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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그린벨트 40년 폭발한 민심 03

‘아파트 공화국’ 위해 원주민 다 쫓아내나

여태 불이익 참았는데 이젠 등 떠밀려…그나마 충분한 보상 없어 답답한 나날

  •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아파트 공화국’ 위해 원주민 다 쫓아내나

‘아파트 공화국’ 위해 원주민 다 쫓아내나
“대대로 물려주며 살 생각으로 10여 년 전에 산 땅이죠. 아무리 비싼 값을 준대도, 화장실 하나 내 마음대로 세울 수 없어 불편해도 안 팔고 살았어요. 마침내 그린벨트가 풀리는데 이제 떠나라네요.”

경기도 시흥시 계수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문우 씨에게 이번 겨울은 각별하다. 10여 년간 이씨 가족의 삶의 터전이었던 식당과 집, 밭 2553㎡가 제2차 보금자리주택 시흥 은계지구에 포함돼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2008년 9월 서민 주택난 해소를 위해 2018년까지 총 150만 채(수도권 100만 채, 지방 50만 채)의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에 따라 국토해양부(이하 국토부)는 보금자리주택사업 시범지구 4곳(서울 세곡, 서울 서초, 고양 원흥, 하남 미사) 총 8.05㎢를 지정·고시했고, 12월에는 제2차 보금자리주택지구 6곳(서울 내곡, 서울 세곡2, 부천 옥길, 시흥 은계, 구리 갈매, 남양주 진권) 총 6.31㎢를 추가 지정했다. 이 중 그린벨트 지역은 각각 6.86㎢, 8.42㎢로 전체 지구의 약 90%를 차지한다. 즉, 국토부의 보금자리주택 사업은 그린벨트 해제에 근간을 둔 셈이다.

보금자리주택 사업에 기존 그린벨트 지역이 대거 포함된 이유는 무엇일까? 2009년 2월 제9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근교 그린벨트에는 비닐하우스만 가득 차 있다. 신도시를 먼 곳에 만들어 국토를 황폐화할 필요 없이, 이런 곳을 개발하면 도로·학교 등 인프라를 새로 건설하지 않고도 인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토부는 4년간 기존 계획을 수정하면서 보금자리주택지구에 그린벨트 지역을 대거 포함시켰다. “어차피 관리도 안 되는 그린벨트인데 그 땅에 아파트 좀 세우면 어떠냐”는 속내인 것.

“남의 땅 가지고 생색내기”

‘아파트 공화국’ 위해 원주민 다 쫓아내나
조명래 단국대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그린벨트에 대한 대통령과 정부의 무지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린벨트 내 비닐하우스 등 농업시설은 합법적으로 농지를 보전하며 생산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의 일환이라는 것. 그는 “정부의 주택정책 실패가 마치 그린벨트 때문인 것처럼 책임을 전가했다”고 비판하며 “국민의 정부 시절 환경성 평가를 실시해 보전 가치가 낮은 그린벨트는 대부분 해제했기 때문에, 현재 보금자리주택 부지에 속한 대부분의 그린벨트 지역은 환경적으로 순기능을 하던 지역”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그린벨트 지역을 보금자리주택 부지로 대거 이용한 것은 무엇보다 땅값이 싸기 때문이었다. 그간 정부의 개발제한 때문에 그린벨트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됐고 땅값이 저렴했다. 시흥 은계지구 이씨 역시 “우리 집에서 100m도 안 떨어진 아파트 쪽과 비교하면 이곳은 평당 가격이 3분의 1밖에 안 된다. 길 하나를 두고 이렇게 가격차가 나는 것은 그린벨트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경기개발연구원 강식 책임연구원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 가운데 대규모 사업을 할 만큼 땅값이 저렴한 데를 그린벨트 말고 어디서 찾겠느냐. 결국 정부가 규제로 땅값을 낮추고 그 과실을 따먹는 사기를 친 것”이라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그린벨트 해제에 주민들은 배신감을 느낀다. 하남 미사지구 한 원주민은 “선거 때마다 그린벨트 해제하겠다고 했지만 우리 지역은 쉽사리 그린벨트가 해제되지 않았다. 그린벨트 해제는 정말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정부가 나서니 이렇게 쉬웠다”고 말했다. 고양 원흥지구 원모 씨도 “우리가 그렇게 해제해달라고 부탁할 때는 들어주지 않던 정부가, 정부 사업 한다고 한순간에 그린벨트를 풀어버리고 정작 땅주인인 우리한테는 떠나라니 너무 허탈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린벨트 거주자들은 상당한 불이익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다. 고양 원흥지구 장경순 주민대책위원회위원장은 “최근 10여 년간 고양시가 급격히 도시로 개발됐지만 우리 농지는 중간에 끼어 혜택을 못 받았다. 심지어 농사가 생업인 사람들도 정상적으로 농사짓기 힘들었고, 땅 가진 죄로 종합토지세만 많이 냈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경기 파주보다 우리 땅이 서울과 가까운데도 그린벨트라는 이유로 개발이 안 돼 땅값이 훨씬 낮았다”고 말했다. 용지 변경이 어려워 창고, 화장실 등 건물을 개축하기도 어려웠다는 주장도 많았다.

호재 많은데 이제 나가라니!

원주민들의 아쉬움이 더 큰 이유는 지속적으로 주변 지역의 땅값이 오르고 있었기 때문. 경기도 시흥시 시흥공인중개소 유광준 공인중개사는 “최근 10여 년간 시흥 은계지구의 땅값은 전반적으로 상승세였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전국 그린벨트 해제가 시작되면서 서울과 근접한 경기도 지역 그린벨트 역시 해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 지역의 가장 큰 약점인 교통 문제가 점차 해결되고 있다. 올 8월 인천과 시흥을 연결하는 제3경인고속도로가 개통돼 수도권과 송도, 인천공항을 오가기가 훨씬 수월해졌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및 인천대공원과 광명역을 잇는 인천지하철 2호선의 연장선이 시흥을 통과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게다가 서울대가 올 2월 시흥시에 국제캠퍼스와 의료훈련센터, 의료관광병원 등을 조성하겠다고 밝혀 더욱 지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그린벨트 내 토지 소유자들은 예상했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공사)를 통해 보상을 받게 되면 보상비가 처음 지구 지정 시점, 즉 2009년 12월을 기준으로 산정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공화국’ 위해 원주민 다 쫓아내나

한창 공사 중인 판교 신도시. 여기에 경기도 보금자리주택 150만 채가 더해지면 주택 과잉 공급 사태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그나마도 충분한 보상은 받기 어렵다.

최근 시흥 은계지구에는 “보상금은 실거래가가 아닌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통상적으로 실거래가는 공시지가의 2~5배다. 이씨 소유 땅(대지 194㎡, 전 1359㎡, 총 2553㎡)의 경우 이씨와 주변 공인중개사가 말하는 실거래가는 총 15억~20억 원이지만, 경기도가 제공한 공시지가에 따르면 대지는 1㎡당 92만 원, 전은 1㎡당 22만 원 수준이므로 채 4억 원이 안 된다. 이씨는 “1차로 보상을 받은 지구와 비교할 때 아마 내 자산은 7억 원 정도 평가를 받을 것 같다”며 “공시지가보단 높지만 시가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흥 은계지구의 이정웅 씨는 “소유주가 팔려는 마음이 없을 때는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 서민의 상식이다.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는 사람들에게서 땅을 사려면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데 오히려 실거래가보다 적은 돈을 내겠다니 황당하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이 지역 어른들은 ‘꼭 옛날 박정희 대통령 때 그린벨트 지정하던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세요. 시장 안에서 국가와 국민이 동등한 경제 주체가 아니라, 국가가 부당한 강자로 행세하고 있으니까요.”

보금자리주택, 누가 사겠냐?

그린벨트를 떠나야 하는 주민들은 사업을 맡은 LH공사가 2009년 기준 118억 원의 빚이 있어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8월부터 지장물 조사를 하기로 한 시흥 은계지구는 현재까지도 보상을 위한 현지 조사가 더디게 진행 중이다. 은계지구 이종학 주민대책위원장은 “올해 토지 보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말에 양도소득세를 내야 해 걱정이 두 배”라고 말했다. 게다가 LH공사가 보상 자체를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하겠다고 밝힌 곳도 있어 원주민의 불만이 더욱 거세다. 10월 보상계획 공고가 난 하남 미사지구는 원주민들이 5년 만기 채권으로 보상을 받았다. 미사지구 강재훈 씨는 “지급보증이 안 되는 채권이기 때문에 LH공사가 부도라도 나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되는 것 아니냐”며 불안해했다. 아직 보상을 받지 못했고 보상 시기도 알지 못해 뾰족한 대책 없이 세월만 보내는 이문우 씨는 마지막으로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보상도 보상이지만 너무 속상해요. 앞집 이씨는 조상 대대로 이 땅에 살아서 저 앞에 조상 묘도 있어요. 나는 이 땅을 떠나면서 생업을 바꿔야 할지 모르고요. 우리가 희생해서 이 땅에 지어진 아파트가 정말 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미분양 아파트로 남을지도 모른다니. 우리 보금자리를 빼앗는다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을 해야지 이 땅 지키고 살아온 사람들한테 보답하는 길 아닌가요.”



주간동아 2010.11.22 763호 (p22~24)

김유림 기자 r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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