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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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산 청정국 무너지면 한우산업도 끝장납니다”

전국한우협회 남호경 회장 “구제역 백신 접종 통탄스럽고 비애 느껴”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11-01-17 09: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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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재앙이다. 전 국토가 소와 돼지의 무덤으로 변하고 있다.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이 해가 바뀐 지금까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퍼지고 있다. 연일 수백, 수천 마리의 소와 돼지가 살(殺)처분되고, 구제역 백신은 거의 동이 난 상태다. 정부는 1월 11일 현재까지 140여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하거나 매몰했다. 이 가운데 소는 약 11만 마리에 이른다.

    초기 대응엔 두고두고 아쉬움 남아

    “축산 청정국 무너지면 한우산업도 끝장납니다”
    전국한우협회 남호경(62) 회장은 “축산업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 회장도 축산농민이다. 1973년 영남대 축산학과를 졸업하고 1975년 군대를 다녀온 이후 지금까지 30여 년간 직접 소를 키우고 있다. 현재 키우는 소는 200두 정도. 경북 경주 외동읍에 축사가 있다. 구제역으로 외부인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지금, 남 회장은 거의 한 달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대신 전국 곳곳에서 걸려오는 한우농민들의 하소연을 들으랴, 구제역 확산방지 대책을 마련하랴 연일 야근이다. 11일 오전 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남 회장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 최악의 구제역 사태가 발생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구제역은 상존해 있는 위험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물론 아시아권에서 구제역 청정국가를 목표로 삼은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중국이나 베트남, 몽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에서는 구제역 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 지역과 물류거래가 많아지고, 여행자가 급증하면서 국내로 전염될 위험이 높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국경 검역에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인 것 같다. 또 정부가 제대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문제다. 2002년 대규모 구제역 파동이 발생한 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때에 비해 지금은 물류나 자동차 이동규모가 10배 이상 늘어났다. 하지만 대응 매뉴얼은 그대로다. 이 때문에 축산업이 초토화할 정도로 피해가 커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 정부의 초기 대응에 어떤 문제가 있었나.

    “정부나 우리나 이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당할 줄은 몰랐다. 지난 10년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고 겨울철에 나타난 적도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한 번도 구제역이 발생한 적 없는 안동에서부터 구제역이 퍼지리라고는 예상하기 힘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초기 대응만 잘했으면 지금쯤 해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처음 안동에서 신고가 들어온 이후 확진될 때까지 10일 가까이 방치한 게 가장 큰 실수였다. 중앙정부에서 일사불란하게 대책을 세우던 과거와는 달리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시·군별로 구제역 방역이나 의식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나는 것도 초기 진압에 걸림돌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 검역에 대한 축산농가들의 인식 부족이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그것도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축산농민의 수준에 맞춰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예를 들어 정부는 축산농민들이 불편을 겪더라도 국경 검역을 강화해야 했다. 지금처럼 축산농민에게 호소하는 캠페인 수준으로는 질병을 막지 못한다. 축산농가들 스스로 법이나 제도를 만들 수는 없다.”

    ▼ 정부의 구제역 백신접종 초기에 반대하는 축산농가가 적지 않았다. 이유가 뭔가.

    “정부가 백신접종을 결정했을 때 정말 허탈했다. 통탄스럽기도 하고 비애도 느꼈다. 우리나라가 다시 축산 청정국이 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수십 년을 축산업에 몸 바친 사람으로서 축산업, 특히 한우산업이 이제 끝나는 게 아니냐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든다. 외국의 예를 보면 수십, 수백만 마리를 살처분하면서 청정국을 유지한 나라가 있는 반면, 살처분 대신 백신을 선택한 중국은 구제역이 발생하기만 하면 백신을 주사한다. 결국 중국은 구제역 상시발생국으로 남아 있다. 우리나라 주변 상황을 보면 구제역은 몇 년에 한 번씩 발생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축산농가들이 2~3년 동안 어렵게 청정화를 이뤄놓더라도 구제역이 발생하면 방역당국은 다시 백신접종을 할 소지가 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청정국가의 지위는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는 백신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 협회 차원에선 어떤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가.

    “백신접종으로 인해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에 대해서 불이익을 당하는 농가가 없도록 정책당국과 협의하며 필요한 지침을 만들고 있다. 설날을 앞두고 한우고기 수급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당면한 과제다. 한 해 도축량의 4분의 1 정도가 설날을 앞두고 도축되는데 일부 도축장마저 출입이 통제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최대한 원활한 수급을 위해 대책을 숙의 중이다.”

    ▼ 살처분하거나 매몰한 가축에 대한 농가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나.

    “축산 청정국 무너지면 한우산업도 끝장납니다”

    방역당국은 지난해 12월 25일 경북 안동 한우농가를 시작으로 백신 접종 대상지역을 확대했다.

    “가축을 살처분하거나 매몰했을 때 보상 기준은 현 시가다. 돼지는 개체별로 마리와 개월 수 등이 파악돼 있지 않지만, 한우는 축산농가별로 몇 개월짜리가 몇 마리인지 정확히 파악됐다. 이를 기준으로 보상을 해주고, 최장 6개월까지 작은 농장은 몇백만 원, 큰 농장은 1400만 원까지 생계 안정자금을 지원해준다. 어떤 측면에서는 한우에 백신을 접종하는 것보다 살처분하는 게 보상 문제에서 깨끗할 수 있다. 이보다 큰 문제는 살처분한 축산농민들의 정신적인 충격이다. 이를 감당하기 힘들어 밤중에 협회로 울면서 전화하는 농민이 적지 않다. 아직은 이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지만, 구제역 확산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정신과 상담치료나 재활치료 등 정신적 피해 농민들에 대한 구제방안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한편 최근 한우협회는 롯데마트에서 미국산 쇠고기(갈비) 파격할인 행사를 벌이자 이에 거세게 반발했다. 구제역으로 국내 축산농가가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수입 쇠고기 소비를 부추기는 행사를 벌인 것에 불만을 표시한 것. 롯데마트는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곧바로 한우 파격할인 행사를 열었으나 그 양이 매우 제한적이어서 ‘미끼용 행사’라는 비판을 받았다.

    남 회장은 이에 대해 “미국산 수입 쇠고기 할인행사를 한 것에 대한 여론의 따가운 시선도 피하고, 한우농가의 마음을 달래려고 한우 할인판매 행사를 기획한 것 같은데 어이가 없다. 가격도 일선 축협에서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가격이고, 판매한 한우도 지난해 12월 초 사들인 재고품이라고 들었다. 정말 당장이라도 장화 신고 쳐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남 회장은 “지금 당장 응징할 힘은 없지만, 한우농민들은 롯데마트에서 한우를 팔고 싶지 않은 심정이다. 롯데마트에서 팔지 않으면 그만큼 다른 곳에서 팔린다. 롯데마트 측에 이런 마음을 끝까지 전달하고, 구제역 문제만 해결되면 실제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 회장은 마지막으로 “구제역 파문으로 모든 국민께 많은 불편을 끼친 점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그나마 한우농민들이 희망을 갖는 것은 우리 국민이 한우를 정말 사랑해주시기 때문”이라면서 “한우농가의 아픔을 안아주는 마음으로 더 많이 소비해주신다면 더욱 힘차게 일어나서 국민 마음에 보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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