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16

2009.12.22

차별화된 ‘자율고 실험’… 빛났다

한가람高 첫해 경쟁률 9.1대 1 … ‘교과교실제’ 이어 ‘과목선택제’ 시도

  • 이혜민 기자 behappy@donga.com

    입력2009-12-18 09: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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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화된 ‘자율고 실험’… 빛났다

    1 자율학습실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2 수학경진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3 서울지역 고등학교 만족도 조사에서 2위를 차지한 한가람고. 4 한가람고는 아파트, 경찰서 옆에 자리하고 있다.

    자율형 사립고는 학교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학교로, 교과 이수 단위의 50%만 국민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고 나머지는 자율적으로 운영하면 된다. 특별전형(20%)으로 사회적 배려자, 체육 특기자를 선발하지만, 일반전형(80%)으로는 중학교 내신성적 50% 이내 학생들의 지원을 받아 추첨으로 뽑는다. 따라서 안정된 면학 분위기를 희망하는 중·상위권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지난주 ‘주간동아’는 서울지역 자율형 사립고로 지정된 13개 고교의 교장을 인터뷰했다. 이들 중에는 인성교육, 교양교육을 내건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학생들의 학업 스케줄을 빡빡하게 만들어 영어·수학 등을 집중적으로 공부시키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가람고는 달랐다. 지금껏 진행해온 대로 학생들이 국어·영어·수학 등 필수과목을 수강하고 나머지는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는 학년이 아닌 실력에 따라 ‘다양하게’ 선택하게 할 예정이라는 것. 이옥식 교장의 포부도 남달랐다. “단순히 명문대를 많이 보내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적성을 살려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이런 특별함 때문인지 지난 12월3일 2010학년도 신입생 원서접수를 마감한 한가람고의 경쟁률은 9.1대 1로 13개 자율고의 평균 경쟁률(일반전형) 3.37대 1을 훨씬 웃돌았다. 한가람고가 이처럼 학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게 제공하면서도 강남권 고교들과 비슷한 대학진학률로 강남지역 자율고의 2배에 이르는 경쟁률을 기록하게 된 이유는 뭘까. 한가람고를 찾아 그 성장 엔진을 들여다봤다.

    아파트, 경찰서 바로 옆에 자리한 한가람고. 1997년 시행된 교과교실제가 2007년에야 정착된 건 교사의 전문성이란 전제가 확보되기까지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수학 교실을 실험실로 만든 교사

    대학 강의실보다 좋아 보이는 김연주(37) 교사의 전용 교실에 들어갔다. 이곳에 사실상 상주한다는 김 교사가 유명 수학자 사진, 칼럼, 도형들로 교실을 꾸며놨기 때문인지 수학 실험실에 온 느낌이 들었다. 수학(1학년)과 실용수학(3학년) 강의를 들으러 김 교사를 찾아오는 학생들은 그때마다 수학의 오묘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1년 (임용)시험 준비해서 30년 동안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희한하게도 지난해와 같은 방법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흥미를 안 갖더라고요. 그래서 그 내용을 엮고,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지원을 받아 저만의 교과서를 만들었습니다.”

    차별화된 ‘자율고 실험’… 빛났다

    서울시교육청 지원을 받아 한가람고만의 수학 교과서를 만든 김연주 교사.

    김 교사는 수학경진대회를 진행하며 학생들의 흥미를 북돋운다고 했다. 실제로 한 학기 동안 ‘대칭을 이용한 한글 창조’를 연구했다는 송화진 학생은 “방학 전에 계획서를 제출하고, 선생님과 연구하면서 수학에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정치·경제를 가르치는 이정희(38) 교사의 전용 교실엔 PPT 자료를 활용하는 흔적이 보였다. 마침 이 교사는 교실 모서리에 마련된 교사 책상에 앉아 자료 정리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에 24시간의 수업을 하는데, 수업이 없을 때는 신문·인터넷 자료를 보면서 관련 내용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질문하러 찾아오면 가르쳐줍니다. 저마다 다른 시간표를 갖고 있긴 해도 일주일에 한두 시간은 공강 시간이 있거든요.”

    이 교사는 평가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와서 교사 평가를 받았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돈독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냉정하게 평가하는 걸 보자, 무엇보다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교수법부터 다시 공부했습니다.”

    가령 일사부재리 원칙을 설명하기 위해 영화 ‘더블 크라임’을 예로 들고, 교과서에는 없지만 뉴스에서는 중요하게 다룬 리스본 조약을 설명하게 된 것도 그 때문. 이런 노력 덕분인지 요즘엔 ‘우수 교사’란 평을 얻게 됐다.

    연 2회 수업만족도 조사

    한가람고는 개교 이래 1년에 두 차례씩 수업만족도 조사를 하고 있다. 10문항이 있는데 학생들은 저마다 1점부터 5점까지 점수를 준다. 교사들은 이 과정을 거치며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동일 과목 교사들끼리 서로 수업 동영상을 보며 평가하기도 하는데, 냉정하게 평가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반면교사’의 기회를 삼는 경우는 많다(수업만족도 조사는 교사 채용에 절대적인 기준이 되기도 한다. 교사들 중 대부분은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1, 2년의 평가기간을 거쳐 임용됐다).

    평가제도만이 선생님들을 움직인 것은 아니다. 행정업무 전담자와 교장, 교감이 행정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면서 교사들은 자기 계발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상·벌계, 연구기획, 성적처리, 생활기록부 입력 등 잡다한 업무를 하느라 분주했다. 행정업무와 교과업무의 비중이 거의 1:1 수준이었다.

    물론 한가람고가 교무부장, 학생부장 등을 없애고 오로지 교장, 교감과 1학년부장, 2학년부장, 3학년부장만을 두기 때문에 교사가 부담스러워진 측면도 있다. 학생부, 교육기획부, 진학상담부 등이 담당하던 것을 교사 개인이 담당하기 때문에 오리엔테이션, 경진대회 등 행사를 진행하거나 교생이 올 때마다 임의적으로 업무를 처리하게 된 것. 그러나 전에 비해 행정업무 처리 시간이 줄어든 건 확실하다.

    교장의 ‘열린 자세’도 한몫했다. 교과목별 지원사업을 하고 있는 이 교장은 교사들이 지원을 요청할 경우 지원비를 지급한다. 역사과 정성희(37) 교사는 “100만원의 지원비를 받아 4명의 역사과 선생님들이 방학 때마다 지역 답사를 하게 돼 현장감 있는 교육이 가능해졌다”며 뿌듯해했다. 재단에서 교사들의 캐나다, 미국, 동남아 연수를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교사들의 건의사항도 적극 수용되는 편이다. 월요일이 아닌 토요일에 회의를 하면서도 교사들이 번갈아 사회를 맡게 한 것은 교사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욱이 이 교장은 문제아들을 직접 챙긴다. 미국처럼 교장이 나서 아이들을 상담하는 것. 덕분에 담임을 맡은 교사들도 마음 편히 교과목에 집중할 수 있다.

    교과교실제를 시행하며 교사들의 전문성은 확보됐지만 문제점도 나타난다. 또래집단과 어울리지 못하는 학생이 생겨난 것이다. 2학년 320명이 132가지의 서로 다른 시간표를 가졌으니(2009년 기준) 그럴 만도 하다. 또한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강압적으로 공부시킬 수 없다는 한계도 있다. 방황하는 청소년의 경우 억지로라도 시키면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데, 본인이 “공부하지 않겠다”고 하면 학교 측이 달리 손쓸 방도가 없다. 선생님 간의 교류가 줄어든 것도 한계로 꼽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추진하는 교과교실제를 국내 최초로 시도한 한가람고는 앞으로도 변화를 주도할 전망이다. 당장 신입생이 들어오면 담임교사를 없애고 1명의 아카데믹 어드바이저에게 3년간 진로에 대한 지도를 받게 하고, 학년이 아닌 수준에 따라 심화수업을 받게 하며 3년간의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교육평론가 이범 씨는 “한가람고는 교과교실제를 선구적으로 시행해 성공한 학교지만, 무엇보다 대학 선발기준이 다양화돼야 이런 고등학교의 실험이 의미 있는 시도가 된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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