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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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70~80년대 청춘들의 유일한 문화적 공간, 남산·정독도서관

  • 이나인 자유기고가

    입력2009-05-15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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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서울 용산구 남산 기슭의 시립남산도서관. 1922년 명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65년 현재의 자리에서 개관했다.

    도서관은 책을 보관하고 읽는 곳이지만 시대와 장소,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른 이야기를 갖게 된다. 불타버린 까닭에 영원히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기원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과 ‘해리포터’의 호그와트 도서관이 아주 다르듯이 말이다.

    골똘히 생각에 빠져 푸른 숲길을 걷다 보면 나타나던 남산도서관과 풍문여고 여학생들의 교복을 힐끔힐끔 보느라 정신없이 다다르던 정독도서관. 어느덧 중년에 이른,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세대에게 도서관이란 그런 추억이 어린 곳이다. 1970~80년대의 삭막한 현실과는 사뭇 다른 공기, 칸막이 나무책상과 시험공부,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되고 싱겁게 끝나버린 연애소동 등이 그 시절 공공도서관의 모습이었다.

    서울 남산 중턱에 자리잡은 남산도서관은 1970년대에도 최소한 겉모양만은, 도서관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기대와 그리 멀지 않았다. 남산의 자연 속, 서울 시내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는 자리에 있는 이 건물은 ‘해리포터’를 촬영한 옥스퍼드의 보들리안 도서관처럼 담쟁이와 박공을 갖춘 빅토리아 시대의 석조건축은 아니지만 널찍한 발코니와 근대적으로 연출한 모양새가 인상적인 5층 빌딩이었다.

    아침의 책가방 행렬

    이 멋진 도서관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광경은 길다란 녹색 뱀처럼 출입구로부터 뻗어나와 줄지어 있는 책가방의 행렬이었다. 요즘 같으면 휴일 대형 마트 주차장 입구에 줄지어 선 자동차들을 상상하면 되는 그 가방들은, 물론 도서관에 들어가기 위한 대기 순서표 노릇을 하는 중이었다. 공부 좀 해보겠다고 달려온 청춘 남녀 중고생들은, 그렇게 몸 대신 책가방을 줄 세워놓고 남산의 녹음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아침을 맞았다. 대기표를 나눠주는 시스템으로 발전한 건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고, 전산화와 자동 대기표 발급기는 그 뒤로도 20여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책가방으로 줄을 세우는 ‘충격적인’ 실상 앞에서, 오로지 ‘책을 읽기 위해’ 도서관에 온 학생은 순진하거나 무지하다는 취급을 받았다. ‘책 읽으러 도서관에 가는데 책가방은 왜 필요할까?’ 이건 순진한 몇 사람만의 생각이었고, 모두 ‘성문종합영어’나 ‘수학의 정석’을 공부하려고 가방에 이들 ‘국민 베스트셀러’와 갱지 연습장을 쓸어넣고 도서관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래서 책가방도 없이 처음 도서관을 찾은 사람은 쓸쓸하게 남산 길을 돌아 내려가야 했다. 도서관과 책 읽기의 ‘낭만적’ 이미지도 그렇게 깨져버렸으니, 요즘 세계에서 가장 책을 안 읽는 국민으로 한국 사람이 뽑히는 덴 이런 이유가 있는지도 모른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서울 시내 변두리 초등학교에도 도서실이 설치되기 시작했다. 대부분 교실 하나 혹은 2개를 터서 만든 미니 도서실이었는데, 서가에는 ‘계몽사 어린이 문고’ ‘계림문고’ 같은 책이 얌전히 꽂혀 있었다. 책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거기서 어린이 세계명작과 위인전을 ‘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아동문고 말고 ‘진짜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용돈을 모아 200원짜리 삼중당문고를 사거나 도서관에 갔다. 그처럼 순수하게 책읽기를 갈망해 도서관에 가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이다.

    책가방을 줄 세우지 않고도 도서관에 들어가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남들보다 일찍, 새벽에 집을 나서는 것이다. 남산도서관 입장에 성공해서 남자 열람실에 처음 자리를 잡은 날, 관내 대출로 빌려 읽은 첫 번째 ‘진짜 책’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였다. 인터넷 야동에도 만족하지 못하는 요즘 청소년이야 뭐 그런 책을 읽나 싶겠지만, 열람실 칸막이 사이에 마련된 개인적인 독서 공간에서 그때 남자 중학생들이 읽고 싶었던 것은 그런 책이었다.

    옛날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50만권의 도서가 소장된 남산도서관의 내부(좌). 서울 종로구 북촌길 옛 경기고 자리에서 1977년 개관한 시립정독도서관. 옛날 학교의 운치가 느껴진다(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마음 편안한 공간

    작가 최인호가 중학교 때 도서관에서 ‘사장과 여비서가 호텔방에서 껴안고 뽀뽀하는’ 책을 빌려달라고 했다던 심정(최인호 ‘문장 1’)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당시 일본의 대형 베스트셀러이던 다나카 야스오의 ‘어쩐지 크리스털’을 역시 관내 대출로 읽었던 것도 그런 맥락인데, ‘껴안고 뽀뽀하는’ 결정적인 장면 여러 쪽은 이미 잘려나갔다. 그렇게 칼로 책장을 잘라가는 녀석들이 있을 시절이니, 도서 대출을 관내로만 한정한 것도 이해해야 할 듯하다.

    당시의 도서대출 시스템은 지금과 비교하면 ‘클래식’이었다. 대출창구 앞에 줄줄이 늘어놓은 폭이 좁은 서랍장을 뒤져서 한국십진분류법에 따라 분류한 곰팡내 나는 카드 중 원하는 책의 것을 찾아내 거기 기록된 청구번호를 대출신청 용지에 써 창구에 신분증과 함께 제출하는 식이었다. 그러고 나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기에, 아래층 식당에 가서 식은 우동을 한 그릇 사먹고 다시 창구로 가서 신청한 책이 나왔는지 알아봤다. 당연히 책이 대출 중인 경우도 많았고, 막상 신청한 책이 나왔는데 기대한 것과는 다른 책인 경우도 있었다. 컴퓨터는커녕 개가식 열람·대출 시스템도 극히 제한적으로만 운영되던 시절이었다.

    남산도서관이 한적한 남산의 분위기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라면, 정독도서관은 학교가 밀집한 시내에 자리해 방과 후에 많이 찾던 ‘생활형 학습공간’이다. 정독도서관은 특히 풍문여고와 덕성여고 등 여학교 사이에 자리잡고 있어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처음부터 ‘정독(精讀)’하기엔 어려운 환경이었던 셈이다.

    아트선재센터가 들어서면서 문화의 거리 한가운데 ‘어쩌다 자리하게 된’ 정독도서관은 이제 색다른 분위기를 가진 명소가 된 것 같다. 근처에 크고 작은 갤러리와 티베트박물관, 실크로드박물관 등 가볼 만한 곳이 많이 생겨났고 강남 스타일의 레스토랑과 강북의 정신을 이어받은 꼬치집, 만두집 등이 사이좋게 개업 러시를 이어가는 가운데 도서관에 들어서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즈넉함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이 현대화하면서 책을 빌리는 시스템도 이전보다 많이 편해졌다. 요즘은 모든 공립도서관에서 인터넷으로 도서관 소장 도서를 검색할 수 있게 해놓았고, 관외 대출을 실시한다. 한 사람당 3권씩, 2주일 동안 책을 빌릴 수 있다. 게다가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개가식으로 열람과 대출을 실시한다. 서가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보고 싶은 책, 빌리고 싶은 책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는 것이다. 도서관에 없는 책은 ‘구입신청’을 하면 된다. 그렇게 구비한 새 책은 신청한 사람이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일본 작가 가쿠타 미쓰요의 ‘스위트 칠리소스’에는 노숙자들이 도서관을 낮 시간의 ‘휴식 공간’으로 이용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겨울철 우리 남산도서관 열람실에도 책상에 엎드려 자는 노숙자들이 있었다. 일본의 노숙자들은 책을 읽어도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쫓겨나는 반면, 한국의 노숙자들은 그냥 점퍼 따위를 둘러쓰고 엎드려 잔다는 차이가 있겠다. 도서관이 노숙자들이 잠자는 곳이어선 안 되지만, 이런 모습 역시 여전히 도서관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이 옛날 도서관을 추억하며 위안을 삼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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