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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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산다

‘한편이라고 말해(SAY YOU’RE ONE OF THEM)’

  • 이설 기자 snow@donga.com

    입력2010-06-21 1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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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산다

    우웸 아크판 지음/ 은행나무 펴냄/ 432쪽/ 1만3000원

    초등학교 시절 학년이 바뀌어도 학급문고에서 빠지지 않는 시리즈가 있었다. 바로 부모 없는 아이들의 사연을 묶은 수기집이다. 수기 속 친구들은 하나같이 명랑만화 ‘캔디’ 캐릭터로 그려졌다. 안쓰러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는 법이 없고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깊었다. 그 이야기는 꽤나 감동적이어서, 숙성이 덜 된 꼬맹이들의 가슴에도 감동의 불을 지폈다.

    ‘한편이라고 말해’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그때의 코끝 찡함을 떠올렸다. 이 책의 잔향은 수기집을 보며 흘린 눈물과 성분이 80% 비슷하지 싶다. 아프리카는 극한의 땅이다. 그곳에서는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비극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다. ‘한편이라고 말해’는 그런 아프리카의 현실을 잔혹 동화처럼 그려냈다.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가 자신의 경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야기들이다. ‘크리스마스 성찬’ ‘가봉에 가기 위해 살찌우기’ ‘이건 무슨 언어지?’ ‘럭셔리 영구차’ ‘부모님의 침실’ 등 중·단편 소설 5편이 실렸다. 이 중 호평을 받은 3편의 책장을 살짝 넘겨본다.

    ‘크리스마스 성찬’은 꼬맹이 ‘지가나’의 눈에 비친 빈민가 풍경이다. 지가나 가족은 카비레(본드)를 달고 산다. 그러면 배고픔이 사라지면서 알싸한 기분에 취할 수 있어서다. 동네사람 모두 밥보다 카비레와 더 친하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도 가족에게는 좋은 일이 생긴다. 바로 지가나를 학교에 보내기로 한 것이다. 학비는 열두 살인 큰누나 ‘마이샤’가 마련하기로 했다. 거리로 나가 백인에게 몸을 파는 누나를 보며 지가나는 미안함을 느끼면서도 학교 갈 생각에 마음이 부푼다. 다가온 크리스마스 성찬. 풀타임으로 일하러 집을 떠나겠다는 마이샤의 선언에 가족은 눈물바다가 된다. 김빠진 맥주와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뒤로하고 훌쩍 떠나는 마이샤. 그런 누나를 바라보면서 지가나는 조용히 공책을 찢고 연필을 분지른다. 그러고 나서 총총, 거리의 아이들 틈에 섞여 어디론가 사라진다.

    ‘이건 무슨 언어지?’는 짤막한 단편이다. 어른들의 사정으로 멀어진 소녀들의 슬픈 우정을 담았다. 여섯 살 주인공은 단짝친구 ‘셀람’이 세상에서 가장 좋다. 세상은 그들에게 딱 적당할 만큼 넓었고, 둘만의 언어로 키득대노라면 부모님과 다른 친구들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공의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당부한다. “아가, 이제 다시는 셀람과 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이슬람교도 애 말이야.” 전날 밤 일어난 종교분쟁이 이유였다. 셀람에게도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고, 이에 두 소녀는 그리움 병을 앓는다. 주인공은 셀람이 다른 친구 ‘하디야’와 살갑게 지내는 악몽까지 꾼다. “왜 셀람을 만나면 안 되지? 셀람이 이제 나를 싫어하는 걸까?” 소녀의 고민은 새로운 언어를 개발하는 것으로 해결된다. 엄마 몰래 포옹의 제스처를 주고받으며 그들은 변치 않은 우정을 확인한다.

    르완다 내전을 소재로 한 ‘부모님의 침실’은 좀 더 냉혹하다. 부족이 다른 부부의 파국을 동심의 렌즈로 조명한다. 열 살인 주인공은 엄마를 닮아 피부색이 연하고 몸매가 호리호리하다. 엄마와 달리 아빠는 흑갈색 피부와 바나나처럼 두툼한 입술을 가졌다. 어린 동생 ‘쟝’과 장난에 한창인 어느 날 엄마가 다가와 말한다. “오늘 밤엔 불을 켜지 마라. 엄마도 아빠도 집에 없으니, 누구한테도 문을 열어줘선 안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앙드레 삼촌을 비롯한 무리가 집으로 들이닥친다. 맨발 차림의 삼촌은 정신 나간 표정으로 엄마를 찾는다. 상황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온 부모는 말이 없다. 그들은 투치족인 엄마를 처형하기 위해 집으로 온 것이었다. 앙드레 삼촌도 전날 밤 임신한 투치족 아내를 직접 칼로 벴다. “내 부족민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시키시오. 제발.” “여보, 남자답게 행동해요.” 광분한 마을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엄마를 죽이는 아빠를 뒤로하고, 남매는 집을 빠져나온다.



    이 책의 미덕은 아프리카의 잿빛 현실을 냉정하면서도 희망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이다. 참혹한 모든 것을 품은 아프리카 사람들은 그러나 무기력하지 않다. 그들은 끝내 생명력을 잃지 않았고, 이웃의 곁을 지켰다. 소설의 그릇에 담긴 아프리카는 TV 다큐멘터리나 구호단체 포스터 사진보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분투기를 상상하며 얼음장 같은 사람도 휴머니즘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떠올릴 수 있겠다. 이것이 바로 이야기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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