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2010.08.02

‘엄친아’짝꿍처럼 키 크고 예뻐지고 싶어요

방학 기간 살빼기, 체형교정 등 어린이 외모관리 열중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0-08-02 13: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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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친아’짝꿍처럼 키 크고 예뻐지고 싶어요
    “공부뿐 아니라 외모도 아이들 경쟁력이에요. 가격이 조금 비싸도 머리가 잘 나온다면 충분한 것 아닌가요? 친구들에게 예쁘게 보여야 관심도 받고 자신감도 키우죠.”

    김성희(34) 씨는 머리 손질을 받는 딸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 미용에 대한 관심은 엄마들 사이에서 이미 대세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어린이 전용 미용실 톰키드클럽 서래점은 오전부터 머리를 하러 온 아이와 부모로 북적거렸다. 이유경 실장은 “대다수 아이가 엄마를 따라오긴 하지만, 각자 원하는 헤어스타일을 당당히 이야기한다”며 “올여름엔 여자아이들은 묶기 편한 파마머리를, 남자아이들은 옆머리를 깔끔하게 치는 ‘소프트 모히칸’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어린이 미용실이지만 가격은 웬만한 성인 미용실보다 비싼 편. 어린이용 두피 스케일링을 받는 아이도 늘었다. 학업 스트레스로 소아탈모, 지루성 두피 문제가 늘어나면서 생긴 트렌드라고 한다.

    학교 수업과 학원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느라 바빴던 아이들이 이제 여름방학을 맞아 외모 가꾸기에 나섰다. 어린이 미용실, 키크기 클리닉, 어린이 스포츠클럽, 피부과, 치과 등은 얼짱, 몸짱을 꿈꾸는 아이들로 붐빈다. 학부모 최진선(37) 씨는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경쟁이 시작된다. 입학사정관제 때문에 반장, 부반장을 하는 게 좋은데, 이를 위해선 친구들에게서 인기를 끌 수 있는 외모가 중요하다. 아이들도 일찍부터 이 사실을 안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김희영 양도 “반장을 뽑을 때 공부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외모도 빠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초등학생들 “키 180은 넘어야죠!”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루저’ 논란에는 초등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방학 동안 여유 시간에 충분한 휴식과 운동, 영양 섭취를 통해 키를 키우려는 초등학생이 늘고 있다. 키크기 전문 클리닉 서정한의원은 방학 시작과 함께 일일 내원환자가 약 2배 늘었다. 박기원 원장은 “키에 대한 아이들의 기대치가 매우 커졌다. ‘나폴레옹 황제, 박정희 전 대통령도 키가 작았다. 키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다’고 말하면 예전엔 아이들이 수긍하는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남자아이들의 희망 키는 180cm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평균 키 이상으로 자라고 있음에도 만족하지 못해 병원을 찾는 아이들도 있다.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나이가 어려진 것도 한몫했다. 여자아이들도 키 큰 남자아이를 선호해, 남학생들의 스트레스가 커졌다는 게 박 원장의 설명. 키로 고민하는 윤모(12) 군은 반에서 키가 가장 작다. 윤군은 자신보다 한 뼘 이상 큰 여학생들이 놀리는 탓에 스트레스를 받아 공부도 하지 않고, 키가 작은 아버지와 대화조차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에 윤군의 부모는 방학을 ‘키 크기’에 쏟아붓기로 결정한 것. 하지만 무리하게 키를 키우려다 건강을 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여자아이들은 초경을 늦춰 성장 시기를 늘리는 치료를 받는데, 주로 성호르몬 분비를 억제하는 루프린 주사를 맞는다. 그런데 항암제의 일종인 이 주사의 부작용으로 소아 골다공증에 걸리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남자아이들이 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여자아이들은 몸매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TV에 나오는 아이돌 스타의 몸매와 비교하며 몸매를 교정하고 싶다는 욕구가 는 것. 방학을 이용해 휜다리, 골반 틀어짐 등 체형 교정을 받으려는 아이들이 병원을 찾고 있다. 참누리한방병원 남문식 원장은 “체형 교정을 통해 몸매를 바로잡으려는 아이가 많다. 2~3cm의 숨은 키도 찾을 수 있어 특히 인기”라고 말했다.

    다이어트는 이미 초등 여학생들 사이에서 ‘고전’이다. 4학년 오모 양은 전혀 뚱뚱하지 않은데도 “예쁜 옷이 잘 맞지 않는다”며 음식 먹기를 주저한다.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다이어트하게 만들기도 한다. 박은주(37) 씨는 “초등학교 1학년 딸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통통해 억지로 줄넘기를 시킨다”고 말했다.

    혼자 살을 뺄 의지가 부족한 아이들은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등록하기도 한다. 서울 서초구에 자리한 한 스포츠클럽은 아이들 대상의 4주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스포츠클럽 강사들은 아이의 체성분, 운동 능력을 분석한 뒤 프로그램을 짜주고 매일 저녁 운동을 시킨다. 클럽 강사는 “대다수 스포츠클럽에서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몸집이 비대한 아이들은 스스로 운동을 하기 어렵기에 클럽을 찾아 ‘반강제’로 운동한다”고 말했다.

    외모에 대한 욕망보다는 내실 다져야

    하얀 피부, 고른 치아를 가지려는 학생들 ‘덕분에’ 피부과와 치과도 인기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주된 고민은 여드름. 2차 성징 발현이 빨라지면서 여드름이 생기는 시기도 앞당겨져, 4학년만 되면 여드름을 고민하고, 부모도 신경을 많이 쓴다. 연세스타피부과 이상주 원장은 “학창시절 여드름으로 고생한 부모들이 직접 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찾아온다”고 했다. 점을 제거하는 아이도 많다. 피부과 전문의들은 “아이들이 성장 중이기에 점 제거는 사춘기 이후로 미루도록 조언하지만, 아이가 심하게 놀림을 받는 등 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치료해주는 경우도 많다”고 털어놓았다. 치과에는 김연아 선수처럼 치아 교정으로 예쁜 외모를 가지려는 아이가 많이 찾는다.

    심한 경우 어른들처럼 성형외과를 찾는 초등학생들도 있다. 초등학생은 성장이 끝나지 않아 코, 턱, 광대뼈 등을 손대는 수술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쌍꺼풀 수술을 하는 초등학생이 늘고 있다. 강남의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어머니 중에는 조기 영어교육처럼 쌍꺼풀 수술도 일찍 하면 좋은 줄 알고 아이를 데리고 온다. 대부분 상담만 하고 돌려보내지만 어머니와 아이가 꼭 해야겠다고 버티면 ‘절개법’이 아닌 눈을 살짝 집는 ‘매몰법’으로 시술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아이에게 외모 경쟁력을 갖게 해주려는 부모와 외모에 관심이 많은 아이가 늘고 있다. 하지만 성장 과정에서 내실을 다지는 대신 외모 가꾸기에만 몰두하는 세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연세대 의대 신의진 교수(소아정신과)는 “외모에 대한 만족은 없다. 어릴 적부터 외모를 좇으면 이에 대한 더 큰 욕망만 양산할 뿐이다. 아이가 지나치게 외모에 집착하면 ‘자아상’에 문제가 있는 만큼,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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