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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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처펀드, 부동산 사냥 제철 만났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 좋은 기회” 새 투자기법으로 각광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10-08-02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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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처펀드, 부동산 사냥 제철 만났다

    벌처펀드는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사업장을 비롯해 미분양 아파트, 연립·다세대 주택, 미착공 택지 등을 헐값에 매입한 뒤 상승장에서 비싸게 팔아 고수익을 얻는다. 사진은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 모습.

    독수릿과의 일종인 대머리독수리 ‘벌처(vulture)’는 죽은 동물을 주식으로 삼는다. 커다란 날개를 편 채 하늘 위를 빙빙 돌다가 먹잇감이 사정권에 들어오면 시속 160km로 급하강해 낚아챈다. 이런 벌처의 특성을 빗대, 부실채권이나 부도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구조조정으로 가치를 높인 뒤 되팔아 고수익을 챙기는 펀드를 ‘벌처펀드(Vulture Fund)’라 일컫는다. 최근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도 벌처펀드가 만들어져 매물로 나온 각종 부동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공사 중단 ‘알짜 먹잇감’ 쏟아져

    “7월 초부터 환급사업장의 공매를 본격적으로 실시할 예정입니다.”

    6월 30일 서울 영등포구 대한주택보증 11층 대회의실은 200명이 넘는 대형 건설사 임직원과 은행, 저축은행 등 금융권 관계자로 북적거렸다. 지난해 4월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대한주택보증의 환급사업장 매각설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환급사업장이란 공정률이 25% 이상 떨어지거나 시행사나 시공사의 부도, 파산으로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사업장을 대한주택보증이 분양자에게 분양금을 환급해주고 되사오는 사업장을 말한다. 지난해 매각설명회 이후 30개 사업장(7947억 원)을 매각했는데 최근 환급사업장에 대한 문의가 늘면서 대한주택보증이 대대적인 설명회에 나선 것이다.

    대한주택보증 채권관리팀 관계자는 “종합부동산 개발업체 ‘신영’이 짓다 만 경기도 화성시 향남택지지구 한 아파트 사업장을 인수해 전체 가구 97%를 분양하는 성공을 거둔 뒤 환급사업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며 “요즘 10분에 한 통화꼴로 문의전화를 받는다. 건설사 쪽의 문의가 많다”고 설명했다.



    경기침체, 지방 미분양주택 증가 등 부동산 경기가 둔화하면서 작금의 부동산 시장은 최악의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부동산 개발의 사업성을 보고 사업자금을 장기 대출해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이하 PF)마저 PF 연체율이 꾸준히 늘면서 자취를 감춘 상태다. 더욱이 7월 23일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우리은행의 PF 대출과 관련한 비리혐의를 포착,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함으로써 PF 시장은 더욱 움츠러들었다.

    금융권에서 건설업계 쪽으로 돈이 흘러나오지 않는 데다 6월 25일 정부가 구조조정 대상 기업 건설사들을 발표하면서, 사업성은 있지만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알짜 먹잇감’이 쏟아지고 있다. 공사가 중단된 아파트 사업장을 비롯해 미분양 아파트, 연립·다세대 주택, 미착공 택지까지 전례 없는 다양한 매물이 시장에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쌓여가는 미분양 아파트나 환급사업장을 헐값에 매입한 뒤 상승장에서 비싸게 파는 ‘벌처펀드형 부동산 투자’가 새로운 투자기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7월 5일 대한토지신탁이 벌처펀드의 일종인 ‘구조조정 펀드’를 개발해 경·공매 또는 구조조정 부동산 개발사업에 공동 투자자로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벌처펀드형 부동산 투자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구조조정 펀드는 아파트 사업장이 시공사의 부도 등으로 공사가 중단돼 법원, 한국자산관리공사, 대한주택보증 등으로부터 경매나 공매로 매각되는 아파트 중에서 사업성이 우수한 곳을 골라, 투자자들로부터 펀드를 조성해 매입한 뒤 공동 투자자들이 이를 개발해 완공하는 방식의 프로젝트를 말한다.

    벌처펀드, 부동산 사냥 제철 만났다
    소규모 사업장의 경우 200억~300억 원, 대규모 사업장은 500억 원 규모로 펀드가 조성되며 대한토지신탁이 개발신탁을 맡고, 대한토지신탁의 대주주인 군인공제회가 지분투자에 참여해 사업비 대출이익과 개발이익을 공유한다. 건설사는 일부 지분투자를 한 뒤 시공권과 개발이익을 갖는다. 이를 위해 대한토지신탁은 ㈜한양, ㈜효성과 투자협약서(MOU)를 체결한 데 이어 삼성중공업과도 협약서 체결을 위한 실무진 회의를 마쳤다.

    대한토지신탁이 신탁업계 최초로 구조조정 펀드를 만들자 경쟁사들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국토지신탁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증권사들과 구조조정 펀드 조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한국토지신탁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결과가 나온 것은 없으며, 물권 쪽으로 얘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코람코자산신탁 역시 알짜 사업장에 투자하는 구조조정 펀드 조성작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익성과 안정성 두 토끼 잡기

    벌처펀드형 투자는 수익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한토지신탁 리스크관리팀 홍일웅 팀장은 “구조조정 펀드 조성으로 연 10%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수익은커녕 손실만 보는 지금의 부동산 경기에서 이 정도의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는 헐값에 물건을 사들인 뒤 2~3년만 버티면 분양가보다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다. 실제 대한주택보증의 환급사업장 매물은 한 번 유찰될 때마다 가격이 5%씩 떨어진다. 대한주택보증 채권관리팀 관계자는 “사업장에 따라 (최종 공매가가) 다르지만 유찰이 계속되면서 50%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는 매물도 나온다”고 전했다.

    또한 기존의 아파트 사업장이 단독 시행사가 모든 위험을 떠안는 구조였다면, 구조조정 펀드는 위험을 펀드 참여자들이 나눠 갖는다. 예컨대 신탁사는 저평가된 아파트 사업장을 찾아내 사업성을 검토하며, 금융회사는 자금 조달을 맡고 시공사는 공사를 마무리하는 식이다. 특히 대규모 PF 대출로 손실을 봤던 금융권에서 구조조정 펀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시중 저축은행 관계자는 “벌처펀드 투자는 PF 대출처럼 대규모로 자금을 내놓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토지신탁이 내놓은 구조조정 펀드의 경우, 금융권이 투자하는 자금은 많아야 100억 원으로 전체 펀드 조성 금액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하지만 벌처펀드의 관심이 여전히 수도권 일대 미분양 아파트와 환급사업장에 집중돼 있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대한토지신탁 홍일웅 팀장은 “투자 대상 사업장을 선택하기에 앞서 아파트에 대한 수요, 분양 가능성, 수익성 등을 분석해 비용 대비 성과가 크다고 판단한 곳에 투자한다”며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되고, 보금자리주택 물량이 조절된다면 수도권 지역의 분양은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반면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나 환급사업장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자만이 최고의 바겐세일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벌처펀드 시장의 불문율이다. 바닥의 최저점에 도달했을 때 쏜살같이 먹잇감을 낚아채 적절한 시기에 팔아야 한다. 부동산 전문가들이 “벌처펀드 성공의 관건은 타이밍에 있다”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에 돈 냄새를 맡은 독수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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