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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 우리 선수들 반드시 일 낼 겁니다”

한국축구 ‘영원한 날쌘돌이’ 서정원 코치

  • 유재영 동아일보 출판국 문화기획팀 기자 elegant@donga.com

“16강? 우리 선수들 반드시 일 낼 겁니다”

“16강? 우리 선수들 반드시 일 낼 겁니다”
‘영원한 날쌘돌이’ 서정원(40) 현 런던 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 현역 시절 3차례(1990년 예비 엔트리, 94년, 98년) 월드컵에 출전한 그에게 월드컵의 추억은 현재 진행형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누구보다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잠시 묻어두었던 지난날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고, 후배들이 연출하는 드라마 같은 스토리에 진한 감동을 느껴볼 수도 있을 테니. 그런 서 코치에게서 월드컵의 감동을 미리 느낄 수 있었다.

3월3일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월드컵대표팀은 지난 2월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중국전 대패(0대 3)의 후유증을 딛고 아프리카 강호인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을 2대 0 승리로 장식하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남아공월드컵이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특히 해외파의 맹활약은 기대감을 높이기에 충분하다. 주장 박지성의 존재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이청용의 눈부신 활약은 대표팀 선배들조차 혀를 내두른다. 서 코치도 동감한다.

“잉글랜드로 가기 전부터 이청용의 FC서울 경기를 보면 ‘월등하다’, ‘한 수 위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술은 둘째 치고 경기를 풀어나가는 리듬감과 호흡, 다른 선수들과의 융화 능력이 뛰어났거든요.”

이청용과 서 코치는 많이 닮았다. 둘 다 날렵한 체구에 빠른 주력을 갖춘 오른쪽 측면 공격수다. 재치와 지능적인 플레이로 상대 수비수를 괴롭히는 스타일 역시 흡사하다. 몇몇 전문가는 이청용을 ‘제2의 서정원’, ‘리틀 서정원’이라며 서 코치와 비교하기도 한다. 이청용과 자기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을 두고 서 코치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이청용은 제2의 서정원 … 저야 영광이죠”



서정원 코치에게 1994년 미국월드컵은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기적처럼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고, 그 월드컵에서 한국 역대 월드컵 득점 중 가장 극적인 골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카타르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던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서 코치는 북한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은 3대 0으로 북한을 제압하고도 같은 시각 일본이 이라크에 2대 1로 앞선 바람에 본선 진출이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기 종료 직전 일본이 통한의 동점골을 내주면서 한국은 극적으로 월드컵 티켓을 따냈다. 당시 경기를 마치고 풀이 죽어 있던 고정운 선수가 갑자기 오른팔을 빙빙 돌리고 환호하다가 벤치의 감독, 스태프와 뒤엉키는 모습은 한국 축구사를 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감동의 명장면이다. 그 기적의 중심에 서 코치도 있었다.

“경기를 하면서 그렇게 벤치를 쳐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후반전이 끝날 때까지 벤치 분위기가 싸늘한 것을 보니, 안 되겠다 싶었죠. 그런데 본부석에 있던 김원동 부장(당시 대한축구협회 지원총괄부장)께서 갑자기 무전기를 귀에 대더니 만세를 부르시는 거예요. 선수들이 고개 숙여 한국 응원단 쪽에 인사하려던 바로 그 순간이었죠.”

일본은 당연히 ‘초상집’이었다. “일본팀하고 같은 호텔을 썼는데 경기가 끝난 뒤 호텔 2층에서 두 팀이 공간을 나눠 식사를 하게 됐어요. 한국팀은 케이크를 자르고 난리가 났는데 일본팀 쪽은 쥐 죽은 듯 고요하더라고요. 그날 얼마나 기뻤는지 이라크 선수들이 유니폼과 신발, 옷을 달라고 했는데 우리 선수들이 몽땅 줬다니까요.(웃음)”

“16강? 우리 선수들 반드시 일 낼 겁니다”

1994년 미국월드컵 스페인전에서 동점골을 터뜨리고 환호하는 서정원 현 코치.

허정무 감독의 ‘경험’ 큰 힘 발휘할 것

월드컵을 앞두고 혹독하게 훈련했던 기억도 잊을 수 없다. 1994년 미국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치른 댈러스는 40℃를 육박했다. 체력적인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정상적인 경기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조건. 서 코치는 “당시 사진기자들이 앵글을 잘 잡지 못했을 정도로 무더웠다”고 회상했다. 상대는 스페인과 독일. 세계적인 강팀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체력과 정신력 무장이 필요했다.

“김호 감독님의 훈련 강도가 굉장히 셌어요. 훈련 때마다 400m 트랙을 몇십 바퀴 뛰었죠. 그때 저는 축구선수가 아니고 육상선수인가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제주도 전지훈련 때는 한라산을 이틀에 한 번씩, 4개 코스를 등반했어요. 한라산을 밥 먹듯이 등정하는 분도 저희를 안내해주다 결국 따라오지 못했어요. 그때 선수들의 체력은 대단했습니다.”

강도 높은 훈련을 견뎌낸 서 코치는 결국 스페인전에서 후반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뽑아냈다.

“김호 감독께서 ‘후반전에 준비하고 있으라’고 하셨는데 선수들은 자기 몸 상태를 알거든요. 그날 컨디션은 최상이었어요. 뭔가 일을 낼 수 있겠다는 감이 오더군요.”

현 월드컵대표팀을 지휘하는 허정무 감독과의 인연도 남다르다. 허 감독과 서 코치는 두 차례 월드컵에 함께 출전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선 트레이너와 선수로, 1994년 미국월드컵에선 코치와 선수로 호흡을 맞췄다. 이런 특별한 인연이 있기에 누구보다 허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이해하는 이가 서정원 코치다. 그는 일부 포지션에서 선수 선발 논란이 제기된 것에 확실히 선을 긋는다.

“자신이 원하는 시스템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선수를 선발해 기용하는 것은 감독 고유 권한이에요. 국가대표로 뽑히는 30여 명은 기량의 차가 거의 없는 최고 수준의 선수입니다. 감독이 자유스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해요.”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 뒤 8년 만에 대표팀 감독으로 복귀한 허정무 감독은 이번 월드컵이 축구 인생에서 중요한 재기 무대다. 서 코치는 허 감독의 이런 ‘경험’이 월드컵에서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한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고 잘된 사업가가 있습니까. 허 감독님은 대표선수로, 그리고 지도자로 많은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답을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제가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때 김호 감독께서도 ‘많이 져봐라, 지는 것에서 배워라’고 말해주셨습니다. 큰 무대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허 감독님의 노련함을 믿습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함께 출전했던 이동국(31·전북)에 대해서도 애착을 보였다. 프랑스월드컵 네덜란드전 때 후반에 서 코치와 교체 투입된 공격수가 다름 아닌 19세의 이동국이었다. 2002년, 2006년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한 이동국의 아픔이 마치 자기 아픔 같았다는 서 코치는 그래서 최근 이동국의 상승세가 더욱 반갑다.

“동국이가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싶어요. 공격수로서 가장 중요한 자신감을 확실하게 찾은 것 같아요. 한 방 해줄 겁니다.”

서정원 코치는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팀의 16강 진출을 희망적으로 예상했다. 유럽리그 경험을 갖춘 해외파의 가세로 강팀과의 경기에서도 우리의 색깔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리란 확신 때문이다. 특히 이청용, 박주영, 이근호의 맹활약을 기대했다. 서 코치는 그들에게서 또 하나의 소중한 월드컵 추억을 받고 싶어 했다.



주간동아 2010.04.13 731호 (p76~77)

유재영 동아일보 출판국 문화기획팀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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