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31

2010.04.13

한반도, 무력충돌 급변사태 위기감

천안함 침몰 북한군 소행 여부 ‘폭풍의 눈’으로 등장

  • 이정훈 동아일보 논설위원 hoon@donga.com

    입력2010-04-07 18:3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한반도, 무력충돌 급변사태 위기감

    천안함 사고에 북한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지면 향후 남북관계에 중대 변화가 예상된다. 판문점에서 감시를 서고 있는 북한군.

    박혁거세 신도비 등이 있는 경주 ‘신라오릉’에서는 매년 관계자들이 향사를 올린다. 3월 22일 올해 향사 준비를 위해 모여든 사람들은 박혁거세 신도비 등 3개 비석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현상을 목격했다. 국가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징조로 해석되는 ‘비석이 땀 흘리는’ 현상이 나타난 것. 이 사실은 당시 현장 사진과 함께 언론에 보도됐다. 그리고 나흘 뒤(3월 26일) 천안함 침몰 사건이 터졌다.

    천안함 침몰 사건은 ‘폭풍의 눈’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부설한 기뢰의 폭발로 두 동강난 것으로 최종 밝혀지면 남한은 응징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결단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기뢰 폭발은 확인했으나 누가 기뢰를 설치했는지를 밝히지 못해도 문제다. 우리 사회는 북한에 책임을 묻자는 세력과 “경제가 어려워지니 증거 없이 행동하지 말자”는 신중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남(南)-남 갈등’에 빠져들 수 있다.

    강·온파 간 대립은 정부 안에서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사건 초기에는 남북관계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신중파가 우세했다. 때마침 미국도 “북한이 했다는 증거를 잡지 못했다”고 밝혔기에 이들은 실종자 구조에 최선을 다하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초점을 내부로 돌리자 “구조에 최선을 다했느냐”는 논쟁이 일었다. 군에 책임을 묻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 이런 분위기 탓에 사고 현장에 출동한 해군 고속정은 천안함 조난자를 구하지 않았고 어선과 해경함이 대신 구했다는 식의 보도가 쏟아졌다.

    정부 안에서도 강·온파 대립 시작

    천안함이 접근하지 말아야 할 위험 수역에 들어갔다는 맹랑한 추측도 날개 돋친 듯 퍼져나갔다. 해군 함정은 벌집 같은 격실구조를 갖추고 있어 암초에 걸려도 절대 침몰하지 않는데도, 천안함이 해도에 없는 여(수중 암초)에 걸렸다는 거짓말까지 번져나갔다. 우리 군에 대한 질책이 높아지자 합참은 인근에 있던 해병부대가 TOD(열상장비)로 찍은 천안함 침몰 직후의 동영상을 공개하는 등 외부에 알리지 말아야 할 정보도 공개했다. 이에 친군(親軍) 세력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천안함을 비롯해 북방한계선(NLL)에 배치된 초계함은 북한 경비정과 교전하는 우리 고속정을 후방에서 엄호사격하는 화력이다. 초계함에 탑재된 76mm 주포는 성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배가 아무리 흔들려도 표적을 놓치지 않는다. 북한 해군에게는 이런 함정이 없는 탓에 경비정은 육상에 있는 곡사포(일명 해안포)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곡사포는 정확도가 크게 떨어져 엄호사격의 효과가 없다. 북한 해군은 눈엣가시 같은 초계함을 제거하고 싶었을 것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이렇게 말했다.

    “수상함 대결에선 도저히 이길 수 없기에 북한은 공작 차원에서 준비했을 것이다. 따라서 사건 현장에서 북한이 했다는 물증을 잡는 일은 쉽지 않다. 북한의 소행이라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고 포기하면 이 사건은 영구미제가 돼 우리 사회만 혼란에 빠지고 만다. 미얀마에서 발생했던 아웅산 사건과 바레인에서 일어난 김현희의 KAL기 폭파 사건도 현지에서는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심증을 가진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요원들이 현지로 달려가 미얀마와 바레인 수사기관에게 북한에 초점을 맞춰 수사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전모가 밝혀졌다. 천안함 사건도 그렇게 원인을 추적해야 한다.”

    기뢰가 천안함 폭침 원인으로 확인되면 인천 백령도 여객선은 물론 백령도, 대청도 어선들도 운항을 중단하고 혹시 있을지 모를 기뢰를 찾는 작전을 벌여야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또 다른 예비역 장성은 “지금은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이 위험에 빠진 상황”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종합적, 객관적 정보를 요구하지만 세상에 그런 정보는 없다. 모든 정보는 부족한 점이 있기에 최종적으로 사람의 판단이 개입해 결정된다. 위기란 불완전한 정보가 많은 때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는 통찰력과 예지력으로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오판(誤判)의 부담 때문에 ‘정확한 정보가 없다’는 이유로 통찰력과 예지력의 사용을 회피하는 사람은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없다. 이런 사람이 지도자로 있을 때 국가의 위기관리능력은 위험에 처한다. 내부 책임만 따지고 외부 책임은 묻지 않기에 사회 불만도 폭증한다.”

    70여 척 잠수함정 행적 추적 중

    천안함이 두 동강 날 정도의 무기를 투입하려면 누군가가 수중 침투를 했어야 한다. 잠수함을 잡는 가장 좋은 방어망은 그물이다. 천안함은 백령도에서 1.8km 떨어진 곳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이 정도 연안에서는 고기잡이 그물을 많이 친다. 잠수함이 작전을 수행하기 힘든 수역이다. 백령도 주민들에 따르면, 연안에 어망을 설치하는 작업은 4월 중순부터 이루어진다.

    3월에는 그물을 설치하지 않아 잠수함이 백령도 근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보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금 한미 연합군은 70여 척으로 알려진 북한 잠수함정 전체의 행적을 추적하고 있다. 일정 기간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 잠수함정은 의심 대상으로 분류해 더욱 정밀하게 추적한다. 그래도 행적이 밝혀지지 않는 잠수함정의 리스트는 별도로 관리한다. 그리고 이 잠수함정의 운용과 관계있는 북한인을 상대로 정보 수집에 전력한다. 미군은 아직 이 작업을 끝내지 못해 “북한이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힌 것인데, 신중파들은 이를 북한에 대한 무죄 확정판결로 받아들였다.

    어쨌든 이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 정전회담을 비롯한 남북회담 등에서 북한에 책임을 추궁하겠지만, 북한은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한 장성은 이렇게라도 해야 남-남 갈등이 줄어든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장성은 응징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며 이렇게 말했다.

    “응징을 하려면 미국 협조를 받아내는 등 많은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어, 한반도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원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또 다른 장성은 “국방부 장관은 북한군이 우리를 공격해오면 우리 군도 응징하겠다고 말했고, 응징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할 수 있다. 시기도 우리가 결정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북한은 금강산 부동산 몰수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신라오릉 비석이 땀을 흘린 후 일어난 천안함 침몰 사건은 오랫동안 한반도를 짓누르는 스트레스가 될 것이다. 북한이 이 스트레스를 견뎌내지 못한다면, 한반도는 갑작스럽게 통일로 가는 급변기를 맞을 수도 있다. 군과 정보당국이 긴장하는 진짜 이유는 이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