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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갈겠다”… 대호 본색

롯데 이대호 연봉 조정서 패배 … 이길 수 있는 싸움으로 또 다른 도전

“칼 갈겠다”… 대호 본색

“칼 갈겠다”… 대호 본색
“이번만은 다를 것이다. 믿어보겠다.”

2010시즌 연봉 3억9000만 원을 받았던 이대호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타격 7관왕이란 위업을 달성했고, 세계 야구사를 바꾼 9연속경기 홈런 신기록도 작성했다. 비록 팀은 3년 연속 준플레이오프 탈락에 그쳤지만 그의 기록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상징성과 의미를 지녔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연봉조정을 신청했던 롯데 이대호(29)지만 결국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1월 20일 조정위원회 발표가 나온 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의 연봉조정에서 선수가 1승18패, 절대 불리했던 결과를 잘 알고 있었다. 주변에서 불리하다고 얘기할 때, 나는 사람들에게 ‘한국 야구도 이제는 많이 발전했으니 한번 믿어보자’고 했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나는 패했다. 이제 연봉에 관한 한 한국프로야구 발전은 더는 없을 것이다.”

7억 원 vs 6억3000만 원

최근 수년간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그가 처음으로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절대기록’에 대한 자신감 덕분이었다. 여기에 올 시즌을 마치면 9년을 꽉 채워 ‘완전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게 된다는 배경도 한몫했다. “선수로서 이제 내 목소리를 낼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고 한 것도 그래서였다.



구단과의 연봉 협상을 앞둔 이대호의 가슴속에는 ‘7’이란 숫자가 일찌감치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요구한 7억 원은 2010시즌, 리그 최고였던 두산 김동주의 연봉이었다. 김동주는 FA 권리 행사 후 받은 연봉이었지만, 이대호는 ‘한국 대표선수’로서 자신이 이제 7억 원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올랐다고 판단했다. 세 차례 구단과의 협상에서도 이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 구단은 FA가 아닌 9년 차의 역대 최고 연봉인 2003년 이승엽(당시 삼성)의 6억3000만 원을 기준점으로 제시했다.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FA 권리 행사를 앞두고 있었던 이승엽은 2002년 4억2000만 원에서 이듬해 2억1000만 원이 오른 6억3000만 원을 받았다. “이제 이대호를 이승엽과 같은 국민타자 대열에 올리고 싶다”고 밝힌 롯데 구단은 “2억1000만 원이 올라 6억3000만 원을 받은 이승엽과 달리, 이대호가 2억4000만원이 올라 6억3000만 원을 받게 된다면 이대호는 인상폭과 인상률에서도 이승엽보다 앞서게 된다”며 ‘8년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선수 의견을 반박했다.

1월 10일 연봉조정 신청 마감을 몇 분 안 남긴 채 구단 사무실에서 열린 3차 최종 협상. 구단은 최후 조건으로 ‘그럼 6억5000만 원을 준다면 사인할 것이냐’며 2000만 원을 올려 제안했지만 이대호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처음부터 7억 원 밑에서는 사인을 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1월 20일 서울 도곡동 야구회관에서 열린 연봉조정위원회. 이상일 KBO 사무총장을 비롯해 최원현 KBO 고문변호사, 김소식 전 대한야구협회 부회장, 김종 야구발전연구원장, 야구해설가 박노준 씨로 구성된 5명의 조정위원회는 구단과 선수 측이 제출한 근거 자료를 검토한 뒤 이대호의 요구액이 아닌 구단 제시액(6억3000만 원)을 선택했다.

겉으로 드러난 발표만 놓고 봤을 때 롯데가 구단안을 관철할 수 있었던 결정적 사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5인의 조정위원은 구단이 제출한 고과 평점을 가장 객관성 있는 자료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를 뒤엎을 만한 그 이상의 설득력 있는 자료를 이대호나 그를 지원한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는 내놓지 못했다. 둘째, 롯데 여타 선수와의 형평성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롯데는 승리 공헌도를 선수별 퍼센티지로 나타낸 자료를 제출했는데 아무리 이대호가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하더라도 홍성흔, 조성환 등 다른 주요 선수와 공헌도를 나눠가져야 하는 현실에서 이대호만 그 이상의 대우를 해주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회의 시간은 예상보다 훨씬 긴 4시간 20분을 훌쩍 넘겼다. 조정위원들 사이에서 “이대호가 7억 원 연봉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데 공감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조정위원 대부분의 감성적 지지를 끌어냈음에도 이대호가 패배한 데에도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구단에 비해 미비한 자료 때문이다. 조정위원들조차 “안타깝다”고 했다. 감성적으로는 7억 원을 받을 만하다고 느끼지만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근거가 미흡했던 것. 둘째, 조정위원들이 타 구단과의 연봉 비교 자료를 인정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연봉고과 시스템은 구단마다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던 것이다.

내가 져서 후배들에게 미안

“칼 갈겠다”… 대호 본색

이대호는 법적 대응을 하자는 선수협의 제안도 거절했다. 선수협 회의 모습.

조정위원들은 마지막까지 만장일치에 이르지 못했다. 3대 2로 팽팽히 맞섰고,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롯데의 손을 들었다. 조정위원회 면면을 보면 KBO 측 인사 2명(이상일 총장, 최원현 변호사)에 야구계 외부 인사 3명으로 구성돼 있다. 선수협이 “조정위원 자체의 공정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일견 타당성이 있다. 메이저리그 연봉조정위원회의 경우,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가 합의한 법조인 3명이 조정위원을 맡는다. 한국은 조정위원 선정에서부터 선수 측 목소리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조정위원회는 공식발표에서 “선수협 측이 내놓은 근거 자료가 너무 빈약했다”며 구단 손을 들어준 것으로 입을 맞췄다. 하지만 자료가 부실하기는 롯데가 제출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적으로 롯데 자료가 선수협이 이대호를 대신해 내놓은 자료보다 나았을 뿐이다. 조정위원회에 참가했던 A씨는 “자료 자체만으로 보면 회의가 5분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선수협 자료의 부실함을 지적하면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결과적으로 5명 조정위원의 결정은 자료가 아닌 개인 성향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양측이 제출한 자료는 그야말로 ‘참고 자료’에 지나지 않았을 뿐, 이미 각 조정위원은 자신의 판단이 선 뒤 회의에 임했던 것이다. KBO로부터 결과를 통보받은 이대호는 “연봉에 관한 한 한국프로야구 발전은 더는 없을 것이다”며 “이번 결과는 연봉조정제도가 필요 없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내가 졌는데, 이제 어느 후배가 연봉조정을 신청할 수 있겠느냐. 후배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약속한 대로 ‘결과는 받아들이겠다’는 뜻도 명확히 밝혔다. 이번 결정에 대한 무효확인 소송과 손해배상 등 자신을 앞세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선수협의 제안도 거절했다. 이대호는 이번 조정위원회 결과에 대해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단정지었다. “난 패배자지만 더 칼을 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2006년의 일을 떠올렸다. 타격 4관왕을 달성하고도 MVP를 차지하지 못했던 2006년, 그는 자신의 기록을 저평가하는 주위 시선에 ‘칼을 갈았고’, 마침내 4년 후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바꾸며 MVP를 손에 넣었다. 이대호는 “이번엔 내가 졌지만 MVP를 했던 것처럼 스스로 칼을 갈고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다.



주간동아 2011.01.31 773호 (p98~99)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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