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7

2009.12.29

검붉은 빛깔, 부드러운 탄력‘카라바스 루즈’

  • 조정용 ㈜비노킴즈 고문·고려대 강사

    입력2009-12-23 16: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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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붉은 빛깔, 부드러운 탄력‘카라바스 루즈’
    ‘카라바 공작’을 잊지 않았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도 통쾌, 유쾌했던 독서의 추억은 잊히지 않으니까. 카라바 공작처럼 될 수 있다면, 장화 신은 고양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꿈꾸던 때가 가끔 그리워진다. 이런 카라바 공작이 와인으로 등장해 화제다. 1697년 프랑스 샤를 페로가 지은 동화 ‘장화 신은 고양이’에서 만들어진 가공인물 카라바 공작을 보르도의 맹주 샤토 무통 로쉴드가 와인으로 환생시켜 놓았고, 이것이 최근 국내에 수입됐다. 사실 원작에서는 카라바 후작이었지만 번역서에는 그보다 한 계급 높은 공작으로 소개됐다.

    세계 양조장의 국제화 수준을 따져 몇 손가락에 꼽히는 샤토 무통 로쉴드는 고향 마을 포이약에 안주하지 않고, 좋은 토양과 기후를 찾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도 자국 내의 잠재력 높은 산지를 놓치지 않았다.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가격 대비 품질이 만족스러운 곳으로 갔다. 유럽연합(EU)과의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저렴한 와인 시장의 아성 칠레를 공략할 후보로 랑게독은 0순위에 꼽힌다.

    카라바스(Carabas)의 라벨로 웃는 고양이 정도는 너무 식상했을까. 고양이 대신에 카라바 공작으로 보이는 인물이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다. 고양이 재롱을 대견해하는 공작인지, 와인의 신 바쿠스인지 모르겠지만, 바쿠스라도 고양이의 신통방통한 재롱을 즐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카라바스의 포도밭은 랑게독 지방에 있으며 등급은 지방 와인에 해당하는 뱅드페이급이 많다. 이 등급은 본격적인 실속을 챙기는 와인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여러 지방에서 출시되는 뱅드페이 가운데 가격 대비 품질이 가장 우수한 게 랑게독 것이어서 ‘뱅드페이 드 랑게독’이 유명한데, 이를 줄여 ‘뱅드페이 독’이라고 한다. 이는 원산지를 표시할 수 있는 AOC급 바로 아래에 해당한다.

    카라바스 루즈(레드)는 다섯 가지 품종이 잘 혼합된 입맛 좋은 레드와인이다. 시라, 그르나슈, 무르베드르,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가 섞였다. 검붉은 빛깔에 부드럽게 퍼지는 탄력 있는 질감이 기분 좋다. 14.5%의 도수가 주는 풍성함도 빠뜨릴 수 없다. 남프랑스의 정열이 태양에서 비롯된 사실을 잘 알고 있다면, 정열의 태양이 잉태한 와인이 이 정도의 도수인 건 자연스런 일이라 하겠다. 수입 대유와인, 가격 5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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