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교실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

로랑 캉테 감독의 ‘클래스’

  • 심영섭 영화평론가·대구사이버대 교수 chinablue9@hanmail.net

    입력2010-04-08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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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실이 변해야 교육이 변한다

    영화 ‘클래스’는 “교실이 변하지 않는 한 좋은 교육은 없다”고 말한다.

    ‘뭐, 이렇게 정교하게 연출한 영화가 다 있지?’ 영화학자인 남편과 영화평론가인 내가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보는 방법이나 영화에 대한 감수성이 극과 극인 우리 부부가 이 영화의 촬영 기법에서만큼은 의견이 일치했다. 로랑 캉테 감독의 신작 ‘클래스’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다큐멘터리 같다. 원작자 프랑수아 베고도는 실제 교사이고 영화 속 교사들은 진짜 교사, 아이들은 진짜 아이들이며 아이들의 부모도 실제 부모가 나온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는 철두철미하게 합을 맞춘 페이크 다큐(fake documentary), 즉 가짜 다큐멘터리다. 카메라 여러 대를 교실 여기저기에 배치하고, 인물들의 반응과 역반응을 끈기 있게 기다리며, 철저히 다큐적 양식인 핸드헬드(handheld·들고 찍기)로 전 과정을 찍었다. 관객들은 영화 내내 집중하지 않으면 학생과 교사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놓치기 쉽다. 왜 이렇게 힘든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을까. 모든 것이 ‘교실 수업’이라는 ‘현장’에 무한대로 접근하려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 ‘클래스’ 속 수업 모습은 개판이다. 학생들은 사사건건 교사들한테 대들고 교사들은 수업하기 전부터 아이들에게 넌더리를 낸다. 파리 외곽 20구역인 이 동네는 아랍, 아프리카, 중국 같은 각처의 프랑스 이민자 자녀가 뒤섞여 있다. 심지어 어떤 교사는 ‘이 아이는 좋고 이 아이는 나쁘고’를 학기가 시작하기 전 평가 완료한 상태다. 그러나 프랑스어 교사 마랭은 조금 다르다. 끈기 있게 아이들과 토론을 벌이고 역동적으로 아이들 말을 받아친다.

    그렇다고 마랭이 아이들을 끔찍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아이들과 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는 태도에 가깝다. 노트도 책도 없이 온 아이들에게 직설법 미완료, 가정법 미완료 같은 것을 굳이 가르치려 한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도록 내버려두고 아이들과 설전과 토론을 거듭한다. 학생들의 리시브는 예상보다 훨씬 날카롭다. “선생님은 예문을 들 때 왜 늘 백인 이름인 빌을 사용하느냐” “아이사나 라시드, 라메드 같은 이름도 있다”라며 대든다. 그러나 이 세밀하고 자질구레한 일상적 수업과 토론의 마지막, 한 흑인 학생이 선생에게 다가와 이렇게 속삭일 때는 뒤통수를 한 방 맞은 것 같다. “배운 게 없다.”

    그렇게 열심히 가르쳤건만, 학기말이 끝났는데 그 학생은 ‘학교에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다’고 고백한다. 이 영화의 원제목이 클래스가 아니라 프랑스어로 ‘벽 안에서(Entre Les Murs)’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운동장에서 마랭과 아이들이 축구하는 장면과 빈 교실의 빈 책상, 빈 의자가 주는 영감과 감흥은 마치 잔잔한 물결 하나가 커다란 파도를 몰고 오는 듯한 위력을 발휘한다.



    그 순간 깨닫게 된다. 영화는 결코 교육제도의 희망이나 절망을 판단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학교가 아무리 ‘민주주의에 관해’ 떠들어도 학교가 ‘민주적’이지 않는 한, 아이들은 자기 인생의 축소판인 학교와 부모에게서 대접받은 그 태도를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라는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칸이 2008년에 이 영화에 황금종려상을 준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클래스’는 쉬운 결론과 희망에 안주하기보다, 다른 좋은 영화들이 그렇듯 적극적으로 교육 현실에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부모이자 선생인 우리는 무슨 답을 해야 하나. 줄거리는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클래스’의 의문은 긴 꼬리를 남기며 사색의 울타리를 넘나든다. 그래서 결심하게 된다. 아직도 인생에서 배울 게 남아 있다면, 영화 속 빈 의자에 나도 같이 앉아 있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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