만 대대적으로 팔리는 시장으로 바뀌었다. 그 바람에 제작비가 크게 증가한 신간의 론칭은 어려워졌지만 양서를 보유한 출판사들은 그런대로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었다. 때마침 학교도서관 5개년 리모델링 사업이 진척된 덕분에 기관 구매가 크게 늘어 일부 출판사는 재미를 톡톡히 봤다.

    그러나 최근 B2B 시장마저 성적지상주의 교육정책과 온라인 서점들의 스테디셀러 반값 할인으로 처절히 붕괴되는 형국이다. 특히 과도한 할인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다. 출판사는 1만 원 정가의 책을 도매상에는 6000원에, 온라인 서점에는 4000원에 공급하고 도매상은 오프라인 소매서점에 7000원에 넘긴다. 온라인 서점은 이 책을 5000원에 판매한다. 그런데 이 책의 주요 구매자는 소매서점이다. 소매서점이 온라인 서점에서 5000원에 책을 구입해 독자에게 팔다가 팔리지 않으면 도매상에 7000원에 반품한다. 도매상은 출판사에 6000원에 다시 반품한다. 이 과정에서 도매상은 1000원, 출판사는 2000원의 손실이 생기지만 서점은 반품만 해도 2000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이 바람에 도매상들은 반품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출판업계는 온라인 서점들과 구간도서의 할인을 30% 이하로 묶는 사회적 협약을 맺기로 했다. 이 협약은 네이버 같은 큰 기업이 오픈마켓에 진출해 과도한 할인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는 것을 봉쇄하고자 한 온라인 서점들의 장단에 출판업계가 놀아나 체결된 것이지만, 유통의 무질서를 막아보려는 출판사들의 꼼수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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