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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남도길 대장정 희망을 걷다 06

竹이는 사연 … 이국적 분위기 … 시간이 날 껴안아주더라

전남 담양 죽녹원 ~ 메타세쿼이아길

竹이는 사연 … 이국적 분위기 … 시간이 날 껴안아주더라

竹이는 사연 … 이국적 분위기 … 시간이 날 껴안아주더라
이 추운 겨울에도 나무들은 꺾이지 않았다. 대나무, 전나무, 메타세쿼이아 모두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찾았다. 줄기가 얇은 대나무는 이리저리 바람에 휘날리며 잎에 쌓인 눈을 툭 털어냈다. 기둥이 두꺼운 전나무는 성가신 잎을 벗고 묵묵히 비바람을 견뎠다. 가을 내내 오묘한 색을 뽐내던, 이름부터 생경한 메타세쿼이아는 겸손하게 몸을 숨겼다.

눈 내린 전남 담양군 죽녹원~메타세쿼이아길 일대를 걸으며 새삼 다짐했다. 새해에는 나무처럼 살아야겠다고. 휘날리고 잎을 빼앗기고 색을 잃어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며 말이다.

며칠째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이던 1월 넷째 주, 서울을 출발할 때는 내복에 점퍼까지 껴입어도 오들오들했는데, 남쪽으로 갈수록 창밖으로 스미는 조각볕이 따스했다. 담양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 하나는 편리한 교통에 있다. 서울에서 출발한다면 용산역에서 광주역까지 KTX를 이용한 뒤 시내버스로 30분 정도만 가면 담양이다. 용산역에서 광주역까지 KTX로 3시간 남짓.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창밖의 눈 쌓인 산천을 구경하다 보면 금방이다.

담양 가는 버스를 타려면 ‘중흥사거리’ 방면 뒷문으로 나가야 한다.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다. 10분에 한 대씩 다니는 311번 버스를 타면 30분 안에 담양 죽녹원에 도착한다. 죽녹원까지 요금은 2200원. 이동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다르므로 탑승 전 기사에게 행선지를 말해야 한다. 번번이 대답해야 하는 기사가 안 됐는지, 맨 앞에 앉은 아주머니가 대신 얼마라고 말해준다. 구수한 사투리를 흘려들으며 꾸벅꾸벅 졸다 보니 버스는 어느새 죽녹원에 도착했다.

관방제림 위에 가득 찬 침엽수



쭉 뻗은 대나무 덕에 눈이 시원했다. 죽녹원은 2003년 5월 조성된 대나무숲으로 16만㎡에 걸쳐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운수대통길, 죽마고우길, 철학자의 길 등 8가지 주제의 길로 구성돼 이름 따라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천히 걸어도 4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어 완주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다. 길이 평탄한 데다 빙판도 없어 설설 걷기 좋다.

사각사각? 살랑살랑? 아니면 소곳소곳? 대나무가 흔들리며 잎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를 어떻게 글로 옮길 수 있을까? 귓가를 간질이듯 손짓하는 소리에 멍하니 귀를 기울였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면 그만큼 마음이 더 넓어지는 듯했다. 사람 다니는 길은 눈이 이미 다 녹았지만 나무 우거진 길에는 여전히 한 뼘 넘게 쌓였다. 길에서 조금 벗어나 눈 쌓인 곳을 아이들처럼 발길로 툭툭 찼다.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흰 눈이 스르르 바스라졌다.

여기서 질문 하나. 좋은 풍경 사진을 찍기 위해 가져야 할 습관은? 바로 ‘뒤돌아보기’다. 앞서서 보는 길도 ‘억’ 소리 나게 좋지만, 문득 뒤돌아보면 미처 보지 못한 비경(秘境)이 펼쳐진다. 특히 그 진리가 통하는 곳이 바로 대나무숲이다.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대나무의 앞모습도 아름답지만, 그림자가 져서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뒷모습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다.

대나무숲 산책을 뒤로하고, 이제 추위에 정면으로 맞선 용감한 나무들을 만나러 갈 차례다. 정문으로 나와서 오른쪽 다리를 건너면 ‘관방제림(官防堤林)’이란 돌 표식을 만날 수 있다. ‘관방제’란 담양천 변의 제방이다. 즉 관방제림이란 관방제 위에 이뤄진 숲을 뜻하는 것.

담양천 때문에 이 일대는 상시 침수(沈水) 지역이었다. 조선 인조 26년, 홍수를 막기 위해 담양천 중간에 제방을 짓고 나무 700여 그루를 심었다. 느티나무, 푸조나무, 팽이나무, 벚나무 등 관방제에 자리 잡은 나무는 모두 거센 강바람, 바닷바람을 잘 견디는 종류다. 1.2㎞에 걸쳐 이어지는 이 길은 수령 몇백 년의 나무들이 신묘한 기운을 뿜으며 장관을 이루는 까닭에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됐다.

그토록 물이 많았다는 담양천. 지금은 물이 말랐다. 길 초반에는 여전히 내천이 남아 있지만 예전의 위엄은 찾아볼 수 없게 얕고, 그마저 추운 날씨 탓에 꽁꽁 얼어붙었다. 그 위에는 눈이 소복하게 쌓였고 햇빛이 눈 위에 다가와서 반짝반짝 빛났다. “눈 때문에 눈이 시리다”는 말은 바로 이럴 때 하는 말이 아닌가 싶었다.

길 사이사이에 평상과 벤치가 많다. 지금이야 추워서 엉덩이도 못 대지만 여름의 이곳 모습이 훤히 보이는 듯싶었다. 동네 주민들이 모여 앉아 수박을 나눠 먹고, 길 가는 사람에게 “막걸리 한잔으로 목 좀 축이시라”며 주저앉힐 모습이.

길을 따라 30분가량 걸었을까, ‘메타세쿼이아길 가는 길’이란 표지판이 보였다. 다시 길 따라 가니 저 멀리 4차선 도로 곁으로 나란히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나타났다. 갈래 길이 나왔을 때 왼쪽 흙길로 가지 말고 직진해서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러면 눈앞에 메타세쿼이아길이 펼쳐진다.

메타세쿼이아, 이국적인 발음 덕에 은은한 분위기가 풍긴다. 메타세쿼이아는 중국을 원산지로 하는 낙엽 침엽수다. 기둥은 높고 가지는 양옆으로 퍼지며, 앙상한 가지를 덮은 잎은 회색빛을 띤 갈색이다. 봄, 여름에는 푸른 침엽수지만 가을에는 붉은 단풍이 든다. 겨울에는 잎의 회색빛이 더 강해지다 2월경 아카시아처럼 수술이 늘어진 꽃이 핀다.

竹이는 사연 … 이국적 분위기 … 시간이 날 껴안아주더라

메타세쿼이아길을 걷는 연인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떡갈비

2006년 개봉한 영화 ‘가을로’에서 얽히고설킨 인연으로 서로를 바라보던 남녀가 마침내 사랑을 결심하는 마지막 장면의 배경이 바로 이 메타세쿼이아길이다. 연한 갈색 잎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따뜻하고 다정하다. 가을 내내 화려하게 빛나던 메타세쿼이아. 하얀 눈과 강한 바람이 휩쓸고 간 그 길은 화려한 색을 잃었지만, 가을엔 볼 수 없었던 묵묵함이 강렬하다.

이 길을 걷는 데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언제든 다시 길을 돌려도 되고, 다시 한 번 뒤돌아 걸어도 좋다. 천천히 손끝에서 시간이 빠져나가는 것을 즐기며 걷다 보면 문득 겨울이 가슴속에 내려앉는다.

길 초입에는 작은 점포가 있다. 주인은 불쑥 문을 열고 아무것도 사지 않은 채 버스 시간을 물어도, 마치 자기 일처럼 나와서 설명해줬다. 자전거를 빌릴 수도 있고 율무차, 대잎차 등 꽁꽁 언 몸을 녹일 차 한잔 청해 마실 수도 있다.

좋은 길, 좋은 벗까지 있다면 그다음 필요한 것은 좋은 음식이다. 담양에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은 떡갈비와 대통밥. 담양의 명물을 맛보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 죽녹원 입구로 가야 한다. 많이 지친 상태라면 담양 어디든 5분 안에 달려오는 담양콜택시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메타세쿼이아길에서 죽녹원 입구까지 요금은 4000원 내외. 죽녹원 입구 가득 들어선 떡갈비 식당 중 ‘죽녹원 첫집’이라는 식당을 선택했다. 대향 가득한 대통밥(1인분 1만 원)도 일품이지만,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자란 한우로 만든 떡갈비(1인분 2만 원)는 입 안에서 사르르 녹았다. 남도답게 상 위에 빈 곳을 찾을 수 없게 가득 들어찬 밑반찬도 일품이었다. 간고등어 한 입 먹고, 회무침 한 젓가락 먹고 마무리는 시원한 꽃게된장찌개로. 담양 주변의 대통밥 식당은 밥을 담았던 대통을 재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먹은 대통은 들고 와 그릇, 연필꽂이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6시간 동안의 호사(好事)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문득 신석정의 ‘대숲에 서서’란 시가 떠올랐다. 시인이 본 대숲은 “자욱한 밤안개에 벌레 소리 젖어 흐르고, 벌레 소리에 푸른 달빛이 배어 흐르는” 곳이었다. 어떠한 족집게 과외 없이도 시인의 마음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마지막 문장마저도 완전히 동감이었다.

“꽃가루 날리듯 흥근히 드는 달빛에, 기척 없이 서서 나도 대같이 살거나.”

竹이는 사연 … 이국적 분위기 … 시간이 날 껴안아주더라
[ Basic info. ]

☞ 교통편

승용차 | 호남고속도로 백양사IC에서 담양 방면으로. 광주지방법원 담양군법원에서 전남도립대학 방향

대중교통 | 서울 용산역에서 광주역까지 KTX(하루 7회), 광주역에서 311번 버스 탑승 후 죽녹원 하차

문의 | 죽녹원 061-380-3244



주간동아 2011.01.31 773호 (p38~40)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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