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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기자의 It-Week | 서른세 번째 쇼핑

당신의 ‘누드’는 무슨 색인가요

  • 김민경 holden@donga.com

당신의 ‘누드’는 무슨 색인가요

당신의 ‘누드’는 무슨 색인가요
패션 상식 문제입니다(제가 만든 거죠).

‘이것은 바닐라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다. 평범해서 좀 밋밋하지만, 모든 것과 잘 어울린다.’월스트리트저널 매거진 WSL에 실린 이 기사에서 ‘이것’은 뭘까요? ① 베이비 ② 베틀 ③ 베이지 ④ 베개.

답은 ③ 베이지입니다. 평범하지만 모든 것,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는 베이지 컬러 패션이 이번 시즌에 유행하고 있다는 기사의 일부였어요.

사전에는 베이지색이 ‘엷고 밝은 갈색’ ‘낙타색’ ‘염색하지 않은 생천의 색’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 설명만 봐도 베이지가 얼마나 모호하고 수천, 수만 가지 색을 동시에 의미할 수 있는지 아시겠지요? 패션에서 베이지는 흔히 ‘누드 컬러’와 동일시됩니다. 즉, 예전 18색 크레파스에 들어 있던 ‘살색’이 베이지로 혼용되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선 ‘크레파스 색상의 피부색 차별’ 사건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살색이 ‘살구색’으로 바뀌었지만, 패션산업을 움직이는 쪽이 여전히 살색이 ‘베이지’인 백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색조화장품에서 ‘누드 메이컵’이라고 하면, 베이지 계열로 얼굴 전체를 뒤덮는 걸 말해요. 얼굴은 폐병 환자처럼, 입술은 피죽도 못 얻어먹은 것처럼 칠합니다. 관상 보는 분들은 절대 피할 상이라지만, ‘롤리타 이미지’엔 상당히 효과적이어서 끈질기게 인기를 끌고 있지요.



어쨌거나 이번 시즌의 ‘잇 컬러’는 백인종의 ‘누드’색 혹은 ‘베이지’입니다. 각종 매체가 ‘누드로 너의 누드를 감싸라’거나 ‘살 속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베이지를 선택하라는 어드바이스를 하고 있습니다. 이미 2009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많은 디자이너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살색에 대한 편애를 보여주었기 때문이죠.

마르탱 마르지엘라라는 전위적인 디자이너는 모델의 얼굴까지 베이지로 감아버렸어요. 달걀귀신 같지 않냐고요? 딱 달걀귀신이죠. 프라다는 베이지 컬러를 여러 가지 소재로 실험해서 보여주었고요, 펜디도 베이지로 몸의 구조만 표현해 구두와 백이 상대적으로 잘 보이더라고요.

당신의 ‘누드’는 무슨 색인가요

펜디의 런웨이에서 선보인 베이지 오리가미(일본 공예의 접기) 원피스(왼쪽)와 반짝이는 스와로브스키를 박은 베이지 하이힐입니다. 피부색과 비슷한 ‘누드’ 컬러의 액세서리나 옷은 다양한 착시의 마술을 부리죠. 키는 커 보이고 체형은 날렵해 보입니다. 단, ‘누드’ 컬러의 수영복을 입으면 자칫 고무인형처럼 보일 수 있으니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패션 전문가들의 분석은 이렇습니다. 베이지는 불황기에 가장 현명한 소비의 색깔이라는 거죠. 이 색깔은 튀지는 않아도 어떤 색깔의 옷에나 잘 어울리고, 어떤 콘셉트의 차림과도 어울리니까요. 이미 얼굴과 팔다리가 베이지톤(백인은 옅은 베이지, 흑인은 짙은 베이지)이기 때문에 베이지는 내 살의 연장이자, 스타일링의 기본색이 되는 거예요.

베이지색 가방이나 구두는 캐주얼한 블루진과도, 검은색 정장과도 잘 스타일링됩니다. 베이지색 구두를 신으면 다리가 연장된 듯 착시효과를 줘 키가 커 보이게 하고, 하늘하늘한 베이지색 옷은 몸을 길어 보이게 합니다. 베이지색 티에 어두운 색 재킷을 입으면, 마치 재킷만 입은 듯 섹시해 보이는 효과도 있답니다.

베이지의 비밀을 간파한 건 21세기 불황을 타개하려는 일군의 패션 천재들이 처음은 아니에요. 20세기 초에 샤넬과 디올은 베이지가 얼마나 다재다능한지 알았거든요. 샤넬은 1957년 발등까지 검은색으로 하고 나머지는 베이지로 한 ‘투톤’ 구두를 발표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둡니다. ‘투톤’ 구두는 매년 조금씩 변화하면서 계속 팔리고 있고요.

베이지의 힘은 자신의 피부색과 비슷할수록 커집니다. 제 경험으로 보자면, 배우 니콜 키드먼의 얼굴처럼 뽀얀 백인의 얼굴색을 ‘누드’라 부르고, ‘베이지’는 휴 잭맨 같은 백인 남자 배우들이 선탠으로 만든 짙은 피부색을 가리키는 것 같더라고요. 세상에 n명의 사람이 있다면 n개의 누드, 베이지가 있는 셈입니다. 쇼윈도에서 당신의 ‘살색’을 발견해보세요.



주간동아 2009.05.19 686호 (p73~73)

김민경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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